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발레 '지젤'에 대한 새로운 시각 ② [공연]

'춤'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글 입력 2023.11.0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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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연재물은 발레 작품 <지젤>을 ‘광기’와 ‘춤’이라는 키워드로 분석하고, 이를 통해 <지젤>이 지니는 가치를 되새기고자 작성되었다. 1편에서는 ‘광기’를 소재로, 그리고 이번 2편에서는 ‘춤’을 주요 소재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지젤 222.png

 

 

 

춤의 재해석 1 - 결핍과 한의 정서가 만들어낸 역설법


 

발레 작품 <지젤>에는 해석하기 어려운 요소가 크게 두 가지 있다. 첫째는 ‘왜 춤이라는 행위가 그다지도 비중 있게 다루어진 것인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이고, 둘째는 ‘왜 주인공들은 슬픈 상황임에도 경쾌한 곡에 맞추어 춤을 추었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이다.

 

첫 번째 의문, 다시 말해서 왜 미르타와 윌리들이 춤과 관련된 저주를 걸고 그토록 춤에 집착했는지에 대한 답은 극 속의 인물들이 지닌 애정 결핍적 특성을 바탕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극본에서 확인할 수 있는 독특한 설정 중 하나는 바로, 미르타와 윌리들이 전부 연인에게 버림받은 후 상실감에 빠져 죽은 인물들이라는 사실이다.

 

위의 배경을 고려했을 때 미르타와 윌리들은 외로움의 정서를 강하게 지니고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이러한 외로움과는 양극단에 위치하는 행위가 바로 ‘춤’이다. 그 까닭은 일반적으로 춤이란 사랑의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인데, 인간의 경우 춤을 출 때 함께 춰줄 상대를 필요로 하며, 동물의 경우 번식기 때 이성의 마음을 얻기 위해 추는 것이 바로 구애의 춤이다.

 

그러나 사랑을 이루지 못한 미르타와 윌리들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춤 또한 즐겨보지 못했을 것이며, 결국 사랑에 대한 결핍은 춤에 대한 결핍 및 집착으로 이어졌다고 해석이 가능하다. 그 결과 미르타와 윌리들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고독감을 해소할 방안으로 스스로를 혹사시켜가며 춤을 추거나, 혹은 타인이 자신을 위해 죽을 때까지 춤을 추도록 만드는 선택을 함으로써 사랑에 대한 대리 만족감을 느낀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방식은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그들은 외로움으로부터 탈피하고자 춤에 집착했던 것이지만, 그들의 과도한 집착이 상대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어 결국 미르타와 윌리들은 또다시 혼자 남게 되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질문은 왜 춤을 추는 장면에서 경쾌한 음악들이 사용되었는지에 관한 의문이다. 부연 설명하자면, 2막의 상황적 배경은 사실상 죽음의 공포에서도 억지로 춤을 춰야 하는 고통스러운 상황이다. 그러나 2막에서 알브레히트가 춤을 추는 장면에서 나오는 곡들은 allegretto moderato, 그리고 allegro con moto의 빠른 속도감으로 진행된다는 특징이 있다. 더불어 이 음악들은 장조의 선율을 지녔으며 행진곡풍의 극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기 때문에 극의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경쾌한 느낌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이러한 ‘음악의 역설법’은 미르타와 윌리들이 지닌 한의 정서, 그리고 알브레히트가 느끼는 극단적인 후회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이나 후회가 극단에 치닫게 될 경우 오히려 경쾌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다른 작품에서도 활용된 표현 방식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신경림 시인의 시 「농무」에서 시 속의 농민들은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고 말할 정도로 깊은 절망에 빠져 있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자신들이 느끼는 비애를 춤을 통해 흥겹게 표현해내며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 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거나 /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라고 표현한다. 이처럼 슬플수록 신명이 나는 역설적인 상황은 그들의 극단적인 한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표현해내며, 이 또한 지젤처럼 광기를 내재하는 모습이라고 해석해볼 수 있다.

 

 

 

춤의 재해석 2 - 빨간 구두 동화와의 비교



<지젤>의 또 다른 독특성은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 이야기’와 상당히 유사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해당 동화에서도 죽을 때까지 춤을 추는 모티프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빨간 구두 이야기’는 덴마크의 설화에 기반을 두는데, 빨간 구두의 화려함에 현혹된 카렌이라는 소녀가 허영심을 이기지 못해 구두를 신고 교회를 갔다가 이에 대한 징벌로써 구두가 끝없이 춤을 추게 된다. 결국 카렌이 자신의 두 발을 잘라내는 것이 바로 동화의 결말이다. 

 

위의 관점에서 봤을 때 춤은 형벌적인 특성을 지니기도 한다. 자신의 과욕에 대한 징벌로써 죽을 때까지 춤을 추는 모습이 카렌과 알브레히트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때 알브레히트는 약혼자가 있음에도 지젤에게 접근해 그녀를 유혹하고, 심지어 그녀에게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거짓말까지 했다는 점에서 과욕을 부렸다. 그렇기에 동화의 관점을 따를 경우, 알브레히트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기에 춤의 저주에 빠지게 되었다고 해석해볼 수 있다.

 

그러나 동일한 동화를 재해석한 한국 가요의 관점을 따른다면 알브레히트가 추는 춤의 의미가 또다시 변화하게 된다. 이때 재해석 곡은 이민수 작곡, 김이나 작사, 아이유 가창의 <분홍신>이며, 아래 내용은 해당 곡에서 발췌한 가사이다.

 

 

어딜 가면 너를 다시 만날까 / 

멈춰지지 않도록, 너를 찾을 때까지 / 

기다리기만 하는 내가 아냐 너를 찾아 뚜벅 / 

멈추지 않아 춤을 춘다 다시, 다시 나의 발이 자꾸 발이 자꾸 맘대로 / 

낯선 시간을 헤매이다 널 찾을까 / 

혹시 넌 나를 잊을까 너의 시간이 내게 멈춰있길 바래

 

 

이 곡에서는 카렌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그리고 카렌이 그 사람을 찾기 위해 헤매는 모습이 바로 춤을 추는 모습처럼 보였던 것이라고 해석한다. 결국 카렌이 춤을 췄던 이유는 사랑하는 이를 잊지 않기 위해서였고, 이는 알브레히트의 상황과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알브레히트는 지젤을 찾기 위해 그녀의 무덤가에 방문했으며, 또한 알브레히트는 지젤을 그리워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 방식을 따른다면 작품 속의 춤은 일종의 애도 및 추모의 성격을 지닌다고도 분석해볼 수 있다. 애도와 추모의 기본적인 원리는 죽은 이를 기억하며 잊지 않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람들은 죽은 자를 향한 제의적 행위를 하곤 하는데, 때로는 춤이 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일부 국가에서는 장례식에서 춤을 추는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해당 극에서도 오만했던 알브레히트는 지젤을 위한 제의를 펼치면서, 그녀의 고통을 몸에 각인하게 되고 그녀를 잊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은 추모 및 애도와 상당히 유사한 점을 보이기에 춤에 대한 또 다른 해석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지젤>의 가치



이처럼 발레 작품 <지젤>은 여성적 광기의 표현에 있어서 고정관념의 틀을 깨부수었다는 가치, 라이트모티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가치, 그리고 춤이라는 소재를 활용하여 한의 정서나 추모의 마음을 재해석했다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점은 여타의 발레 작품에서 발견할 수 없는 <지젤>만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으며, 동시에 <지젤>이 시대를 앞서갔던 측면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지젤>이 현대의 우리에게도 크게 사랑받고 있으며, 더불어 앞으로도 사랑받을 작품이라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고은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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