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넌 내가 아직 꾸지 않은 꿈 - 뮤지컬 '브론테'

그렇게 우리는 이야기가 된다
글 입력 2024.04.1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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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2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불멸의 영문학 작품 ‘제인 에어’. 사실 이 작품은 ‘커러 벨’이라는 남성 작가의 작품으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아름답고 수줍은 여주인공들이 대세였던 시대, 안 예쁘고 격정적이며 독립적인 여성이 전면에 등장했던 이 획기적인 소설은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또 다른 영문학의 명작 ‘폭풍의 언덕’, ‘아그네스 그레이’ 또한 ‘엘리스 벨’, ‘엑튼 벨’이라는 남자 작가들의 소설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커러 벨, 엘리스 벨, 엑튼 벨. 어딘가 비슷한 이 세 이름은 사실 각각 샬롯 브론테, 에밀리 브론테, 앤 브론테 세 자매가 처음 작품을 세상에 출간할 때 사용했던 남자 작가 필명이다. 빅토리아 시대, 여성에겐 글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는 글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세 자매의 선택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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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초연된 뮤지컬 ‘브론테’는 여자가 글을 쓰는 것이 허락되지 않던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죽음과 병이 더 가까웠던 삶이었지만, 치열했던 삶 속에서도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샬럿, 에밀리, 앤 브론테 자매의 삶으로부터 출발해 상상을 더해 만든 작품이다.

어려서부터 자신들만의 작은 집에서 상상하는 놀이를 즐겨했던 세 자매에게 글이란 또 다른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이자 자연스레 사랑하게 된 무언가였다. 각자의 이야기를 쓰고 또 서로에게 읽어주는 시간은 세 자매가 가장 행복하고 즐거워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서로가 서로의 가장 큰 이해자이자 버팀목이었던 이 세 자매에게 그러나 어느 날 정체불명의 편지가 도착하며 위기가 시작된다. 누가 어디서 보냈는지도 알 수 없는 이 편지는 샬롯에겐 오만함을 경계하라는 경고를, 에밀리에겐 자신의 목소리를 따라 폭풍의 글을 완성하라는 응원을, 앤에겐 짧은 생을 안타까워하는 슬픔을 남긴다.

미스테리한 편지의 정체는 관객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벌판에서 들려오던 정체불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에밀리, 나뭇가지가 창문을 때리는 폭풍우치는 밤의 분위기와 함께 극의 분위기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알 수 없는 긴장감으로 극에 확 집중하게 되었다. 빅토리아 시대, 영문학 시대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사랑을 증오하는 여자에게 갑자기 찾아온 사랑
외롭고 고독한 작가, 자신을 믿지 않는 작가
막막한 삶에 찾아온 그녀를 구원할 천사

써내려가, 써내려가

어느날 찾아온 신비로운 편지
그것은 사랑을 고백하는 연서
그녀가 죽고 없는 미래에서
그녀를 잃은 누군가가 보내왔지

작가는 지독한 병을 앓고 있어
죽어가면서도 포기 않고 글을 쓰지
아무도 그녀를 인정하지 않지만
어느 누군가는 작가를 지지하지

죽음의 문턱에선 무엇을 보게될까
현실을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짧았던 삶에 그녀는 알게 될까
자신의 삶이 존재했던 이유를

- 뮤지컬 브론테 '써내려가'

 
자신을 미래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이 꺼림칙한 편지에 샬롯은 화를 내고, 에밀리는 오히려 힘을 얻고, 앤은 방황한다. 결국 좁혀지지 않는 입장 차이에 샬롯은 집을 떠나고, 에밀리와 앤은 집에 남아 각자 다른 책을 출판한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아그네스 그레이>는 평론가들에게 판이한 평가를 받게 되고, 이후 홀로 남겨진 샬롯의 회고로 목소리와 편지의 정체가 밝혀지며 뮤지컬은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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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간절한 마음은 때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을까? 누군가를 지극히 사랑하고, 그 삶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은 전해질 수 있을까.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랑받는 수많은 불멸의 작품들을 접할 때마다 우린 그 시절의 작가와 만난다. 그때의 누군가가 적고 싶고, 전하고 싶었던 어떤 지극한 사랑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다. 과거의 고전에서 오늘날 우리의 삶까지 관통하는 어떤 통찰과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작가가 세상 밖으로 꺼낸 이야기는 더 이상 작가만의 이야기가 아닌, 그 작품을 읽고 향유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여전한 삶이고 사랑이며, 희망이고 때론 영원히 꺼지지 않는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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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모질고 때론 슬프기만 한 삶이었으나, 우리는 우리의 이름으로 내내 치열했고, 존재했으므로 이미 충분했다.
 
- 뮤지컬 '브론테'

 
브론테가 자매들의 삶은 안타깝게도 짧았으며 고난도 많았다. 여성에게 글이 허락되지 않았던 시기에 글을 선택했던 그녀들의 삶은 순탄할 수 없었다. 몸이 약한 동생들은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고, 넉넉지 않은 형편에 지참금을 받을 수 있는 결혼 대신 글을 선택한 샬롯은 고된 가정교사 일을 전전했다. 

하지만 그녀들은 짧았던 삶 속에서도 내내 치열했고, 결국 유한한 삶 속에서 영원히 기억될 이야기를 써낸 무한한 존재가 되었다. 우리의 인생을 2시간짜리 영화로 만든다면 압축되어 기록될 희노애락의 강렬한 순간들 중 브론테가 자매들은 당당히 글을 사랑하는 작가로 기억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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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난 모든 사랑, 나의 글, 오지 않은 내일

너를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넌 내가 아직 꾸지 않은 꿈
 
- 뮤지컬 브론테 '써내려가
 

극의 마지막에 미래에서 편지를 보냈던 사람은 여전히 글을 지극히 사랑하고, 그만큼 동생들을 사랑했던 샬롯임이 밝혀진다. 에밀리와 앤은 샬롯의 마음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그리고 동생들이 건넸던 어느 날의 다정한 응원의 기억이 바로 샬롯이 지금까지 글을 쓰게 한 커다란 원동력이었다는걸 깨닫는다.

어떤 지극한 마음은 시대를 초월해 전달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 또한 순수하고 치열하게 빛났던 브론테가 자매들에게 응원의 편지를 보내고 싶다. 어쩌면 평범한 일상 속 우리의 삶 또한 누군가의 응원으로 이어지고 있는걸까, 라는 생각과 함께.

누군가의 삶과 이야기는 때로 듣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위로와 응원이 된다.
 
따스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다정한 연극이었다.
 
 
[박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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