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감정의 구렁텅이 끝에서 나를 보다. [드라마/예능]

글 입력 2024.03.14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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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나 진짜 이해할 수가 없네.

 

왜 이렇게 거슬리는 행동만 골라서 하는지 분노가 치민다. 그냥 조용히 각자 갈 길 지나가면 될 것을 굳이 빵빵거리고 손가락욕까지 ... 그래 너 잘 걸렸다. 누가 이기나 어디 한 번 해보자. 이런 상황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는가? 도로에서 영화 분노의 질주를 찍는 사람들을 봤거나 실제로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를 경험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유 따윈 중요하지 않는 로드레이지 사건을 계기로 주인공 대니와 에이미는 화를 분출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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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사람들;BEEF (2023, 이성진)>은 스티븐 연과 앨리 웡에게 골든글로브와 에미상 남녀주연상을, 에미상 작품상과 감독상, 작가상 등 각종 상을 휩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작품이다. A24 제작사의 전작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 이어 동양인 이민자를 중심으로 현대인이 삶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성난 사람들은 억눌린 감정의 끝자락에 서 있는 주인공 대니와 에이미를 통해 내면의 감정에 집중한다.

 

 

*

스포주의

<성난 사람들>의 일부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똥을 먹으면서도 웃어야 하는 꼴이야


 

일과 가족 모두에게 시종일관 웃고 있는 에이미의 눈에는 울음이 비친다. 마찬가지로 대니도 먹고 살기 위해서 자신의 뒷담을 들어도 못 들은 척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고 있다. 고요하우스 매각을 핑계로 2년째 에이미를 갖고 노는 부자사장, 말 많고 까탈스러운 비서, 생각 없이 사는 동생 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불안하고 거친 아이작형 등 모두가 눈에 거슬리고 거슬리고 거슬리는데 겨우 참고 참고 참으며 웃는다.

 

평범한 한국인인 내가 그들을 진단한 병명은 홧병이다. 스스로의 분노나 답답함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억지로 꾹 눌러담았다가, 그 화가 삭아 비틀어져서 내면적 및 심적 질환으로 발전한 것을 화병이라고 한다. 비단 한국인뿐 아니라 현대인들의 심정을 잘 담고 있는 병이다.

 

화가 치밀 때 에이미의 남편처럼 보통 대화하거나 명상, 요가 아니면 심리치료를 받는 등 화를 잠재우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그렇게 잠재워지지 않는 악의 구렁텅이가 있다. 그들이 행할 수 있는 폭력은 버거킹 햄버거를 욱여넣는 것뿐이다. 아무 생각 없이 내가 버거를 먹는 건지 버거가 나를 먹는 건지 모르도록 먹고 난 후에야 다시 밝고 온화한 내 가면 사이로 기어들어갈 수 있다. 그들은 분노를 표출할 목표를 찾아 헤매다 서로에게 맞닦뜨렸다. 상대방의 차번호판 7c764f와 6rkp632를 외우며 자신도 모르게 희미하지만 진정한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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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구렁텅이 속 에이미와 대니


 

우리는 기가 막히게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알아챈다. 어떤 모습이 닮았느냐에 따라 사랑하거나 싫어하거나 피할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부분이 닮은 사람과는 편하게 관계를 맺을 수 있지만 바깥에 내놓기 꺼리는 부분이 닮은 사람은 왠지 모르게 불편하다. 내 치부를 상대방을 통해 확인하는 경우, 자괴감에 몸서리칠 바에야 그 상대방을 불편해하는 것이 더 마음 편할 것이다. 상대방까지 나를 불편하게 여긴다면 우린 진정한 동족이다.

 

에이미와 대니는 서로를 한눈에 알아챘다. 내 감추고 싶은 모습을 가진 상대가 나를 벅벅 긁고 있으니 날것의 그들은 아무도 말릴 수 없다. 영제인 beef는 소고기라는 뜻 외에 원한의 의미를 담고 있다. 에이미와 대니는 서로에게 원한을 품고 원한을 핑계 삼아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며 조금씩 파놓은 악의 구렁텅이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에이미는 당신을 찾아내서 별것도 없겠지만 다 빼앗아주겠다며 차 번호판 6rkp632를 찾는데 나도 모르게 신이 난다. 인스타그램까지 뒤져서 가짜 계정으로 대니에게 접근하고 대니의 차에 테러를 한다. 급기야 원수의 동생 폴과의 하룻밤까지..미친듯이 질주한다. 대니도 질 수 없다. 에이미의 집에 오줌테러를 하고 에이미의 남편 조지와 친해지고 강연을 훼방놓는 등 상대방의 삶을 망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상대를 더 망가뜨릴 수 있을지 초조하게 궁리하며 하루를 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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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조건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소서.


