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공백 채우기: 3일간의 비 [공연]

글 입력 2023.10.27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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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3일간의 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새로운 즐거움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늘려가는 일은 얼마나 즐거운지! 이번 달 초, 사소하지만 충동적인 결정 하나로 나는 한 달 내내 톡톡한 즐거움을 얻었다. 잊을 법 하면 문득 떠올라 참 재밌는 일이었지, 하며 정보를 찾아보곤 했다. 아무튼 그 '새로운 경험'이 무엇이었냐 하면, 바로 '3일간의 비'라는 이름의 연극 하나를 본 것이었다.

 

어떻게 뜬금없이 이 극의 정보를 알게 되어 서울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는지, 정말 즉흥적이었다는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유례없이 긴 연휴에 한껏 나태함을 만끽하던 중에, 친구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대화를 나누다가 이 극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뿐이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여태 직접 관람한 연극이 손에 꼽을 정도로 연극이란 포맷에 익숙하지 않은데, 분명 좋아할 것 같다며 보고 오라는 친구의 권유에 당장 승낙을 외쳤다. 무료함을 날리기 위해서였는지, 검색하면 나오는 간단한 정보와 친구의 한줄평에 혹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잘한 결정이었다.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항상 지나치기만 했던 역에, 생판 처음 가보는 소극장에, 홀로 도착했다. 공교롭게도 그 날은 이 극의 마지막 공연일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어째 나와는 달리 연극에 빠삭해보이는 사람들이 가득한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기가 죽은 상태로 입장한 극장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무대와의 거리가 더 가까워서, 콘서트나 영화관의 구도에 익숙했던 내게는 그 구조만으로도 새로운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구석이 있었다. 과연 앞으로 저 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을 자극하는 무대 세트를 앞에 두고, 극의 설정에 맞게 변형한 관람 안내 멘트를 들으면서 막이 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극을 보고 돌아오는 내내, 나는 기억이 날아가기 전 날 것의 감상을 마구잡이로 적어내리며 세상에는 이런 종류의 재미가 있구나 하고 놀라워했다. 내가 봤던 극이 유독 그랬던 것인지, 연극의 형식이 갖는 일반적인 특징인지는 내 짧은 식견으로 판단하기 어렵겠으나 연극 '뉴비'가 구체적으로 어떤 신선함을 느꼈는지, 그 신선함과 결부되는 극의 인상적인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등에 대해 차차 후술해보려고 한다.

 

 

 

3일간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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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조잡한 요약보단 공식 시놉시스를 살펴보는 것이 극에 대한 전반적인 파악에 도움을 줄 수 있을 듯하다. 다음은 '3일간의 비' 공식 인스타그램에 게재된 시놉시스 전문이다.


 

워커는 미국의 유명 건축가 네드 제인웨이의 아들이다. 워커는 아버지 네드가 사망한 직후 돌연 자취를 감췄다가 어느 날 맨하튼의 작고 허름한 아버지의 아파트로 돌아온다. 이 아파트는 아버지 네드와 아버지의 친구 테오가 한 때 살았던 곳이다.

 

워커와 그이 누이 낸은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친구인 핍 (테오의 아들)과 함께 변호사를 찾아가 아버지 네드의 유언을 듣는다. 하지만 놀랍게도 네드는 그가 남긴 건축물 중에 가장 유명하고 값비싼 "제인웨이 하우스"를 그의 자식들이 아닌, 테오의 아들 핍에게 물려준다.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워커와 핍은 갈등을 벌이고...

 

핍을 만나기 전 아파트에서 우연히 발견한 아버지 네드의 낡은 '일기장'에서 워커는 낸과 함께 마치 암호처럼 기록된 내용들을 해석하며 과거의 진실에 다가가려 노력한다.

 

1960년 4월 3일 - 5일, 삼일간 비

 

아버지 네드의 일기장 속 기록들은 과연 어떤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일까... 

 

  

"나에게 3일간의 비가 내렸다."

