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시 돌아온 그들을 환영하며 [사람]

살아 숨 쉬는 추억이 되어 준 그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
글 입력 2023.09.2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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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행복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행복에는 인간의 ‘경험하는 자아’가 현재의 삶에서 경험하는 행복이 있고, ‘기억하는 자아’가 과거를 회상하며 삶을 기억하는 데서 오는 행복이 있다.

 

한때 행복은 오로지 과거로부터 오는 것이라 믿던 시기가 있었다. 모든 게 흐릿하고 막막하기만 했던 열아홉, 이십 대라는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기보다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뒷걸음질만 치던 나는 내 안에서 빛을 잃어가는 기억들을 붙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나를 행복했던 시절을 잊은 불행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행여나 작은 기억의 조각 하나라도 놓칠세라 나는 떠오르는 모든 것을 부둥켜안고 그것들을 메모장 속에 꾸역꾸역 집착스럽게 주워 담았다. 이것은 내가 불안한 수험생활을 버티기 위해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이었고, 불투명한 미래에 지쳐버린 고3의 삶을 버틸 유일한 생존 방식이었다. 그렇게 내 머릿속에는 외워야 하는 수학 공식 대신 아주 오랜 동면 상태에서 방금 깨어난 추억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과거의 그들을 붙잡고



공교롭게도 그 기억들의 중심에는 한 아이돌이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친구에게 전해 들은 그들의 데뷔 10주년 방송을 보면서 예나 지금이나 하나도 다를 게 없는 그들의 모습에 하염없이 웃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렇게 그들을 바라보면 그들을 바라보던 내 어린 시절이 거울처럼 떠오른다는 사실을.

 

부모님에게 뭘 사달라고 도통 조른 적이 없던 내가 그들의 첫 번째 콘서트 DVD를, 그들이 광고모델로 있는 브랜드의 운동화를, 좋아하는 멤버가 자주 입는 외투를 사달라고 보챘던 날들이 떠올랐다. 학원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스마트폰으로 그들의 뮤직비디오를 몇 번이고 돌려보고, 별로 친하지 않았던 친구가 같은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굿즈를 사서 내게 나눠주고, 주말이 되면 (지금 생각해 보면 허접한) 그들의 굿즈를 사기 위해 친구와 함께 문구점 앞에서 기다렸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기억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예상치 못한 곳으로까지 데려갔다. 십 년도 넘게 살았으니 고향이라고 불러도 될 법한 나의 옛날 동네, 피구를 하기 위해 점심시간만 되면 사수하기 바빴던 학교의 뒷동산, 단짝 친구와 매일 가서 쌀떡볶이를 먹었던 학교 앞 분식집, 갑자기 해외로 떠나게 되었다며 몇 년 후에 돌아오면 롯데월드를 같이 가자고 약속했던 친구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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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구덩이 속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던 기억들은 뭐랄까, 전부 아름다웠다. 그 속에는 어리고 미숙하지만 티 없이 순수했던 내가 있었다. 그렇게 순수했던 내가 보낸 행복한 순간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노래 속에 담긴 그들의 목소리와 사진 속에 담긴 그들의 얼굴이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과 만날 수 없는 그 시절의 나를 소환한 것이다.

 

그들이 나를 구원한 그날 이후로 나는 한동안 잊고 지냈던 그들을 다시 사랑하기 시작했다. 가사는 물론이거니와 멤버별 파트와 애드리브까지 전부 외워버린 노래를 닳아 없어질 때까지 들었고, 이미 여러 번 보아서 익숙한 리얼리티 프로그램 여러 개를 다시 익혔다.

 

그러나 그들을 향한 내 마음은 실은 닿지 않는 내 지난날을 향해 뻗어 있었고, 내가 바라보는 그들은 삼십 대를 맞이한 현재의 그들이 아닌 내 추억 속에 저장된 이십 대의 그들이었다.

 

 

 

성숙한 팬이 되어 바라본 그들은


 

십 대와 이십 대의 분기점을 지나며 나는 자라났다. 그동안 고작 한 살 먹는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나의 삶은 열아홉에서 스물로 넘어가는 그 찰나의 순간에도 거센 소용돌이를 겪어야 했다. 암흑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스물, 스물하나, 그리고 스물둘이 된 나는 새로운 것들을 보기 시작했다.

