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가을비와 함께 즐긴 낭만: 첼리스트 심준호의 "Schumann"

글 입력 2023.09.18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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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릴 때면 감정이 센치해지곤 한다. 봄비는 이 비가 끝나고 나면 잎들이 파랗게 돋아날 것 같아서 그렇고, 여름비는 끝나는 동시에 숨막히게 덮쳐올 무더위가 실감나서 그렇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가을비가 센치하게 만드는 감성은 좀 다른 것 같다. 가을비는 무언가가 영글어가는 걸 실감하는 계절이면서도, 다가올 겨울을 예표하는 계절이기에 수확과 소멸에 대한 양가적인 이미지를 동시에 느끼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가을비가 내리는 밤이면 더욱 센치해지는 듯하다.


그 가을비 내리는 밤에, 낭만으로 시간을 보낸다면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첼리스트 심준호 리사이틀 "Schumann"이 있었던 밤이 딱 그런 순간이었다.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고, 습하면서도 선선한 기온에 마음이 스며들면서 낭만을 음미할 준비가 완료된 상태가 되었다. 그랬기에 나뿐만 아니라 다른 관객들에게도, 그의 무대는 더욱 가슴을 파고드는 무대였을 것이다. 가을비와 가을밤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오직 낭만으로 가득한 슈만을 만나는 순간이었으니까.


 



PROGRAM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3개의 로망스

3 Romances for cello and piano, Op. 94 (13’)

1. Nicht schnell

2. Einfach, innig

3. Nicht schnell


시인의 사랑

Dichterliebe, Op. 48 (31’)

1. Im wunderschönen Monat Mai

2. Aus meinen Tränen sprießen

3. Die Rose, die Lilie, die Taube, die Sonne

4. Wenn ich in deine Augen seh'

5. Ich will meine Seele tauchen

6. Im Rhein, im heiligen Strome

7. Ich grolle nicht

8. Und wüßten’s die Blumen, die kleinen

9. Das ist ein Flöten und Geigen

10. Hör' ich das Liedchen klingen

11. Ein Jüngling liebt ein Mädchen

12. Am leuchtenden Sommermorgen

13. Ich hab' im Traum geweinet

14. Allnächtlich im Traume

15. Aus alten Märchen winkt es

16. Die alten, bösen Lieder


- Intermission -


네 대의 첼로를 위한 첼로 협주곡

Cello Concerto for 4 Cellos (arr. Richard Klemm) Op. 129 (25’) 

I. Nicht zu schnell

II. Langsam

III. Sehr lebhaft

 




이번 공연의 첫 곡은 슈만의 3개의 로망스였다. 첼리스트 심준호와 피아니스트 박종해는 무대 위로 나서서 인사한 다음, 조율조차 하지 않고 바로 심호흡 한 번 후에 연주에 들어갔다. 이미 안쪽에서 조율을 다 하고 나왔기 때문에 곧바로 들려준 거겠지만 보통 그래도 첫 곡에선 조율을 하는 편이라 좀 신기하게 느껴졌다. 뭐 그래도 조율을 하지 않은 게 역시 큰 의미를 지니지는 않았다, 이미 그들은 조화롭고 안정적인 앙상블을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첼리스트 심준호는 슈만의 이 로망스 작품들을 두고, 로망스라기엔 씁쓸하고 음울한 감정이 느껴진다는 것에 주목했다. 맞는 말이다. 특히 1악장 Nicht scnell을 들어보면 시작부터 어두운 감정이 묻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로망스지만 사실은 낭만적인 순간 이후의 그 쌉싸름한 뒷감정이 느껴지도록, 심준호와 박종해는 연주해주었다. 그나마 낭만이 서린 서정적인 순간을 볼 수 있었던 것은 2악장 Einfach, Innig였다. 꾸밈없이, 진심으로 연주하라는 지시 말이 붙어있는 이 악장은 순간순간 어린 로망스 사이로 감정의 소용돌이를 느낄 수 있는 패시지가 있다. 첼리스트 심준호는 그 간극을 굉장히 명료하게 대비시켜 주었다.


그렇게 대비되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2악장을 느껴서인지, 3악장 Nicht scnell에서 다시금 빠르지 않은 빠르기로 전해주는 슈만의 로망스는 심준호와 박종해의 손끝에서, 사랑으로 인해 어쩔 줄 모르는 복잡한 감정으로 피어났다. 그 복잡다단한 감정이 무언으로 전해지고 느껴지는 게 신기할 정도로, 그들의 연주는 슈만이 사랑에 대해 가진 감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듯했다. 시작부터 감성이 가득해서 아름다운 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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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1부의 두 번째 곡은 시인의 사랑이었다. 슈만의 유명한 가곡인 이 작품을 연주하기 위해 무대 위로 나선 첼리스트 심준호는, 이번에는 피아니스트 박종해와 함께 조율을 했다. 아무래도 좀 더 긴 곡을 연주할 테니 끝까지 음이 변하지 않도록 체크를 한 번 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게 조율을 마친 후, 드디어 시인의 사랑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아름답고도, 섬약하면서, 격정적이고도 아련하게.


