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림을 읽는 경험 - 이야기 미술관 [도서]

글 입력 2024.04.14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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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을 ‘감상한다’는 말보다 ‘읽는다’는 말에 더 끌려왔던 사람이다. ‘읽는다’는 말에는 내가 그 그림에 온 마음을 다하여 샅샅이 살핀다는 노력의 흔적이 담기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번 그 방법을 몰라 그저 감상하기 바빴던 지난날을 떠올린다. 이끌리는 곳으로 가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려보지만, 결국 남는 것은 뭐라도 아는 척하기 위한 고개 끄덕임뿐. 이런 경험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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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미술관>의 저자 이창용은 이렇게 그림 앞에서 길을 잃은 우리를 네 가지의 방으로 인도한다. 첫 번째는 영감의 방, 감정이 넘실거리는 곳이다. 이곳은 너무나도 유명한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부터 프란시스코 고야의 <1808년 5월 2일>까지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다음은 고독의 방, 모든 세상이 외로움으로 물들어 가는 순간을 담아낸 곳이다. 이곳은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부터 작자 미상의 <라오콘 군상>이 함께한다.


다음은 사랑의 방, 삶을 다시 피어나게 하는 힘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다.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부터 장 프랑수아 밀레의 <기다림>까지 사랑과 함께 피어나는 다양한 감정이 드러난다. 마지막으로는 영원의 방, 이야기를 영원으로 이끌고자 하는 간절함이 담긴 곳으로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부터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으로 여정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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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읽으며 잊고 있었던 중학생 무렵을 불현듯 떠올렸다. 나는 아버지와 단둘이 유럽 여행을 다녀온 적 있다. 그때의 나는 소심하고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던 아이였다. 이끌려 다니는 것이 편했던 아이. 남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던 아이.


유럽 여행은 좋으면서도 불안했고, 가이드를 따라다니는 것이 편하면서도 모르는 이들과 일정을 함께 한다는 것이 불편했다. 그렇게 나는 아이러니한 마음으로 유럽을 돌아다녔고, 얼떨결에 빈 벨베데레 오스트리아 갤러리에 도착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미술에 대한 지식이 없었고, 그렇게 큰 흥미를 갖고 있지도 않았다. 감상하는 법조차 몰랐던 어린 시절, 오스트리아 빈의 한 갤러리에서 나는 잊지 못할 그림들을 마주했다.


그중 하나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였다. 흥미진진하게 갤러리를 돌아다니다 누군가 ‘그 유명한 클림트의 키스!’라고 숙덕이던 소리를 들었다. 나도 모르게 그 소리를 따라갔고, 그렇게 연인이 애처롭게 끌어안고 입맞춤하는, 황금빛의 그림을 마주했다. 순식간에 밀려 들어오는 황금빛의 경이로움. 그와 동시에 내가 느낀 건 어떠한 위태로움이었다.


거대한 황금빛 옷자락으로 연인을 품 안에 안고 있음에도, 어딘가 불안하고 일방적으로 구애하는 듯한 모습의 남성과 작은 손짓으로 연인을 밀어내면 금방이라도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은 모습의 여성.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전시된 그림을 즐겨본 적 없기에, 내가 왜 그 그림에서 위태로움을 느꼈는지 몰랐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이제야 와서 그 의문이 해소되었다.


구스타프 클림트에게는 수많은 연인이 있었다. 하지만 학계는 <키스> 속 주인공을 두 명의 여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와 에밀리 플뢰게 중 한 명으로 추측했다고 한다. 그중 에밀리는 당시 사회의 흔치 않은 상업적으로 성공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클림트를 사랑했지만 스스로 쌓아온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담 클림트’로 살 수 없었을 것이기에 클림트와의 결혼을 에밀리가 거절한 것으로 추정 중이라 한다.


<이야기 미술관>의 저자는 그림 속 여인에 누구를 대입하느냐에 따라 그림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짐을 말한다. 아무래도 그 당시 나는 그림 속 두 눈을 꼭 감은 여인을 에밀리 플뢰게로 은연중 대입한 것 같다. 사랑했지만 그만큼 불안했던 클림트의 감정을 그림을 통해 고스란히 느꼈던 것은 아닐까.

 

*

 

그림을 ‘읽는다’는 건 사전 지식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감상을 선행했을 때도 <이야기 미술관>과 같은 미술 서적을 통해 다시금 그림을 읽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내가 유럽에서, 그리고 책을 통해서 겪은 것처럼 말이다.


무엇이 되었든 보고, 읽고, 느끼면 된다. 길을 잃을지라도 그렇게 찾아가면 된다. 내게 강렬한 체험을 선사하는 그림 몇 점을 말이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자. '나는 지식이 없는데 봐서 뭐 알까?' 싶어도 결국 그림은 나에게 말을 걸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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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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