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바이러스에 다시 한 번 점령당한 세상 - 은하백만년의전쟁사

글 입력 2023.10.22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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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날의 과오는 때로는 성공 이상의 수확이 되어 돌아온다. 뼈저린 교훈이 확신할 수 없는 미래, 그리고 되풀이될지 모르는 실수를 어렴풋이라도 예견하게 한다. 미래에 앞서 비관하고 최악의 그림까지 고려할 수 있는 원거리의 시야는 상처를 힘겹게 봉합해본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막연히 멈춰서기만 해서는 손에 넣을 수 없다. 아픔을 근간히 추스르고 머리를 차갑게 식힌 뒤, 눈감아 버리고 싶은 착오들을 명료하게 진단해야 한다.


창작집단 상상두목의 <은하백만년의전쟁사>(작/연출 최치언) 역시 그러한 진단을 실험적으로 시도하는 창작극이다. 이들은 무대를 빌려 인류사에 영원히 남을 지난 3년간의 위기 이후의 포스트 펜데믹 시대에 되새겨야 할 질문을 제시한다. 지난 2020년 <굴뚝에서는 열흘 전부터 연기가 나고 있다>라는 제목으로 입체 낭독극을 통해 처음 선보인 후, 2021년 종로문화다양성연극에서 온라인으로 상영된 후 2023년 일상문화공감도시 강북Festa에 선정되면서 <은하백만년의전쟁사>로 재탄생해 무대 위에서 실연됐다. 이번 공연은 시온아트홀에서 지난 10월 6일에 개막해 약 열흘간 무대에 올랐다.


 

시놉시스

 

먼 미래,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자기복제와 변이를 거쳐 인간들이 만든 치료제와 백신을 무력화시킨다. 전파력과 치사율은 초기 바이러스의 몇십 배를 능가하게 되고, 보균자들도 언제 다시 바이러스가 자신의 몸속에서 살아나 주변을 감염시킬지 모르는 상황. 


이러한 인류사적 대 혼돈 속에서 ‘보건 파시즘’이 장악한 국가는 바이러스 보균자와 확진자들을 감금, 살처분할 수 있는 ‘바이러스 제거법’을 통과시켜 바이러스로부터 건강한 국민을 구하려고 한다. 보균자와 확진의 증상이 있는 국민은 ‘보건 파시즘’인 집단우선주의의 폭압으로부터 탈출하여 더 나은, 더 윤리적인 국가를 찾아 떠도는 ‘바이러스 난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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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창작집단 상상두목 제공

 

 

공연 시작 전, 무대를 가린 반투명한 커튼 위로 정체 모를 영상이 프로젝션됐다. 빨간색의 조악한 왕관을 쓴 인물의 입에서 목소리라기보다는 소음에 가까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리고는 서기 2080년 인류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는 텍스트가 등장한다. 진화를 거듭한 끝에 높은 전파력과 치명적인 치사율을 지닌 바이러스 ‘시리우스80’이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고 있으며, 몇몇 국가들은 보건 파시즘에 점령당해 확진자들을 살처분하는 보건법을 통과시켰다는 내용이다.


커튼이 너머의 무대는 ‘Sirius80’이라는 그래피티가 그려진 슬레이트 벽을 배경으로 중앙에 위치한 회전목마, 여기저기 널린 낡은 조명장치와 무대 우측에 자리한 오래된 난로로 구성된다. 알록달록하고 화려했을 본래의 색깔이 무색하게도 먼지투성이의 폐허가 되어버린 유원지가 극의 공간적 배경이다. 


이곳은 바이러스 난민, ‘당신’과 ‘너’가 몸을 지킬 수 있는 적도의 한 나라로 밀항하기 위해 모이기로 한 장소이기도 하다. 방독면과 산소마스크로 얼굴을 숨긴 여자와 남자는 서로를 발견하고 멀찍이 떨어진 채 상대방을 경계한다. 첫 만남에서 여자는 남자를 ‘너’로, 남자는 여자를 ‘당신’으로 부르겠다 약속했지만, 이 2인칭 대명사는 낯선 상대방을 칭할 때 너무도 당연한 호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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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창작집단 상상두목 제공

 

 

그래서 이들은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회전목마를 중심에 두고 둥근 궤적을 그리며 서로를 탐색한다. 진짜 확진자가 맞는지, 혹 확진자로 위장한 보건경찰은 아닐지 말이다. 그리고 이들이 상호 동의한 방법은 ‘서로가 서로를 피하지 않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가까이 다가와 방독면과 마스크를 벗고 코앞에서 호흡을 들이내쉬며 서로의 숨결을 공유한 끝에야, 이들은 의심을 거두고 최소한의 대화를 시작한다. 


