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느린 편지 [사람]

글 입력 2023.10.13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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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갑자기


 

글 쓰기를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이나 지인들에게 편지는 많이 쓰지 않았다. 굳이 편지가 아니어도 늘 안부를 묻고 있어서다. 물론 매일 연락을 넣지는 않고, 아주 가끔 상대방이 생각나면 연락하는 식이다. 특히 부모님과는 매일 보는 사이라 편지가 크게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내는 카카오톡 메시지도 편지라면 나는 늘 편지 쓰는 사람일 테지만, '종이 편지지'에 편지를 쓴 일만 생각해 보자. 16년 전 어버이날과 생신 이후로는 없었다. 2년 전 아버지의 생신에 엽서 두 장을 빼곡히 채워 쓴 것 말고는. 갑자기 그 옛날에 꼬깃꼬깃 쓴 편지가 생각이 나서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아빠에게 썼던 편지를 보내줄 수 있느냐고. 그렇게 나는 지나간 편지를 다시 읽었다.

 

 

 

아버지께, 최초의 편지


 

최초의 편지는 이미 맛있는 밥반찬이 된 지 오래다. 부모님께서 나를 놀리려고 종종 꺼내오시는 소재라는 말이다. 제대로 읽으면 나름 진지한 편지가 될 텐데, 이제 와서 읽어보니 두 분께서 왜 그렇게 웃으셨는지 알겠다.

 

 

아버지께, 아버지 회사 다니는 일을 해서 순위에 오르셨죠?

 

 

편지의 첫 문장이다. 어린 날의 아무개, 무엇이 그렇게 걱정이었나? 삐쭉 튀어나온 글씨만큼이나 어색한 표현으로 아버지를 걱정하다니. 별 일 없이 무던하시느냐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오해를 사기 좋은 표현이다. 집이나 회사에 큰 일이 생기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자존심이 괜찮느냐는 일종의 안부 인사였던 것 같다. 어머니도 하지 않았던 말을 어린 시절의 내가 하고 있었다니 꽤 재밌다.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은 잔소리 폭탄이다. 그중 하나만 꼽자면 술,담배를 하지 말라는 잔소리다. 아버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술담배를 일절 하지 않으시지만 나 혼자 꼬장꼬장하게 술담배를 하지 말라고 외치고 있었다. 언어 파괴가 심각하지만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다. 아무래도 나는 아프지 말라는 말을 이상하게 내뱉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었나보다.

 

 

제가 무얼 해드릴까 싶어요. 평생 아프지 마시고 술, 담배 피지 않게 하고 깨끗한 환경 만들어 가요. (중략) 때쓰고 대드는 저에 모습은 언제 사라질까 걱정된다라고 하고 계시지 말고 크면 훌륭한 꿈을 키우는 사람이 되고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2007. 05. 07. (월)

 

 

최초의 편지는 아래로 갈수록 문장이 뒤로 밀리는 역피라미드 모양의 행위예술에 가까웠다. 문단의 해체와 맞춤법 파괴를 통해 구시대적 유물을 파괴하겠다는 의지, 질서정연한 삶을 동시에 보여주는 '아티스트 꼬맹이'라고 포장하지만 이미 늦었다. 떼쓰고 대드는 어린아이도, 훌륭한 꿈을 키우는 어른도 아니지만 글 쓰는 대학생으로 성장했다고 정정한다.

 

 

 

아빠에게, 새로 쓴 편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편지는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고 있었고, 편지 쓴 사람은 무언가를 하지 말라는 꼬장꼬장한 어린이에서 아버지의 안부를 안부답게 물어보는 딸이 되었다. 안부답다는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순위보다는 정다운 것 같다.

 

 

그저 딸이라는 이유로 참 많은 것을 받아온 것 같아요. 그래서 언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어요! 회사와 집을 반복하시느라 아빠 취미가 없다고 느꼈거든요. 아빠가 이뤄내고 싶은 목표가 뭐였을지 궁금한데, 언제 한 번 아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2021. **. **.

 

 

마지막 편지를 쓰고부터 2년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아빠의 취미를 잘 모른다. 오래도록 지켜본 견고한 모습은 좀체 허점이 없다. 내게 늘 같은 모습만을 보여주는 아빠의 취미는 책 읽기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일을 마치고 돌아오시면 새벽까지 책을 읽으시다 안방으로 가서 주무시고는 하셨으니 충분한 근거다.

 

가끔은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등의 질문을 쭉 하시다가 내가 털어놓지도 않은 문제를 놓고서 건실한 해결책을 제시하시고 약간의 응원을 남기셨다. '우리 딸처럼 살가운 단어는 아니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법한 응원이 계속해서 남았다.

 

디저트 주문도 새로 생긴 취미라고 추측해 본다. 부모님과 함께 자주 가는 카페가 있다. 아빠는 항상 내게 디저트 주문을 맡기신다. '바삭한 거', '부드러운 거'를 알아서 사 오라고 하신다. 이름은 절대 알려주지 않으신다. 아빠의 입맛이 '고소한 아름다움', '앞면이 초콜릿인 동그란 과자' 말고 다른 입맛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지점이다. 아빠의 과자가 가족과 함께하는 크루아상과 퀸아망으로 바뀌는 순간.

 

그러니 독서와 디저트 주문 말고도 새로운 취미를 꼭 알아내야겠다. 언젠가는 아빠의 인생 이야기를 꼭 들어보고 싶다. 정작 중요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으시고, "그런 이야기 안 좋아한다."라며 대화를 마무리 지으시겠지. 혹은 "아빠는 다른 거 안 바라고 아무개가 밝게 자랐으면 좋겠어."로 요리조리 빠져나가실 것 같다.

 

 

 

느린 편지를 남기고


 

초등학생 아무개가 쓴 편지와 대학생 아무개가 쓴 편지를 다시 읽어보니 나는 계속해서 아빠에게 무언가를 부탁하고 있었다. 하지 말라는 말에서 하라는 말, 골 때리는 순위부터 아빠라는 호칭을 뗀 사람 이야기까지 어떻게 보면 야무지다. 내가 묻지 않았던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아빠처럼, 나도 아빠가 묻지도 않은 내 안부를 전하겠다.

 

나는 매일 흰 종이(혹은 화면)를 까맣게 채우며 산다. 마음에 들지 않는 글 여럿, 얼마 되지 않는 나쁘지 않은 글을 읽으며 문득 사람의 머리가 새하얗게 센다는 사실을 생각한다. 그 순간부터 흰 종이는 눈밭, 형형한 눈빛은 모두 눈밭의 전유물이 될 것임을 안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 남은 시간에 몇 통의 편지를 느리게 남겨놓기로 한다. 오래도록, 아주 느리게.

 

 

[이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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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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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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