 

극의 모든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짧고 감상적인 한 문장. 이 문구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를 극의 전개를 통해 알아가고자 하는 구성이 마치 추리소설의 도입과도 닮아 있다. 극은 크게 1막과 2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막에서는 여러 신화나 상징적 소재를 인용한 은유적인 대사, 과거에 대한 단서가 이리저리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어 호기심을 자아냈다. 반면 2막에서는 산발적이었던 정보값의 퍼즐을 하나의 그림으로 맞추어 보여주며, 휘몰아치는 진실과 감정의 소용돌이 한가운데로 나를 이끌었다.

 

어쩌면 조금 혼란스러울 수도 있는 구성이다. 1막이 마무리 되고 인터미션에 들어가자, 아직 본론에 들어가지 못한 것 같은 느낌, 그러니까 한 시간 내내 아주 긴 서막을 본 것만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과거에 무언가 중요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만은 확실히, 또 반복적으로 전달하고 있어 그에 대한 호기심이 나로 하여금 계속 극을 따라가게 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과연 2막에서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복잡하고 촘촘하게 얽힌 인물 간 감정선과 반전 서사가 몰입감을 극대화했다.

 

특히 '3일간의 비'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콤팩트한 인물 구성이었다. 주연 배우 단 세 명으로 극의 모든 인물을 커버한다. 배우들은 모두 1인 2역을 맡아 1막에서 워커, 낸, 핍을 맡았던 배우들이, 2막에서는 선대의 인물인 네드, 라이나, 테오를 각각 연기했다. 다른 조연이나 단역들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상당히 인상깊게 다가왔다. 간결한 구성과 한정적인 정보량이 만들어내는 적당한 공백은, 관객이 인물의 몸짓과 외양, 대사 등을 통해 사건의 내막을 자유롭게 유추하고 해석을 덧붙이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했다.


또한 이렇게 인물 구성이 간결하다는 것은, 그만큼 이 인물들에게 모든 것을 집중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극과 소설은 형식 상의 차이가 있지만, 둘 모두 서사의 짜임새가 중요하게 기능한다는 점에서 잠시 인물, 사건, 배경이라는 소설 구성의 3요소를 참고해 볼 수도 있겠다. '3일간의 비'는 그 3요소 중 특히 인물의 힘이 강력한 작품이며,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 역시 인물의 특성과 관계, 감정에서 주로 비롯한다.

 

사실 선대의 진실 자체는 복잡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동업자이자 친구(어쩌면 그 이상) 사이인 네드와 테오, 그리고 테오의 연인이던 라이나 셋은 삼각관계로 얽혀 있었으며, 테오가 새로운 건축물 구상을 위해 자리를 비운 3일 동안 네드와 라이나가 사랑에 빠졌던 것. 이후 네드의 모든 행적은 죄책감에 기반했으며 핍에게 '제인웨이 하우스'를 물려준 것 역시 그 일환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사건의 얼개만 요약하는 것으로는 '3일간의 비'가 가지는 매력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

 

물론 반전 그 자체도 상당한 흥미 요소이지만, 이 극의 관전 포인트는 이 충격적인 내막이 극 중 인물들의 심리와 선택, 또 그 선택들이 모여 결국 만들어낸 각자의 삶이 어떻게 태초의 사건과 얽혀 있는지, 그 모양새를 섬세하게 짚어내는 것이다. 이는 전술했던 '공백을 채워가는 작업의 즐거움'과도 맞닿아 있는 지점이다. 1막에서 다소 혼란스럽게 보이던 산발적인 정보들, 완벽히 이해하기 어렵던 대사와 상징들을 '3일간의 비'라는 열쇠로 해석해나가는 것이다. 워커의 이름은 왜 워커였는지, 워커는 왜 그토록 죄와 운명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무력함을 담은 신화를 역설하는지, 선대와 자식 세대를 왜 하필 같은 배우가 연기하며 그들 사이의 유사성을 찾게 하는지...

 

특히 더욱 흥미로운 지점은, 이러한 해석 작업이 양방향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과거의 정보로 후대의 일을 이해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후대의 인물들이 이루는 관계성을 보고 역으로 선대의 인물들을 읽어낼 수도 있다는 것. 이는 원작자 리차드 그린버그가 '3일간의 비'에 대해 설명한 인터뷰를 참고해볼 수 있다.