이들은 나라로부터 버림받은 확진자라는 점에서는 같은 집단에 속하지만, 둘은 정치적 견해부터 성향, 말투까지 모든 것이 다르다. 한때 정부를 대변하며 사회운동가 노릇을 했던 ‘당신’과 한시라도 조용히 있지 않고 틈만 나면 글을 쓰는 ‘너’는 사사건건 부딪치지만 별수없다. 밖에서 열어주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창고에 갇혀 자신들의 밀항을 도울 브로커만을 기다리면서 서로에게 백신 주사를 놓아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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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창작집단 상상두목 제공

 

 

정부와 결탁한 제약회사의 백신이 과연 효력이 있는지조차도 미심쩍다. 백신을 맞으면 몸을 가누기도 힘들 정도로 극심한 두통과 환각이 밀려온다. 두 인물이 몸부림치며 괴로워할 때 등장하는 인물들은 과연 ‘당신’과 ‘너’의 환각일까, 아니면 현실일까. 소독약을 든 방역복 차림의 사람들, 영상에도 등장했던 빨간 망토 차림의 시리우스80, 보건 파시즘으로 나라를 장악한 ‘코틀러’와 보건경찰들이 나타나 회전목마 위에서 빙글빙글 돌고 춤을 추며 무대를 휘젓는다. 


이 캐릭터들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기보다는 비유적으로 등장하는 존재들이다. 환각과 현실의 경계에 있는 이들뿐만 아니라 극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당신’과 ‘너’도 마찬가지다. 극의 모든 대사는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대화가 아닌 퍼포먼스의 색채가 짙은 일종의 낭독에 가깝다. 그저 대명사에 불과한 인물들의 이름 역시도 특정한 맥락을 구체적으로 상정하기보다는 언제 어떻게 닥쳐올지 모르는 위기를 포괄적으로 상상하는 <은하백만년의전쟁사>만의 색깔을 보여준다. 

 

두 주인공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죽여야 하는 기원이 어디서 왔는지 지속적으로 논한다. 이들은 무대 위의 맥락에서 벗어나 커튼 앞에 서서 관객에게 직접 질문하기도 하고, 공연장의 입구를 무대의 일부로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백신에 취해 자신이 감염시키거나 감염당했던 과거의 기억을 맥락 없이 늘어놓고, 계속해서 불이 켜지고 꺼지는 난로나 ‘너’가 쥔 총의 총성, 무대와 객석 사이의 커튼을 어떤 신호를 전달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극의 결말부도 명쾌하게 설명되기보다는 관객으로 하여금 직접 두 인물의 최후와 브로커의 정체를 상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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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창작집단 상상두목 제공

 

 

<은하백만년의전쟁사>는 지금으로부터 반 세기가 흐른 2080년을 다루지만 히틀러에서 차용한 파시스트 정치인과 확진자를 살처분하는 방역 체제는 도무지 발전된 미래라고는 여겨질 수 없는 양상이다. '은하백만년의전쟁사'라는 제목과 달리 이 극은 백만년 뒤의 이야기도 전쟁 이야기도 아니지만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들의 탈출극이라는 점에서 정부와 국민의 전쟁과 진배없다.

 

이 극은 우리의 현실에 긴히 밀착되어 있다. 인류가 20세기의 파시즘과 21세기 팬데믹이 낳은 권위주의의 위기를 완전히 탈피하지 못했을 때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미래를 그린다. 하지만 날카로운 주제의식과는 대조적인 실험성이 눈에 띄게 두드러진다. 인물들의 진짜 정체와 서사의 인과관계, 대사가 가리키는 명확한 의도를 하나의 정답으로 간파해낼 수 없다. 모든 장치의 해석과 의미부여의 상당 부분이 관객의 몫에 맡겨진다. 이 점에서 서사의 방향성이 한결 지시적이었다면 극이 전하는 메시지의 파급력이 더 강력했으리라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그럼에도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쏟아진 수많은 예술작품들 사이에서 공간 연출이나 아이디어의 개성만큼은 독보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시온아트홀의 구조와 무대의 연출, 인물들의 의상이나 소품 등이 시각적인 통일감을 이루어 스산한 잔혹동화와도 같은 이미지를 연출했다. 그에 힘입어, 지금 떠올려보면 비상식적일 따름이었던 지난 3년의 시간이 풍자적으로 시각화되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공연 속 장면들은 인류가 저질렀던 실수들을 확대경처럼 극단적으로 부풀려 보여준다. 연극 무대이니만큼 당연한 표현이겠지만, '연극적으로' 과장된 묘사임에도 그 본질은 변함없다. 지나온 시행착오의 본질적인 핵심을 짚어내 그 잠재적인 위험성을 보여준다. 인류가 잊어서는 안 될 귀중한 가치들이 흔들렸던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 포스트 팬데믹의 시대에 망각하기 쉬운 지난날의 치명적인 독성을 다시금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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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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