[Opinion] 김강민이라는 클리셰 [사람]

NO.0 김강민
글 입력 2024.04.17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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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해도 사람을 울리는 클리셰가 있다.


러브홀릭스의 butterfly가 울리면, 방망이를 있는 힘껏 휘두르다 무덤덤히 타석에 들어가고, 껌을 쫙쫙 씹다가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타구를 잡아내고, 던지고. 두 손 모아 기도하면 한 방을 날려주는. 뻔해도 지겨울 수 없는. 뻔할 줄 알면서도 매번 속수무책으로 팬을 울리는, 야구선수 김강민이다.


2011년 9월이었다. 한창 ‘좋은 아빠 프로젝트’에 열심이던 아버지가 이번 주는 문학구장을 데려갔다. 좋아하는 김광현 선발 게임은 아니었지만, 어찌됐건 오랜만인 야구장은 설렜다. 난 새우탕(컵라면)이 정말 싫은데, 아버지가 새우탕을 사왔다. 거기서부터 꼬였는지 경기 초반부터 패색이 짙다. 도무지 뒤집힐 리 없는 점수 차에 내 앞에, 옆에, 뒤에 아저씨들이 하나둘 씨부렁대며 자리를 떠났다. 그러자 김강민이 안타를 쳤다. 홈런을 쳤다. 포수를 봤다. 주자를 잡았다. 안타를쳤다. 끝내기가 됐다.


그날 김강민의 타율이 얼마였는지, 출루율은 얼마였는지, 장타율은 얼마였는지. 나는 모른다. 어찌 됐건 나는 그날을 잊을 수 없게 됐다. 김광현이 안 나와도 그날의 공기를 기대하며 야구장을 간다. 그날의 맛을 복기하려 13년째 새우탕을 찾는다.


2018년 플레이오프 5차전이었다. 지속되는 암흑기에 야구를 끊은 지 오래다. 그때 나는 스무 살이었고, 야구할 시간엔 늘 술집이었다. 야구에 환장하던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야구를 보란다. 야구를 봤다. 김강민의 홈런이 ‘다시 잠실까지 거리가 같아집니다’라는 멘트와 빠던에 그날부터 술을 마실 때면, 다시 야구를 본다.


2022년 한국시리즈 5차전이었다. 훈련소였다. 휴대폰 사용 시범 기수에 담청돼 하루 30분 휴대폰을 쓸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 싶었으나 좋긴 뭐가 좋나. 통신망이 부족한 훈련소서 모두에게 인터넷이 허용될 리 없다. 전화도 안 터진다. 내 폰은 5G인데, 3G 한 칸이 터질랑 말랑한 구석탱이를 용케 찾았다. 144P 화질로 한국시리즈 하이라이트를 틀었다. 김강민이 대타로 들어선다. 제아무리 김강민이라지만, 이제 마흔이 넘었고 상대 투수 볼은 너무 좋다. 스윙도영 아니다. 관중석에선 ’김강민 홈런‘을 외치지만, 병살만 아니길. 아니길. 딱! 김강민이 홈런을 쳤다. 끝내기가 됐다. 시공간이 뒤틀린 훈련소서 아침 뜀걸음 우천 취소에 준하는 유이한 희소식이었다.


김강민을 떠올리며 떠올린 클리셰가 하나 있다. 그의 마지막 경기에 만원 관중이 입장하고, 만원 관중이 퇴장할 생각이없다. 화려한 조명이 그라운드를 비추고. 뱃고동 소리에 폭죽이 터지고. butterfly가 울리자 하나둘 휴대폰 플래시를켜고. 전광판에는 허슬플레이가 홈런포가 리플레이된다. 낭독을 하고. 그라운드에 키스르 하고. 너가 눈물을 흘리고. 나도 눈물을 흘리고 헹가래를 하는. 그런 클리셰 말이다. 진부하지만 눈물 날 그 클리셰를 이젠 볼 수 없다.


2024년 3월 26일이었다.

 

러브홀릭스의 butterfly가 울리고, 방망이를 있는 힘껏 휘두르는 김강민이 타석에 들어선다. 껌을 쫙쫙 씹다가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타구를 잡아내고, 던지는 김강민이 중견수 자리에 선다. 그런데, 그가 1루가 아닌 3루에서. 0번이 아닌9번이다. 빨간색이 아닌 주황색이다. 분명 김강민인데, 그런데, 그러게 말이다.


씁쓸하다. 슬프다. 아쉽다. 아프다. 아리다.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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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랬던 것처럼 butterfly를 따라 부를 것이고. ’김강민 안타‘를 ’김강민 홈런‘을 외칠 것이다. ’좋은 아빠 프로젝트‘를 선명히 각인시켜준. 잊고 살던 야구의 재미를 일깨워준. 훈련소에서 웃을 수 있게 해준. 김강민에 대한 내 마음이다. 나는 김강민이라는 클리셰가 좋고, 그 클리셰대로 김강민을 응원할 거다. 새우탕을 먹을 거다.

 

 

*사진출처-한화이글스

 

 

[윤제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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