 

나와 적게는 아홉 살, 많게는 열세 살까지 차이가 나는 그들은 열한 살의 나에겐 분명 너무나도 큰 ‘어른’이었다. 이미 완성형이고 감히 다가설 수조차 없는, 어쩌면 훨씬 나이가 많은 나의 부모님보다도 완벽하게 느껴지는 그런 존재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커 보였던 그들의 나이는 기껏해야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 딱 지금의 내 나이였다. 한창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자유롭기를 원하고 철없어도 괜찮은 그런 나이인데, 그들은 아이돌이라는 직업을 선택하고 일찍이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과연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감내해야만 했을까. 힘든 순간들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 웃기 위해 마음속으로 얼마나 다짐하고 또 다짐했을까.

 

‘아이돌’이라는 화려한 포장지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그들의 ‘삶’을 마주하게 되자 예전에는 그저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그들이 나와 똑같이 한국 땅을 밟고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한 청년으로 느껴졌다. 내가 사랑했던 그들의 모습은 팬인 나의 것이기 이전에 그들 자신의 청춘이었고, 내가 나의 현실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듯이 그들도 그들의 현실 속에서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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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을 끝으로 긴 공백기를 맞이했던 그들은 지난 2023년 5월, 저 멀리서 크게 나팔을 불어왔다. 5년 만에 완전체로 돌아온 그들은 리더를 대표로 하여 팀 이름을 붙인 회사를 직접 세우고 일곱 번째 미니 앨범을 발매했다. 8월에는 서울에서 두 번의 콘서트를 하고 얼마 전에는 해외투어까지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나의 지난날을 추억하기 위해 고집스럽게 붙잡았던 그들의 과거와 인사를 나누고 삼십 대의 그들을 바라보니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들에게는 변한 구석이 별로 없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욱 성숙해졌으나 함께 있을 때는 여전히 시끄럽고 또 여전히 다정했다. 아, 변한 거라면 더욱 끈끈해진 그들의 우정과 더욱 달콤해진 팬들을 향한 사랑이 있으려나.

 

변하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랑이 식지 않게 그 온도를 유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무턱대고 기대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들은 언제나처럼 한결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반긴다. 무대 위에서는 누구보다 진지하게 춤을 추고 노래하는, 무대 뒤에서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하며 서로를 부둥켜안는 그들을 보며 나는 이렇게 느낀다. 내 추억이 눈앞에서 살아 숨 쉬고 있구나.

 

 

 

추억은 정말 추억일 뿐일까


 

나는 지금도 기억의 힘을 믿는다. 운이 좋으면 빛이 바래는 정도에 그치고 운이 나쁘면 영영 사라져 버리기도 하는 것이 기억이지만, 그저 일시적인 감정에 불과해 한 번 쓰면 닳아 없어지는 순간의 행복은 기억할 수만 있다면 죽을 때까지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영원의 행복이 된다.

 

여전히 추억을 갉아먹으며 사는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휴대폰의 사진첩을 열어 기록해 둔 과거의 순간들을 돌아보곤 한다. 몇 년 전 가족과 함께 갔던 해외여행, 날씨가 좋은 오월에 친구들과 함께 걸었던 정동길, 유난히 아름다웠던 한 해의 마지막 해넘이. 모두 그 순간의 행복했던 기억을 꺼내어 나를 웃게 하는 것들이지만, 무엇보다 멈춰버린 시계처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까 두려웠던 그들이 내 사진첩 속에서 오늘의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을 때, 나는 추억은 추억일 뿐이라는 말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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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행복은 오로지 과거로부터 오는 것이라 믿던 시기가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행복은 과거에도 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다고 믿는다. 이런 믿음을 가능하게 해준 그들에게 참 고맙다. 소중한 나의 추억이 재로 변하지 않도록 지켜주고 그 자리에서 나의 공백을 한 칸씩 채워준 그들에게 작은 마음일지라도 무한한 사랑을 주고 싶다. 이상, 지금까지도 유일했고 앞으로도 유일할 나의 아이돌 인피니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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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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