 

 

The play makes you assemble it. It lays out two sets of information, and you have to put them together. The first act is the present dreaming the past, and the second act is the past dreaming the future. The play is really about the gulf between those two ideas. It's a play about ambiguity, built on ironuy. The subject is how little we can know, how much we can know, how much we need to know. The way it works is the audience finds out more than anyone onstage will ever know.

 

 

과거를 꿈꾸는 현재인 1막, 미래를 꿈꾸는 과거인 2막. 미래의 인물들은 과거를 온전히 알지 못하고(워커는 일기장의 진실을 오독한 채 그를 불태워버린다), 과거의 인물들은 당연히 미래를 알 수 없다. 하지만 과거를 이해하기 위해선 미래가 필요하고 미래를 이해하기 위해선 과거가 필요하다는 아이러니가 극의 핵심이다. 앞서 '3일간의 비'가 인물의 힘이 강한 작품이라는 인상을 받았다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 아이러니를 '체현'하는 것이 바로 극중의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아이러니 그 자체이므로, 아이러니 밖의 진실을 영원히 알 수 없다. 1막과 2막, 과거와 미래를 온전하게 조합(assemble)할 수 있는 건 오직 관객뿐이다.

 

각 인물의 모든 면모와 행적이 주제의 체현이므로 어떤 대사와 어떤 장면을 짚든 얘깃거리가 넘치는 작품이다. 다만 미래가 과거의 이해를 돕는다는,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든 지점에 대한 설명을 보충하기 위해 워커와 낸-네드와 라이나로 이어지는 관계성을 예로 들어볼까 한다. 1막의 워커는 2막의 네드로, 1막의 낸은 2막의 라이나로 등장하는 그 연결성이 의미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극의 인물 활용 방식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먼저 '3일간의 비'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바로 인물들을 여러 번 '대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대조는 명시적이기도 하고, 은근하기도 하다. 명시적인 대조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 예는 공식 인물 소개만 살펴보아도 쉽게 발견해낼 수 있다. 가령 자유로운 방랑자 워커와 모범적인 가정주부 낸, 불안해하는 워커와 안정적이고 넉넉한 핍, 성실한 네드와 천재성을 가진 테오 등 인물을 관계 짓는 원리 자체가 대조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특히 천재성의 대비는 과거에 대한 워커의 유추(사실은 건축에 소질을 보인 건 아버지 네드가 아닌 테오였으며, 친구의 유명세를 대신 누린 네드는 그 점에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다)에 대한 주요 근거가 된다.

 

하지만 극을 살펴보면, 이 명시적인 대조들에서 한발 더 나아간 인물 이해가 가능한 것을 알 수 있다. 2막에서는 학창시절 일화나 네드의 대사를 통해 테오의 천재성을 여러 차례 강조하는데, 모순적인 것은 이 강조가 오히려 테오의 천재성이 아닌 평범함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천재라는 말과는 다르게, 작중에서 테오는 새로운 설계도를 떠올리지 못해 오랫동안 괴로워하다 표절에 불과한 졸작을 그려내고 결국 구상을 위해 자리를 비우기까지 한다.

 

그리고 관객이 테오의 천재성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할 때, 네드와 라이나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라이나의 원래 연인은 테오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라이나는 테오와 말이 통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푸념을 네드에게 늘어놓는다. 이는 곧 '네드와는 통하는 무언가를 느낀다'는 시그널이기도 하다. 그렇게 속내를 털어놓으며 서로 가까워지는 네드와 라이나. 둘은 공유하는 결이 있다.

 

비가 계속 내릴수록 관객의 의심은 심화된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1960년대 미국의 여성이었던 라이나. 그런 라이나는 네드 앞에서만큼은 무언가가 되고 싶어진다는 말을 한다. 이는 테오가 자신의 변덕스럽고 자유분방한 기질, 다시 말해 '예술가적인' 기질만을 사랑한다며 불만스러워하는 라이나의 말과 함께 생각할 때 상당히 의미심장한 구절이다. 어쩌면 테오는 자신의 부족한 영감을 라이나에게서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진짜 잠재성을, 천재성을 가지고 있던 건 라이나였던 게 아닐까, 의문이 피어오른다.

