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린 아이의 방 한 켠을 구경하는 느낌 - 로렌 차일드: 요정처럼 생각하기

글 입력 2023.12.04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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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 꿈나라에 가야 할 시간이지만 이불 속에서 들리는 꼼지락 소리. 말똥말똥 빛나는 눈에 상기된 볼, 설렘 가득한 몸짓으로 그림 그리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실 이 작품들을 만든 주인공은 이런 요정 같은 아이가 아닐까,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내 어릴 적 모습이 오버랩 된다.

 

반짝이 풀로 크리스마스 카드 만들기에 신났던 겨울 밤. 아침 해가 밝자마자 자고 있던 엄마, 아빠를 깨웠다. 손을 잡아 끌고 나와서는 창문에 붙여 놓은 큼지막한 카드를 자랑했다. 반짝이 풀을 한 통 다 사용한 덕에 카드 위 유난히 밝게 빛나던 산타 할아버지와 루돌프. 로렌 차일드의 작품들은 색이 바랜 귀여운 기억들을 다시 반짝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요정처럼 생각하기’ 전시는 마치 어린 아이의 방 한 켠을 구경하는 느낌이다.

 

“이리 와봐요. 제가 이거 열심히 만들어봤는데, 빨리 보고 칭찬해주세요” 작고 통통한 손에 이끌려 들어선 공간에는 아이가 일상을 기록한 그림들과 삐뚤빼뚤 잘린 가렌드가 벽을 두르고, 구석에는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가 빛을 내고 있을 것만 같다.


작품 하나하나에 순수함과 들뜸이 묻어 있다. 작품을 설명하는 재잘대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 작품이 주장하는 바는 이와 같고, 무슨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와 같은 깊고 복잡한 감상평은 필요 없다.

 

그저 반짝거리는 이 천진난만한 귀여움을 그대로 즐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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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로렌 차일드(Lauren Child)는 영국 그림책 작가이면서 동시에 일러스트레이터다. 작가의 작품들이 가진 재밌는 공통점 중 하나는 콜라주 기법이다. 사진과 잡지, 책 등을 오려내 붙이고 물감으로 덧칠하는 등 여러 재료를 다양하게 사용했다.

 

상상력에 상상력을 덧대는 스크랩북을 닮았다. 알록달록한 색감과 다양한 질감, 패턴을 활용해 아이들의 시선을 그대로 표현하면서도 어른들의 시선까지 사로잡는 매력까지 가지고 있다.


‘난 토마토 절대 안 먹어’, ‘동생이 미운 걸 어떡해!’, ‘착해야 하나요?’

 

직관적이고 숨김이 없는 작품의 이름 또한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를 꼭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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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아이였던 적이 있다.

 

콩을 초록빛이 뭉쳐서 생긴 ‘초록방울’로, 으깬 감자는 백두산 봉우리에 걸려 있던 ‘구름 보푸라기’로 소개하는 찰리처럼 사랑스러운 상상력이 가득했을 것이다. 찰리는 “이건 당근이 아니야. 목성에서 온 ‘오렌지뽕가지뽕’이지”라며 귀엽고 엉뚱한 발상으로 여동생 롤라의 편식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만든다.


사랑이 첨가된 아이의 상상력에는 어른에게 없는 큰 힘이 있다. 그야말로 요정의 마법과도 같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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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중간중간 아이의 마음이 잘 반영된 포인트도 눈에 띈다.

 

어른들의 허리춤 정도 오는 높이에 다음 공간으로 이어지는 작은 구멍을 뚫어 놨다. 전시를 보러 온 아이들의 장난기와 상상력을 이미 간파한 듯하다. 또 아이의 시선이 닿는 바닥에도 움직임과 색채감을 준 작품을 이어 붙여놨다.


보통의 어른들은 보고 지나칠 무채색 일상이 아이들에게는 이처럼 알록달록할 수 있다니. 순수한 아이의 시선을 따라 보는 세상은 특별하고 아름답다. 모든 물체와 사람, 생물이 빛을 발하는 것이 꼭 내가 어릴 적 만들었던 크리스마스카드의 모양을 하고 있다.

 

따뜻했던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가 그립다면, 그 처음 맞던 함박눈의 설렘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전시를 통해 잠깐이나마 어린이로 돌아가 보는 건 어떨까.

 

잊고 있던 내 요정을 꺼내 먼지를 털고 윤을 내는 건 꽤나 멋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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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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