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녀장의 시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다 [도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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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녀장의 시대>, 수필집에 이어 읽게 된 두 번째 이슬아 책이다.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알려진 이 책의 내용이 너무나도 궁금해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명료한 글을 쓰는 이슬아 작가가 '페미니즘'이라는 엄중한 주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1인 출판사를 설립한 슬아 사장이 자신의 부모인 웅이와 복희를 출판사 직원으로 고용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대대손손 내려온 가업이 아닌 딸이 창업한 '낮잠' 출판사, 그리고 거기서 일하는 가족 구성원들. 딸이 사장이라는 것도 신기한데, 출판사라는 배경은 더욱 신선하다. 사장 딸이 고용인 부모에게 임금을 주는 시스템이다. 이름하여 '가녀장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페미니즘 소설로 읽지 않았다. 물론 기존의 가부장제와는 완전히 다르게 딸이 높은 위치에서 가족 구성원들을 두지휘한다는 점에서 그렇게 볼 수 있다. '가녀장'이라는 새로운 타이틀에 힘입어 페미니즘 소설로 알려지는 것도 그리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에서 슬아 사장은 기존의 가부장처럼 집안의 모든 것들을 책임 지거나 혼자 결정하지는 않는다. 가령 웅이의 빚을 슬아가 대신 짊어지거나 혼자 갚지 않고, 출판사 운영에 있어서 슬아가 단독적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여타 고용주-고용인의 관계에 맞게 슬아는 청소와 운전 그리고 주방 업무라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 고용인을 둔 것이다. 그 자리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 웅이와 복희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기존 가부장제에서 무시되었던 집안일이 하나의 업무로 받아들여졌다는 점, 그래서 웅이와 복희는 자신들의 노동에 정당한 임금을 받는다는 것이다.
만약 이 소설이 체제를 뒤흔들거나 가부장제를 신랄하게 비판하기 위해 쓰였다면 가부장이었던 웅이를 고용하는 대신 아버지와 딸의 경쟁구도를 그리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 슬아가 사장이라고 해서 웅이가 슬아 밑에서 일한다고 해서 가녀장이 가부장을 지배하지 않는다. 웅이는 슬아의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또 다른 일을 한다. 사장이 고용인들의 자율성을 보장하듯이 가녀장도 아버지이자 고용인인 웅이의 일을 존중하는 것이다.
기존의 가부장제와 또 다른 점은 출근과 퇴근이 있다는 것이다. 기존 가부장제에서 집안일의 퇴근은 꿈꿀 수 없었다. 눈뜨면 시작되어 가부장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기에 끝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슬아의 출판사는 엄연히 '회사'이기 때문에 출퇴근이 명확하다. 집안일에 끝이 존재하는 것이다. 퇴근 후에는 웅이와 복희는 업무 지시에 따르지 않고 각자 원하는 일을 한다. 다시 부모와 딸의 위치로 돌아오는 것이다.
"낡은 관습을 모두 전복시키는 이야기도 필요하지요. 그러나 그것은 제가 잘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모두 전복하려 했다면 마음에 걸리는 얼굴이 속속 떠올랐을 거예요. 그 사람들도 사정이 있었을 텐데 마음에 계속 걸리는 거지요. 가녀장의 시대보다 용감하고 전투적인 이야기가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뒤에서 무언가를 챙기는 이야기도 필요해요. 제 소설이 그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뉴스 1 인터뷰 중)
나는 이 소설이 과도기에 있는 지금 시대를 잘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체제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어루만지며 변화를 선도하는 일. 그 여정에 있는 우리에게 소설 <가녀장의 시대>는 새로운 시도가 될 것이다.
[박진솔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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