 

이 심화된 의심은 결말에 이르러 확신이 된다. 네드의 천재성을 알아보는 감식안을 가진 라이나, 그런 라이나의 촉구에 힘입어 죄책감 속에서도 작업에 돌입한 네드. 워커의 유추와는 달리, 번뜩이는 영감으로 '제인웨이 하우스'라는 걸출한 건물을 만들어낸 건 정말로 네드였다는 내막과 함께 관객은 모든 것을 알게 된다. 정말로 천재였던 건 네드와 라이나였다. 그들은 서로에게 연인의 친구, 친구의 연인으로서 존재하며 테오라는 교집합을 공유했지만, 정작 둘의 결합은 그 교집합을 따돌림으로써 이루어진다. 네드와 테오 사이의 대조 구도가 네드와 라이나라는 묶음과 테오 사이의 대조 구도로 뒤집히는 것이다.


이렇듯 네드와 라이나가 '동류'였다는 점은 후대에서 어떻게 이어지는가? 바로 혈연 관계다. 네드와 워커, 라이나와 낸을 같은 배우가 연기한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네드와 라이나의 '하나 됨'은 워커와 낸의 관계에서는 '동족'(같은 피를 이어받았다는 점에서)이라는 특성으로 이어진다. 라이나가 테오에게서는 느낄 수 없던 동질감, 그것을 채워주던 네드. 그런 둘의 연결감은 물보다 진한 피라는, 거스를 수 없는 천부적인 관계로 심화되는 것이다.

 

단순히 워커와 낸이 남매라는 표면적인 사실 하나가 과거 네드와 라이나 사이의 동질성을 보여준다는 것은 아니다. 둘의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요인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워커와 낸은 특히 더 동질적이다. 언뜻 보기에 서로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워커와 낸. 하지만 그들은 어머니의 투신이라는 충격적인 유년기의 경험으로 깊이 엮여 있으며, 이 경험은 둘이 성인이 되어서도 그들의 선택과 행동을 형성해나가는 근간이 된다. 어린 워커가 충격을 받고 집 안에 숨어 있던 것을 어린 낸이 발견했듯, 성인이 되어 방황하던 워커는 자신을 누나가 찾아주길 바라며 1년간을 기다렸다.

 

평생 워커를 불안해하던 낸, 차라리 동생이 정말로 사라진 것이었으면 하고 바라던 자신에 죄책감을 느끼던 낸, 하지만 결국 동생을 끊어낼 수 없는 낸. 그리고 그런 누나를 항상 기다리는 워커. 관객은 이 끈질긴 관계를 이해할 때, 비로소 과거 네드와 라이나의 동질감이 얼마나 강력한 것이었지를 온전히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네드이자 워커, 라이나이자 낸인 인물들을 통해서.

 

 

 

Assemble


 

그리고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3일간의 비'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공백 채우기 작업의 극히 일부이다. 이 외에도 1960년의 세 남녀, 1995년의 세 남녀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단서들은 이 글에서 미처 다 담아내지 못할 만큼 극 중에서 훨씬 풍부하게 제공된다. 미국 극작가의 작품인 만큼, 완두콩 공주 동화와 오이디푸스 신화, 기독교의 원죄 개념 등 차용된 서브 텍스트들의 서양적 맥락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극을 읽어보는 것도 흥미로운 작업이 될 수 있다. 아무튼 더 덧붙일 것 없이, 이 글의 결론은 이것이다. 조합해볼 수 있는 조각들은 아주 널렸다는 것.

 

구구절절 장황했지만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본다. 이 극이 나에게 알려준 새로운 즐거움에 대해. '3일간의 비'는 연극이라는 포맷이 가진 본질적인 간결함을 모범적으로 품고 있는 작품이었으며, 이 간결함이 만들어낸 공백을 어떤 해석으로 채워나갈 것인지 고민하는 일은 다른 매체에서는 흔히 느껴보지 못한 신선함이었다. 자유로운 사유의 즐거움에 이토록 무아지경 빠져들게 하는 작품을 참으로 오랜만에 만났다.

 

사실 이건 어쩌면 오래된 즐거움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무아지경을 위해 숱한 작품들을 보고 듣고 읽으니까. 또 한번 즐거움을 가져다 줄 행운과도 같은 다음 작품은 과연 무엇이 될까. 조금 궁금해지는 밤이다.

 

 

[황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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