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진실과 회복 -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을 위한 정의 [도서]

폭력으로 인한 상처를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글 입력 2024.04.02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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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회복>은 트라우마 연구의 거장인 주디스 루이스 허먼의 트라우마 3부작 완결판이다. 허먼은 매번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의 고통이 개인 심리의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 정의의 문제임을 지적해왔다. 트라우마를 만들어낸 폭력은 지배와 탄압을 목적으로 삼기에 그 폭력이 트라우마로 승인되고 명명되려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공동체에 초점을 맞춘다. 공동체 차원에서 폭력이 논의되고, 사법 시스템이나 사회적 인식이 변화될 때, 생존자들의 트라우마를 치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라우마 치료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회복'이다. 트라우마를 야기한 환경이 여전하다면 공동체에서 생존자는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생존자의 회복을 위해 공동체는 무엇을 할까?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책은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방대한 연구 자료와 생존자들의 직접적인 목소리까지 담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권력'에서는 지배를 기반으로 한 권력관계와 상생을 기반으로 한 권력관계를 대조한다. 지배 중심의 권력 관계는 독재로 나타나는 반면, 상생 중심의 권력관계는 평등의 원형을 띈다. 책은 두 관계를 분석한 후, 가장 널리 확산되어 있고 가장 오래 지속되고 있는 형태의 독재(p.69)인 가부장제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남성 지배 중심의 사회에서는 여성이나 아동, 청소년을 향한 폭력이 만연하게 자행된다. 문제는 이렇게 발생하는 범죄들이 은폐되거나 부인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가정 내 보호자가 폭력 가해자가 되는 경우, 범죄는 묵인되기 쉽다. 신고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드물고 재판까지 간다 하더라도 행위에 합당한 처벌이 내려지기는 쉽지 않다.

 

'2부-정의의 비전'은 가부장제 속에서 어떻게 모두에게 치유의 원칙을 적용할 수 있을지를 상세하게 다뤘다. 저자가 만났던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실제로 담으면서 유의미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생존자의 정의를 위해 공동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피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오랜 세월 비가시화되었던 폭력을 인정하는 것은 생존자들이 생각한 정의의 이상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사실에 대한 인정을 넘어 가해자들의 자백뿐만 아니라 범행을 묵인하고 어쩌면 조력했을지도 모르는 공동체가 그 행위를 인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치유를 위한 첫 걸음이다.

 

인정 후에 필요한 것은 사죄이다. 범죄를 인정한 가해자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공표하는 것, 가해자가 야기한 고통을 스스로 인지하고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어떤 일이든 하겠다는 다짐이 필요하다. 책은 가해자가 고개를 숙이고 용서를 구할 때, 그 자세는 피해자 가해자 간 권력의 역학이 역전되었음을 상징(p.113) 한다고 말하고 있다.

 

'3부-치유'는 2부에서 설명한 정의들이 실현되었을 때, 피해자 뿐만 아니라 공동체 역시도 치유될 수 있다는 논의를 다룬다. 피해자에게 단순히 금전적인 배상이 아닌, 공동체 기반의 시스템이 제공될 때, 스스로 자립해 자신만의 삶을 가꾸어나갈 수 있다. 일상으로 돌아간 피해자를 바라보는 것은 공동체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책을 읽으면서 인용된 카마초 판사의 발언이 인상 깊었다.

 

"정작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 누구였겠는가. 가출해서 성매매로 내몰린 열여섯 살의 겁먹은 아이였겠는가, 아니면 우리 아이들 중 가장 취약한 아이들이 겪는 고통과 피해를 내내 외면했던 마흔셋의 판사였겠는가. 그중 누가 정말 구원받았다면, 그 아이와 내가 서로를 통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구원받았을 것이다."(p.199-p.200)


이후에는 가해자의 재범을 막기 위한 재활과 또 다른 범죄를 미리 방지할 예방 차원의 시스템들을 다룬다. 위계질서가 명확한 그룹에서의 성폭력이나 잘못된 성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선 공동체, 사회 기반의 매뉴얼이 필수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책의 마지막 장, '결론: 가장 오래 걸리는 혁명'에서 저자는 생존자 의제를 제시한다.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가부장제의 쇄신, 올바른 성에 대한 교육이나 투자가 진행될 때, 생존자의 치유와 회복이 이루어지고 사회 역시 독재의 권력을 벗어나 상생의 사회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정선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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