  

속이 새까맣게 타버린 그들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가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에이미는 자기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불평이라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며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왔다. 심지어 자신의 구렁텅이가 옮을까봐 잠재의식적으로 주니를 자기에게서 떼어낸다. 대니는 자기 자신만 빼고 모두를 위해 열심히 일하며 누구보다 잘 해내고 싶어한다. 부모님을 위한 집을 꼭 사드리고 싶지만 계속 되는 실패에 마음의 여유를 잃는다.

 

대니와 에이미는 부모님에 대한 효, 맏형의 책임의식, 감정숨기기 등 동양인의 정서로부터 망가짐을 퍼뜨리지 않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러한 정서는 외로움의 형태로 변모하여 SOS를 요청할 사람이 없다. 갖가지 불씨를 지핀 것은 다름 아닌 그들 자신이었다. 망가짐을 퍼뜨리는 것은 이기적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 한 채 아둥바둥 선택의 발버둥을 친 것이다. 점차 무엇을 선택해도 썩은 동아줄일 것이라는 생각이 그들 마음에 도사리고 있다. 마법의 동그라미를 그리며 그 안에서 자신의 방어책을 만든다. 빈틈은 없다.

 

그들은 악의 구렁텅이에 빠졌더라도 구덩이에서 나오려 한다. 가끔은 악의 구렁텅이를 세상 바깥으로 내보이고 당당하게 자신만의 울부짖고 싶어진다.

 

에이미는 ‘나한테 어떤 감정이 있는데 시기나 이유를 콕 집어 얘기할 수는 없지만 바닥처럼 … 심장이 그래… 사라지질 않아’ 라며 조지를 붙잡고 대화를 시도한다. 그러나 조지는 에이미가 원하는 깊이의 이해에 도달할 수 없다. 오히려 대니의 동생 폴과의 대화에서 더 편안하고 솔직하게 본인을 보여준다. 가끔은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기대는 것이 마음 편할 때가 있다.

 

마음 둘 곳이 없는 대니는 교회로 가본다. 교회의 찬송가를 들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 우리 형제와 함께해주십시오, 당신의 조건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소서.”라는 목사의 말에 치유받고 위로받는다. 이때까지의 악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는 잠깐의 희망을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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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마주하다.


 

10화의 소제목인 빛의 형상은 칼 융의 "깨달음은 빛의 형상을 상상하는 게 아니라, 어둠을 알아차림으로써 얻게 되는 것"에서 따온 말이다. 에이미와 대니는 물리적, 심리적으로 밑바닥에 굴러 떨어지자 서로 대화하기 시작한다. 악의 구렁텅이를 공유한 그들은 더이상 숨길 게 없다. 미친듯이 싸우다보니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서로의 말에 맞장구치고 공감하며 그동안 못 했던 대화를 쏟아낸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단지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마음을 표현하고 대화하고 위로받는 것뿐이었다. 에이미와 대니뿐 아니라 조지, 에드윈, 폴, 나오미 등의 캐릭터들 또한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하지만 미아에게 관심을 갖는 조지, 교회의 리더이지만 돈에 찌들리고 있는 에드윈 등 모두가 이중적이지만 각자의 구렁텅이를 갖고 있다. 이들도 에이미와 대니처럼 분노의 질주를 할 수 있다. 성난 사람들을 보는 우리 또한 어떻게 저렇게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 절레절레하지만 악의 구렁텅이 속에서 더 큰 구덩이를 파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마음 둘 곳을 찾아 나아가야 한다. '고장난 사람'에서 '성난 사람', '성가신 사람'으로 가기보다는 '고장난 사람'에서 '수리하는 사람'으로 계속해서 고쳐나가야 한다.

 

마지막화 이후 그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지 그리고 에이미와 대니는 계속해서 만남을 이어나갔을지 궁금하다. 성난 사람들 시즌2 시리즈도 기대한다.



[강혜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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