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포켓북 안에 담긴 세상 [도서]

글 입력 2023.09.1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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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어본 적이 있나요?"

 

이런 질문을 먼저 건네본다.

 

어디선가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빠른 속도로 빨려 들어가는 무언가 안에서 그와 같이 독서에 온 집중을 다 하며 빨려 들어가는 일이라고.

 

항상 어디론가 이동할 때면, 가방에 얇은 책, 혹은 좋아하는 책을 한 권씩 넣어 다녔다. 가끔 깜빡하고 책을 두고 나오면 가벼워진 가방의 무게만큼 심심한 날도 없었다.

 

어느 날, 우연히 용산의 아이파크몰에서 점심을 먹고 서점에 들렀다. 평일이었지만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발길이 끊기지 않던 서점이었다. 잠깐 둘러보기 위해 서적이 진열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곳에서 ‘혁신템’을 만났다.

 

바로 ‘포켓북’이었다. 포켓북이란, 기존 책의 크기보다 훨씬 작은 크기로 출시된 책이다. 여러 종류의 책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가격도 참 합리적이었다. 한 권에 5,000원도 하지 않다니! 나처럼 책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정말 혁신적인 아이템이다.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마음에 드는 책을 한 권 골라 집었다. 새로운 친구가 생긴 기분이 들어 소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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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북은 정말 손을 가볍게 뻗어 움켜쥘 수 있을 만큼 작은 크기였다.

 

어김없이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로 향하던 날. 책장을 처음 넘기기 시작하며 내심 놀랐다. 작아진 크기 때문인지 글자의 크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작았고 촘촘했다. 글자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책을 가만히 노려봐야 했다.

 

그런 시간이 좋았던 이유는, 앞서 말했던 ‘빨려 들어가는 공간 속’에서 책에 집중하며 글자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그런 내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켓북에는 작다고 얕볼 수 없는 힘이 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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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도 못 하는 먼 과거에,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무료한 시간을 채우기 위해 신문을 읽었다. 지금은 그 자리를 스마트폰이 대신하고 있다. 신문과 스마트폰 안에는 세상의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신문으로는 직접 인쇄된 글자를 눈으로 더듬어 읽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스마트폰에서 디지털화된 글자를 읽는 것과는 다르다. 그 차이점을 손으로 느껴볼 수 있다. 스마트폰에 담긴 활자를 만지기 위해 액정에 손을 가져다 대면, 온통 같은 감촉이 느껴진다. 미끄러운 액정뿐이다. 신문의 활자는 마찬가지로 종이의 질감만 느껴질 뿐이지만, 손에 묻은 신문지의 향이 알싸하다. 매만져지는 것이 특별히 없더라도 향이라도 남는다.

   

아무것도 손에 묻지 않는 스마트폰은 어쩌면 이 세상에 없는 ‘가상 세계'의 물건 같다. 반대로 신문에서 묻은 향은 ‘실물’의 힘으로 작용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분석적인 시선으로 눈앞에 있는 것을 직접 바라볼 힘을 깨워준다.

 

자신도 모르게 향을 입는다는 사실은, 어떤 불특정한 세계를 입는다는 것과 같다. 옷을 처음 사서 착용해 볼 때, 이리 돌려 입고 저리 돌려 입으며 내 몸에 맞는 핏을 찾는다. 이처럼 신문이 주는 시간은 궁금했던 세계를 직접 입어보며 경험할 수 있게 한다. 그들 중 일부는 딱 맞는 핏을 찾아 이미 자기 옷이었던 것처럼 자신의 세계를, 생각의 창을 넓히기도 한다.

 

다시 돌아와서, 포켓북도 신문처럼 스마트폰이 넘지 못하는 세상을 보는 창구가 되리라 믿는다. 내가 읽은 책은 소설 포켓북이었다. 그래서 신문처럼 온전히 시사 내용이 담기는 대신 소설 속 주인공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럼에도 활자에 담긴 그런 이야기들을 내 멋대로 더듬어 그려보는 과정은 손끝으로 또 다른 세계와 조우한 기분이 들어 꽤 미묘하고도 반갑다.

 

그 안에서 만나는 또 다른 세상은 무료했던 삶에 틔워진 푸른 새싹처럼 느껴진다. 작은 글자가 땅에 돋아난 작은 이파리처럼 보이기 시작할 때, 그것을 눈으로 살포시 밟아 고개를 들면 그보다 더 많은 글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내가 가진 광활한 초원이다.

 

신문의 장점에 더하여 스마트폰의 장점인 휴대성도 이 포켓북에 담았으니, 그 매력은 더욱 배가 된다.



더위가 차츰 가시는 이 무렵, 독서의 계절이라고 부르는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아마 가을이 그렇게 불리는 이유는 매일 열리는 책 안에서 내가 직접 떠올리고 상상할 수 있는 세계를 산책하기 적합하기 때문이다.

 

선선한 바람으로 어디든 무한히 걷고 싶은 날씨. 무료했던 일상에 포켓북으로 그런 날씨 한 줌을 들여놓는 것은 어떨까?

 

 

[박정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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