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자유와 탈주를 노래하다 - 뮤지컬 브론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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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글쓰기에 미친 세 인간이 있다. 샬럿, 에밀리, 그리고 앤 브론테. 여자가 글을 쓰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빅토리아 시대에, 브론테 자매는 글쓰기를 통한 자유와 해방을 꿈꾸며 치열하게 고뇌했다. 결혼하고, 애를 낳고, 병이 들어 눈 감으면 끝나는 여자의 인생. 정말 그게 전부일까? 신께서 고작 그걸 위해 우릴 만드신 걸까?
“인정받길 원하면 세상에 들켜야만 해, 우리가 여기 있다고.”
샬럿에게는 당찬 포부가 있었다. 그녀는 이 세상에 작가로 기억되고 싶었고, 책을 팔아 성공하고 싶었다. ‘맏이’로서 가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명은 그녀의 꿈에 강한 의지를 심어주었으며, 이는 브론테 자매의 첫 번째 책 출간에 가장 큰 추진력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희망을 담아 쓴 그들의 책은 사람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했고, 그로 인해 샬럿과 에밀리는 갈등하게 된다. 샬럿은 ‘많이 팔릴 수 있는’ 대중적인 책을 원했지만, 에밀리는 ‘완벽한 글’로 세상에 인정받길 원했다. 샬럿은 ‘밝은 이야기’를 원했으나, 에밀리는 ‘파괴적인 결말’을 원했다. 글을 통해 생계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샬럿에게 에밀리의 소설은 비극적이고, 우울하며, 팔리지 않을 이야기였다.
“태양을 갈망하는 건 좋아. 근데 왜 늘 태양을 갈망하다 불에 타죽고 마는 거야?”
이상한 편지, 불길한 편지
처음엔 그저 ‘브론테만의 즐거운 놀이’였던 비평 시간이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내자, 보다 못한 앤이 나서 이들을 중재한다. 이것은 글에 대한 비판이며, 우리는 서로를 지지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던 중 도착한 의문의 편지는 그들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는데, ‘너희들의 미래를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발신인은 샬럿과 에밀리에게 정반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샬럿은 오만한 이기심으로 모든 걸 잃게 될 테지만, 에밀리의 글은 시간이 지날수록 빛나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이 편지로 에밀리는 자신의 글에 대한 확신을 얻어, 『폭풍의 언덕』 집필에 박차를 가한다. 샬럿은 이 편지가 그저 소름 끼치는 장난일 뿐이라며 부정하려 하지만, 점차 극심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편지의 예언'을 믿는 에밀리를 비난한다. 그렇게 자매들과 갈라서게 된 샬럿은 『제인 에어』를 발표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게 되는데, 편지의 내용과 달리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은 ‘악마의 소설’이라는 혹평을 듣는다. 그러던 중 에밀리는 평소 앓고 있던 지병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고, 앤 역시 일찍 생을 마감하게 된다.
동생들을 모두 잃은 샬럿은, 빈집에 돌아와 지나간 시간을 회상한다. 나는 성공을 꿈꿨지만, 나 혼자만의 성공을 바랐던 건 아니었다고.너희가 없었다면 『제인 에어』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사건의 전말을 깨닫는다. 그 이상한 편지를 보낸 건, 다름 아닌 샬럿이었다.동생들을 사랑히고, 그들의 짧은 삶에 너무나도 슬퍼했던, 먼 훗날의 자신이었다.
비난이 쏟아져도 멈추지 마
나는 샬럿의 후회를 지켜보며,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브론테’의 글로 세상에 인정받고 싶었고, 그래서 타협할 수 없었던 그 빛나는 고집스러움을 감히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며 동생들을 일으켜 세우고, 불가능해 보였던 일을 가능하게 만든 그녀는 누구보다 강하고 용감했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세 자매는 서로의 희망이자 간절한 꿈이었으며, 든든한 지지자였다. 그 여정의 끝에서 뒤엉킨 세 사람의 운명은 비극적이지만, 에밀리와 앤은 단 한순간도 샬럿을 원망하지 않았다. “난 편지 덕에 숨을 쉬었어. 소설을 완성한 건 가장 멋진 일이었고, 그걸 보낸 건 아마 우릴 사랑하는 사람이었을 거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브론테는 브론테만의 방식으로 ‘불가능’이라는 이름의 장벽에 균열을 냈고, 결국 보란 듯이 무너뜨렸다. 비난이 쏟아져도 멈추지 않을 것,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 우리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믿으며, 저 폭풍이 몰아치는 언덕을 계속해서 올라야 한다.
[김보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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