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견고함과 여백, 연극 '3일간의 비' [공연]

"1960년 4월 3일에서 5일, 3일간 비"
글 입력 2023.09.18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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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와 완두콩


 

폭풍우가 치는 밤, 한 여자가 성에 찾아온다. 그는 자신을 공주라고 소개한다. 그 성에 사는 왕자는 진짜 공주와 결혼하고 싶었다. 왕비는 여자에게 잠자리를 내어준다. 왕비는 침대 맨 아래 완두콩을 숨기고 그 위에 매트리스와 깃털 이불을 쌓아 올리게 한다. 다음날, 왕비는 그에게 잘 잤느냐고 묻는다. 여자는 침대 아래에 딱딱한 게 있어서 잠들지 못했다고 말한다. 왕자는 진짜 공주를 찾았다며 그와 결혼한다.


두툼한 이불 아래 작은 완두콩을 불편으로 느낀 그는 공주로 증명되었다. 이 이야기는 여러 갈래로 해석된다. 그중에는 상류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안데르센의 열등감과 불안을 완두콩이 상징한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운명을 생각하곤 한다. 흔히 사람은 자라온 환경을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운명과 같이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것들이 정말 우리를 평생 결정짓는 것일까? 우리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걸까?

 

 


시놉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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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 다시 시작됐어! 엄청 쏟아진다.”


워커는 미국의 유명 건축가 네드 제인웨이의 아들이다. 워커는 아버지 네드가 사망한 직후 돌연 자취를 감췄다가 어느 날 맨하튼의 작고 허름한 아버지의 아파트로 돌아온다. 이 아파트는 아버지 네드와 아버지의 친구 테오가 한때 살았던 곳이다.


워커와 그의 누이 낸은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친구인 핍 (테오의 아들)과 함께 변호사를 찾아가 아버지 네드의 유언을 듣는다. 하지만 놀랍게도 네드는 그가 남긴 건축물 중에 가장 유명하고 값비싼 ‘제인웨이 하우스’를 그의 자식들이 아닌, 테오의 아들 핍에게 물려준다.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워커와 핍은 갈등을 벌이고…


핍을 만나기 전 아파트에서 우연히 발견한 아버지 네드의 낡은 ‘일기장’에서 워커는 낸과 함께 마치 암호처럼 기록된 내용들을 해석하며 과거의 진실에 다가가려 노력한다.


‘1960년 4월 3일-5일, 삼일간 비’


아버지 네드의 일기장 속 기록들은 과연 어떤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일까…

 

 

 

불안과 해소



연극 <3일간의 비>는 불안과 서브 텍스트를 잘 활용한다. 작품 속에는 세 가지 이야기가 등장한다. <공주와 완두콩>, <오이디푸스 왕>, <생쥐와 인간>. <공주와 완두콩>에서 공주는 불편함을 통해 ‘공주’로 증명된다. <오이디푸스 왕>은 아버지의 죄를 자식이 이어받아 그 대가를 치른다. <생쥐와 인간>은 두 인물이 가진 덧없는 꿈의 붕괴를 보여준다.


관성처럼, 우리는 어떤 서브 텍스트가 등장하면 그것이 이야기의 복선이 될 거라고 짐작한다. 이 작품은 그 기대를 충족시키면서 또 다른 방식으로 깨트린다. 그렇게 긴장과 불안을 형성한다.


<3일간의 비>는 네드와 테오가 함께 살던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다. 1995년이 배경인 1막에서 자식세대를 연기했던 배우는 1960년이 배경인 2막에서 부모 세대를 연기하게 된다.


배우가 같아도 막에 따라 인물이 달라진다는 약속이 있지만, 시각적인 부분은 생각보다 관객에게 크게 작용한다. 2막에서 네드와 라이나를 연기하던 배우가, 1막에서 그들의 아들과 딸인 워커와 낸을, 테오를 연기하던 배우가 1막에서 그의 아들 핍을 연기한다. 이 모습은 죄책감을 불러온 2막의 갈등이 그대로 1막 이후에서 반복될 것만 같은 불안감을 조성한다. 워커는 제인웨이 하우스를 상속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네드와 테오가 살던 아파트에서 계속 살아가기로 결정한다. 그는 아버지 네드가 테오에게 죄책감이 있기 때문에, 테오의 아들인 핍에게 집을 상속했다고 믿는다.


