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이야기라면, 켄 로치를 훑다 [영화]

사회를 들여다보면 사람이 있다
글 입력 2024.04.01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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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이른바 켄 로치의 영국 북동부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인 <나의 올드 오크>가 개봉했다. 이에 앞서 켄 로치의 기획전이 열렸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들을 영화관에서 관람할 귀중한 기회였다.

 

해당 기획전에서 시작해 켄 로치의 작품 4편을 연달아 관람했다.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람이 그의 작품을 여태껏 한 편도 보지 않은 게 민망하기도 했고, 작년에 <다음 소희>라는 작품을 관람하면서 영화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깊이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 대표 격인 감독을 꼭 한 번 접해야 했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나, 다니엘 블레이크>, <미안해요, 리키>, <나의 올드 오크>. 한 편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리면서 관을 빠져나왔다. 도저히 바꿔볼 수 없는 사회 시스템의 부조리함,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개인의 고통. 그 복잡하고 단순한 이야기들은 비단 영국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기도 했다. 세계 곳곳이 비슷하리라. 윤리적 규범을 잘 따르는 평범한 사회 구성원이자, 일을 하는 노동자라면 절절히 공감하고 이해할 수밖에 없는 '평범한' 세계를 켄 로치는 치열하게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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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사회를 그리기 위해 개인을 그린다는 것이다. 그건 아일랜드 독립전쟁을 다루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노동자의 편에 서서 사회 현실을 그려내는 켄 로치는 나라와 역사가 들썩이는 전쟁조차도 대서특필될 대사건이 아니라 일상을 흔드는 거센 바람으로 바라본다. 정치인들의 입씨름, 군인들의 거대한 전투. 모든 가능한 대하드라마 적 서사와 연출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이 작품은 형제의 비극을 통해 전쟁의 아픔을 그린다.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비장하다거나 심장이 옥죄일 만큼 가족애를 강조해 눈물을 쏙 빼놓는 클리셰적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전쟁은 왜 일어나고 또 왜 석연찮게 마무리되었나. 지지부진하고 끔찍한 내부 분열로 이어져 온 까닭은 무엇인가. 어떤 거국적 포부에서 비롯된 엄숙한 싸움이 아니라고 켄 로치는 못을 박는다. 그놈의 의견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 생각이 달라서, 위에서부터 잘못 꿰인 단추가 도저히 고쳐지지 않아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총부리를 서로에게 들이밀게 되었노라고. 전쟁은 하나도 장엄한 광경이 아니며 고작 초라하고 슬픈 싸움일 뿐이라고 말이다.

 

대개의 전쟁을 다루는 영화는 큰 제작비가 투입되어 카타르시스를 줄 만큼 낯설고 폭발적인 장면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그리고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선 그런 게 전혀 없다. 이 작품 속 전투는 어딘가 엉성하고, 초조하고, 죽음은 숫자가 아닌 내 가족과 친구의 이름을 달고 있다. 게임 같은 멋지고 재미있는 전투라니, 그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켄 로치는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모든 전쟁은 개인의 비극이다. 그리고 개인의 이야기가 결국은 사회의 이야기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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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블루칼라 직업군인 배달 노동자와 돌봄 노동자의 이야기를 그리는 <미안해요, 리키>는 또 어떤가?

 

노동자 계층이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지만 더욱 가난해지기만 하는 이유, 자본주의 사회가 말하는 '성실함'의 덕목과 계층의 이동이 유의미한 수치의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는 이유를 <미안해요, 리키>는 한 가정을 통해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보호해 주는, '허점 없는' 사회 안전망 없이는 누군가는 끝없이 고통받으며 살아가게 될 뿐이다.

 

공부를 안 하면 저렇게 되는 거야, 할 줄 아는 게 없으면 몸뚱이나 축내고 사는 거지. 이러한 말들은 우리 사회가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사회의 가장 밑바닥으로 멸시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가장 대우받아야 할 사람이 겨우 컴퓨터 앞에 앉아 가상의 돈이나 굴리고 있는 이들이라면,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삶의 편의를 봐주는 것은 누구인가? 어떤 직업은 더 하찮고 어떤 직업은 더 고귀하다면, 장시간 앉음으로 인한 허리디스크의 유무가 그걸 판가름하는 척도가 된다는 뜻인가?

 

우리는 모두 노동한다.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 이것들은 우리가 아주 어릴 적부터 배워온 상식이다. 그리고 그 상식과 현실에는 간극이 있다. 우리는 딱히 평등하지 않고, 노동에는 급이 있는 데다 누군가는 자신이 하는 일이 '그깟' 노동이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우스운 이야기다. 사람은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데.

 

삶에 허덕이는 부모 아래서 자식들은 저마다의 고통을 껴안고 살 수 밖에 없다. 보고 배운 것이 그뿐이기 때문일 것이라. 현실을 잊기 위해 지독한 방황을 하거나, 눈치를 보며 제 꿈은 잊는 '착한' 자식이 되어줄 것이다. 

 

<미안해요, 리키>를 보고 있으면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가정의 모습과 노동환경에 이 가족의 앞날이 절대 순탄치 못할 것임을 알고 가슴이 쓰려진다. 그리고 이들이, 아니 더욱 많은 이들이 처한 작금의 현실을 어쩌면 처음으로, 제대로, 직시하게 된다. 켄 로치가 그리는 영화의 순기능이다. 방관자로 일조하던 세상에 비로소 나도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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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집중. 켄 로치는 한 가정 혹은 개인을 선택하고 그들에게 집중함으로써 부조리를 고발하고 관객의 참여를 요구한다. BBC에서 장편작을 만들던 그때 그 순간부터 한순간도 변하지 않은 방식이다. (그가 직접 말하는 본인의 세계관이 궁금하다면 EBS의 <위대한 수업> 강의를 시청하길 권한다.)


켄 로치는 기수 같은 면모가 있다. 기수가 말을 때려 앞으로 달려 나가듯이, 우리의 양심을 때려 앞을 보라고 질책하고 타이르는 것이다.

 

<나의 올드 오크>에서 켄 로치는 난민 문제를 다룬다. 사람들이 난민 수용에 껄끄러워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우리가 과연 화합을 이룰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화합이 의미가 있긴 한지. 누군가는 이 영화가 너무 뻔하고 순진한 꿈이라는 평을 내놓기도 했다.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켄 로치가 바라는 평등하고 아름다운 노동자들의 세상은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이다. 켄 로치가 그리는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라 우리 지척에 있는 '바로 그' 문제다. 이상을 이상일 뿐이라고 넘긴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며, 영화는 그 즉시 힘을 잃고 만다. 닿을 수 없는 가짜만 그리는 영화라니, 그런 걸 누가 보고 싶어 하겠는가. 그저 프로파간다일 뿐이다.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지레짐작하고 포기할 때, 그때가 정말로 끝이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사회적 기능을 하는 영화의 힘이다. 켄 로치는 그 힘이 가장 강한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유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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