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재개막한 뮤지컬 - 이상한 나라의 아빠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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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공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동화작가 지망생 주영은 어린 시절 읽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특별한 동화를 쓰고 싶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에 항상 가로막힌다.
설상가상 동화 속 캐릭터인 시계 토끼와 체셔 고양이, 도도 새 역시 동화에서 탈출해 주영의 일상을 어지럽히기 시작한다. 어느 날, 아빠의 암 소식을 듣고 토끼 굴에 빠져버린 주영이 도착한 곳은 병삼이 입원한 부산의 병원.
주영은 이상한 나라 같은 병원에서 암이 뇌로 전이되어 열아홉 살이 되어버린 병삼과 함께 특별한 시간 여행을 떠난다. 이 여행을 통해 주영과 병삼의 숨겨진 속마음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주영과 병삼은 자신만의 진짜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2022년 큰 사랑을 받은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아빠>가 올해 다시금 개막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예술의전당을 다녀왔다.
2016년 한국콘텐츠진흥원 스토리작가 데뷔 프로그램에 선정되고, 2021년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뮤지컬 부문 선정되며 관객들의 호평을 받은 본 극은 창작진 강보영 작가와 이주희 작곡가가 실제 겪은 이야기를 시나리오와 음악으로 녹인 작품이다.
시나리오에서부터 알 수 있듯, 암 선고를 받은 아빠와 그 곁을 지키는 딸 주영, 주영이 쓴 동화 속 캐릭터들이 함께 시간여행을 하며 부녀가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감동적인 뮤지컬이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부터, 이 공연은 ‘보고 울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주영은 어릴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하던 아이로, 어릴 때 부모님이 읽어주시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깊은 감명을 받고, 몽환적이고 신비한 동화책을 쓰는 동화 작가가 되고 싶어 한다. 편의점 알바를 전전하며 동화책을 작업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고 울리는 전화 속 들려오는 소식은 후배 수현이 동화작가로 대성공했다는 배 아픈 이야기뿐이다.
고단한 날의 연속을 보내던 주영에게 아빠 병삼의 병세가 좋지 않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병간호를 위해 부산으로 내려가게 되면서 공연은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공연의 핵심은 아빠 병삼과 딸 주영의 관계성인데, 처음 주영과 병삼은 거의 의절한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병삼은 ‘글쟁이’로 먹고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냐며 그녀의 꿈을 짓밟고 폭언을 일삼아 관계가 악화되었고, 더욱이 친구 보증을 서면서 가세가 기울게 돼 결국 엄마와 주영은 병삼과 헤어지게 된다.
그렇게 의절하던 아빠의 소식이 들려온 것은 병세 악화로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고모의 전화.
주영은 고민하다가 부산으로 내려가게 된 것인데, 이때 병삼의 진짜 속마음을 알게 된다.
밤이 긴 한숨을 쉰다
나를 보내기 아쉬워서
밤이 긴 한숨을 쉰다
인사도 못 한 내가 서글퍼서
밤이 긴 한숨을 쉰다
돌아선 내가 그리워서
밤이 긴 한숨을 쉰다
인사도 못 한 내 청춘아
뮤지컬 넘버 ‘밤의 한숨’ 中
우연히 병삼이 쓴 쪽지, ‘밤의 한숨’을 읽게 된 주영은 자신이 알던 가부장적인 모습과는 상반된, 아빠 병삼의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모습을 알게 된다. 이미 뇌의 손상으로 점점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던 병삼에게 쪽지에 대해 캐묻자, 병삼은 학생 시절 글 쓰는 것을 좋아해 시 낭독회에도 참석했었다는 일화를 터놓는다. 병삼 역시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로 결국 글 쓰는 일을 포기하고 공장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과거를 알게 된 주영은 ‘글’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아빠 병삼에게 동질감, 연민을 동시에 느끼며 그를 이해하게 된다.
본 극을 관통하는 이야기는 위와 같다.
나름의 반전을 담은 이야기인데, 어쩌면 가장 뻔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필자는 병삼의 비밀이 밝혀졌을 때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필자가 느끼기엔 다소 뻔한 비밀인 데다, 왜인지 문화콘텐츠에서 늘 놓지 못하는 클리셰 같은 신파라고 느껴지는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폭언을 일삼았던 아버지에게도 사실 말 못할 이유가 있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병삼의 비밀이 풀림과 동시에 주영은 병삼을 이해하게 되고, 그동안 병삼이 행했던 폭력적인 말과 행동은 희석되는 스토리라인은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한 편으로 가정 학대가 대물림 되었다는 것, 병삼이 그토록 원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포기할 수밖에 없던 세계를 같은 이유로 반대하게 되었다는 점은 씁쓸함을 안겨주었다.
시간도 뒤죽박죽 어른이 된 것 같고
고양이는 말하고 도도새가 춤을 추는
작은 내 몸이 집만큼 커져 버렸을 때
느껴지던 자유로운 기분
나를 꿈꾸게 했던 이야기
나를 숨 쉬게 했던 이야기
뮤지컬 넘버 ‘나만의 이상한 나라’ 中
그러나 필자는 이 뻔한 스토리에 눈물 콧물을 다 뺐다. (아마 이래서 공연을 비롯한 영화, 드라마에서 이런 스토리를 아직 생산하고 있는 것 아닐까?)
단언컨대 뮤지컬 넘버와 공연연출이 필자가 느낀 아쉬움의 감정을 완벽하게 메꾸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프로젝션 맵핑(프로젝터를 활용해 현실의 사물에 영상을 보여 주는 기술)을 통해 소극장이라는 한정적인 공간을 서울, 부산, 그리고 주영이 만들어낸 몽환적이고 묘한 ‘이상한 나라’까지 모두 그려내며 완벽하게 공간적 한계를 극복해냈다. 특히 소름 돋았던 점은, 처음 주영이 편의점에서 노트북을 켜고 동화책 기고 작업을 시작할 때, 그와 동시에 주영을 둘러싼 공간에 몽환적인 영상이 영사 되며 순식간에 편의점이 뒤죽박죽 이상하고 몽환적인, 고양이가 말하고 도도새가 춤을 추어도 이상하지 않을 오묘한 세계로 탈바꿈했다.
병원에서 병삼이 검사를 하는 장면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병원 검사 과정을 이리저리 검사실을 옮겨다니는 병삼의 발자국 영상을 통해 효과적으로 표현해낸 것인데, 이 연출을 통해 1) 여러 검사가 필요할 정도로 병삼의 병세가 좋지 않다는 것 2) 병원의 검사 과정이 복잡하고 어렵다는 풍자 3) 검사 과정을 발자국 영상을 통해 순식간에 끝냄으로써 시간적/공간적 한계를 자연스럽게 극복한 점이 매우 인상 깊었다.
이외에도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장면과 드넓은 바다를 여행하는 씬 등 신선한 공연연출이 많아서, 이 연출을 보러 가는 것만으로도 뮤지컬을 보러 갈 이유는 충분했다.
게다가 호소력 짙은 보이스로 감정을 뱉어내는 병삼과 밝고 통통 튀는 도도새, 채셔와 시계 토끼의 움직임은 공연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눈과 귀가 모두 꽉 찬 공연이었다.
이렇듯 <이상한 나라의 아빠>를 통해 눈을 사로잡는 공연 연출을 직접 경험하고, 마음을 적시는 뮤지컬 넘버를 통해 작은 소극장이 꽉 찬 듯한 느낌을 겪어보길 바란다.
[권수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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