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설날 갈비찜에서 찾은 '제사'의 의미

명절 음식과 명절 노동, 그리고 제사의 의미
글 입력 2024.02.12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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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나물 그리고 갈비찜

 

 

 

한국 사람에게 ‘식’의 의미는 유서가 깊다.


 

밥은 날씨를 묻는 것처럼 흔하게 안부를 전하는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에게 “밥 한 번 먹자”고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 밥 때가 되면 “밥은 먹었어?”라고 묻는다.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 때도, “어디서 만날래?”가 아니라 “뭐 먹을래?”부터 시작한다. 음식의 종류를 정하고, 서울에서 가장 맛있는 그 음식을 파는 곳에서 만난다.


속담에도 ‘식문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잘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 한국 사람은 미운 사람에게도 잘 먹이고 심지어 밥 잘 먹은 귀신을 더 쳐준다. 한국인은 그만큼 밥에 진심이고 중요하다.

 

 

 

식구(食口), 같은 집에서 살며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


 

명절이 되면 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설날이나 추석 같은 민족 대명절에 가장 중요한 일은 삼시세끼 차려먹기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한 식탁에 앉아 도란도란 밥을 먹는다. 그렇게 ‘식구’라는 의미를 1년에 두 번씩 다시 입으로, 마음으로 새긴다.


우리집은 맛 고장, 전라남도라서 화려한 음식을 먹는다. 매번 소갈비, 잡채, 잡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애호박전, 굴전, 명태전, 육전, 새우튀김 등을 먹는다. 맛고장에 사는 특권을 누리며 산다는 걸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깨달았다. 어렸을 때는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갈 때마다 맛있는 음식이 많아서 항상 그런 음식을 먹고 사는 줄 알았다. 할머니 집에 한 달 이상 머물게 되면서 특별함을 뒤늦게 알았다.


갈 때마다 있었던 차가운 식혜는 명절 3일 전 할머니께서 하루종일 끓이고 식히는 기나긴 과정을 거친 후식이었다. 양념이 적절하게 벤  갈비도 가장 맛있는 타이밍에 먹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한 음식이었다. 신선함이 생명인 생전복이나 육회도 할아버지께서 미리 판매자에게 전화해서 명절날 받을 수 있게 마련한 음식이었다. 무엇 하나 사랑이 없다면 쉽게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나는 호로록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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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 : 언니의 전 뒤집기 솜씨

 

 

 

맛있게 먹는 사람이 있다면, 맛있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명절 음식은 특히 손이 많이 간다. 혼자하기 쉽지 않다. 여럿이 부엌에 모여 신문지를 깔고 각자 맡은 일을 한다. 보통 부엌의 일은 여성의 일로 여겨졌기 때문에 명절 여성의 노동 강도는 오히려 배가 된다.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서 일부 남성들이 부엌의 일을 참여하기도 하지만, 우리집은 여전히 여성이 많은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엄마는 전에 밀가루를 묻히고 계란 물에 적신 뒤 뒤집개를 든 언니가 전을 부쳤다. 동생은 다 된 전을 이쁘게 담았다. 나는 할머니 나물 보조와 설거지를 담당했다. 보조도 나름 눈치가 필요하다. 할머니가 미리 필요할 것 같은 쟁반을 미리 두고 재료를 미리 다듬는 센스를 발휘했다.


명절이 누군가는 먹고 쉬는 날이 될 수 있지만 누군가는 먹고 노동하는 날일 뿐이다. 명절 내내 엄마는 어깨를 주물러 달라고 하며 피로에 시달린다. 이제는 밖에서 사 오자고 말하지만, 엄청나게 맛있게 먹는 식구들을 보면 다음에도 그러기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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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만의 스탠딩 제사상

 

 

 

형식만 남은 제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매번 제사상을 차리며 엄마는 ‘너네 때까지 물려주지 않을 거다’라고 확고하게 말씀하지만, 아빠는 못 들은 척을 하신다. 어렸을 때부터 제사상 때문에 엄마가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고생하는 걸 봐서 제사를 왜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형식만 남은 전통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제사의 의미를 어렴풋이 이해했다. 명절에서 제사와 음식은 핑계고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회고’다.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누군가를 떠올리고 생각할 틈을 내는 것도 쉽지 않다. 그 사람과 함께한 시절을 다시 기억하고 함께 밥 한 끼를 먹으며 우리가 한 식구라는 것을 다시 인지할 수 있다. 다만 그 방법이 여전히 여성의 노동에 빚지는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건 구시대적이다.

 

정세랑 작가의 책 『시선으로부터』에서 새로운 제사 방법을 보여 준다.

 

‘제사를 절대 지내지 말라’라고 말한 심시선 여사가 죽고 난 뒤 10주년이 되는 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와이에서 제사를 지낸다. 제사상에 가족들이 각자 하와이에서 수집한 심시선 여사를 추억하는 물건이나 추억을 보여 준다. 어떤 이는 서핑을 배워 파도를 담고 어떤 이는 하와이의 훌라 춤을, 어떤 이는 최적 경로로 도넛을 사 오기 챌린지를 하고 어떤 이는 커피 핸드드립을 신중하게 내린다.

 

이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추모하고, 함께 모여 이야기하는 것이 제사의 본질 같다.


산소를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요즘 제사상에 생전에 좋아한 음식을 놓는다며 트렌드가 변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엄마는 카스테라를, 아빠는 건빵을 두겠다고 말하니 다들 빵 터졌다. 그것보다 더 좋은 음식을 올리기 위해 부모님과 맛있는 음식을 자주 먹으러 다니고 더 많은 추억을 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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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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