작품 속에서는 대비되거나 똑같은 대사들이 1막과 2막에 걸쳐 등장한다. 역할을 바꿨지만 익숙한 대사의 반복은 앞서 제시된 텍스트들을 떠올리게 한다. 무언가 반복될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2막에 들어서서, 1막 인물들의 위태로운 처지가 부모세대에게서 비롯되었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 1막 이후는 상당히 불안하게 상상된다.


그러나 이 불안은 핍을 통해 해소된다. 오말리와 테오 사이에서 태어난 핍은 <오이디푸스 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다, 라는 신탁을 받았으면 아무도 죽이지 않고 독신으로 살면 되잖아. 그런데 누군가를 죽였어. 그럼 여자를 만날 때 연상을 안 만나면 되는 거 아냐? 이 신화의 결론은 운명이 널 기다리고 있다! 가 아니고 계산 좀 하고 살라는 거야.”

 


가볍게 웃음을 유발하는 이 대사는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에 길들여진 관객에게 크게 와닿는다. 다른 인물들과 달리 핍은 자학적이지 않다. 핍은 그저 운명을 기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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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의 삶을 대하는 태도와 제인웨이 하우스는 닮았다. 그들은 운명을 기다리지 않는다. 여백과 견고함을 품고 있다. 제인웨이 하우스는 시시각각 들어오는 빛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그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빛으로 물결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는 설계할 때는 전혀 “의도치 못했던” 지점이다.

 

핍은 멋있거나 대단한 비중의 역할을 맡은 것도 아니고, ‘아버지가 유명한 건축가라는 걸 상상하기 힘든’ 모습으로 연기를 해나가고 있다. 그렇지만 그는 배우가 되어 열심히 즐기면서 삶을 살아간다. 핍은 불행이 자신을 무너트리게 두지 않는다. 그는 <오이디푸스 왕>을 운명론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이야기를 다르게 읽는다. 삶과 비극을 들어오는 빛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제인웨이 하우스처럼 받아들인다.

 

“이 이야기의 결론은 계산적으로 살라는 거야.” 그러나 핍은 계산적이지 않다. “어디 착한 사람들만 모아놓은 별에서 온 외계인인가” 싶을 정도다. 예측되는 방향성을 크게 벗어난다. “자,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그는 제인웨이 하우스를 워커에게 넘기려고 한다. 낸의 제안에야 겨우 대가를 받겠다고 말하며 이를 행운이라고 여긴다.

 

 

 

오이디푸스, 그 자리는 비었어


 

피할 길 없이, 예측할 수 없이 운명처럼 세차게 허공과 마음을 죽죽 내리그으며 삼 일 동안 비가 내린다. 라이나와 네드, 테오는 속절없이 그 비를 맞는다. 때로는 행복에 겨워 때로는 불행에 몸부림치며. 운명이 다가오길 기다린다. “1960년 4월 3일에서 5일, 3일간 비.” 네드는 행복에 겨워 그 문장을 적는다. 그러나 그날은 ‘첫 번째 실수’가 된다. 모든 죄책감의 시작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르다. 부모세대의 이야기는 영영 정확하게 읽히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죄책감이라는 원죄를 물려받지 않고 그 대가를 치르지도 않는다. 워커는 집이 생기고, 또 다른 것을 찾아 움직일 것이다. 라이나는 자유가 될 것이며, 핍은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갈 것이다. 그들은 우산을 쓸 것이다. 이제까지는 비를 맞았더라도, 불행이 이끄는 대로 자신을 내버렸대도.

 

이제부터는 다를 것이다. 이제는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운명이 오는 대로 기다리지 않고, 계산적으로 살, 우산을 쓸 오이디푸스를. 아니, 이제 오이디푸스의 자리는 비었다는 것을.

 

 

사진 출처

레드앤블루 공식 트위터

 

 

[박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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