시인의 사랑은 사랑에 대한 감정을 노래하는 작품이기에, 첫 곡의 로망스와 비교해서 듣기 좋았다. 로망스보다 시인의 사랑에 나오는 선율들이 확실히 좀 더 직관적이다. 가사 없이 심준호의 첼로 선율로 들어도, 사랑에 대해 슈만이 보여주고자 하는 그 감정이 선명하게 묻어난다. 예를 들어, 첫 곡 Im wunderschönen Monat Mai(아름다운 5월에)는 사랑이 꽃피는 순간에 대한 노래다. 이 노래를 위해, 피아니스트 박종해가 먼저 피아노 선율로 시작하는데 그 전주가 얼마나 섬약하고 아름다웠는지. 그 부드러운 터치가 곧바로 심장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취약해져버리고 마는지, 하지만 그 약해지는 것을 감수하고도 빠져버리고 싶을 만큼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 첫 곡에서 바로 보여준 것이 가슴 깊게 스며들었다.



그렇지만 사랑의 감정은 부드럽고 아름답게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기에, 시인의 사랑에서는 격정적인 전환이 일어난다. 첼리스트 심준호와 피아니스트 박종해는 감정의 격랑을 안은 7곡 Ich grolle nicht(나는 원망하지 않소)를 원곡 가곡 버전보다 훨씬 더 다이나믹하게 그려냈다. 더 빠른 템포, 더 강한 셈여림으로 연주하니 원망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겠다 되뇌이는 듯한 이미지였던 7곡이 훨씬 더 강한 자기주장과 자기확신처럼 느껴졌다. 사랑에 대한 감정이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하다는 것을 이렇게 명확하게 그려낸 순간, 한편으론 쾌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짧은 순간에 휘몰아치는 그 감정에 공명하게 되니까.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폭풍같은 감정이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장 마지막 순간, Die alten, bösen Lieder(낡아빠진, 나쁜 노래들)은 아주 깊은 여운을 남겼다. 사랑의 괴로움을 버리고 싶어하는, 화자의 감정은 초반부엔 언뜻 살아있는 리듬감과 함께 익살스러운 듯하게 전해진다. 그래서 첼리스트 심준호와 피아니스트 박종해의 선율도 처음에는 리드미컬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사랑과 괴로움을 바닷속에 수장시키고 싶다고 말하는 주선율이 끝을 맺은 뒤 울려퍼지는 피아노 후주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한다. 피아니스트 박종해는 이 후주에서 밀도 높은 터치로 사랑이 끝난 후에 느끼는 그 달콤쌉싸름한 뒷맛을 생생하게 전해주었다. 원곡인 가곡 못지 않게, 뉘앙스가 가득해 즐기기 좋은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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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는 슈만의 첼로 협주곡 a단조를 네 대의 첼로로 편곡한 버전만을 위해 할애된 시간이었다. 첼리스트 심준호는 이번 무대를 통해 그가 추구하는 음악적 지향점에 대해 보여주고자 했는데, 슈만을 통해 보여주는 그 낭만과 정서 그리고 깊이 중에서도 특히 마지막 작품인 이 첼로 협주곡의 비중이 상당히 큰 듯했다. 아무래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던 부분을 첼로가 나눠서 연주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사운드의 측면에 있어서도 그렇고 구성에 있어서도 그렇고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 편곡 버전을 선곡한 것은, 그가 첼로를 통해 보여줄 슈만이 그만큼 유의미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로 그러한 연주이기도 했다.


슈만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기 위해 첼리스트 드미트리 리, 채훈선, 박상혁이 무대 위에 함께 나섰다. 드미트리 리는 주로 바이올린부를 연주했고, 채훈선은 비올라를 포함한 악주부를 맡았으며 박상혁은 첼로와 콘트라베이스를 포함한 베이스부를 주로 연주해주었다. 첼리스트 심준호는 솔리스트의 선율을 주로 연주하되 중간중간 함께 오케스트라부도 연주했다. 그래서 더더욱, 슈만의 첼로 협주곡이 오케스트라와 솔로 첼리스트가 내밀하게 연계되는 그 특징이 네 대의 첼로 버전에서 더욱 극명하게 와닿는 느낌이었다. 동일한 악기로 연주하니 오케스트라 버전에서와는 또 다른 의믜로, 마치 하나의 소리처럼 들리다가 분화되는 게 명확하게 느껴졌다.


총 3악장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슈만은 악장 사이를 끊지 않고 사실상 연결되게끔 만들었다. 그래서 이 첼로 협주곡은 원곡 버전에서도 물 흘러가듯 계속 이어지는 느낌이 드는데, 그 사이 사이에 일렁이는 듯 라인강의 물결을 연상시키는 마디들, 불안감을 고조시키는 싱코페이션 그리고 복잡한 감정이 폭발적으로 터지는 구간들이 나올 때마다 슈만이 얼마나 불안정한 상태였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네 연주자가 들려주는 앙상블은 분명 아름답고, 격정적이었는데 한편으로는 슈만을 생각하며 마음이 서글퍼지게 되는 것이었다.


특히 오케스트라 버전과 다르게 네 대의 첼로로 연주하다보니 마치 한 덩어리처럼 느껴지는 이 소리가, 슈만의 내면 속에서 여러 갈래로 쪼개져 아우성치고 갈팡질팡하며 고뇌하는 그 모든 것들을 총칭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에 마지막 음이 끝나는 순간, 관객들은 그 감정에 동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 모든 것을 쏟아낸 첼리스트 심준호, 첼리스트 드미트리 리, 첼리스트 채훈선 그리고 첼리스트 박상혁에게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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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의 뜨거운 박수를 받고 다시 무대 위로 나선 네 명의 첼리스트들은 관객의 박수에 화답하기 위해 앵콜 무대를 준비했다. 첼리스트 드미트리 리가 악보를 바로 펴지 못하는 재밌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관객들은 그 모습에 한바탕 크게 웃고 앵콜을 기다릴 수 있었다.


첼리스트 심준호는, 앵콜을 위해 작곡가 안성민이 편곡한 버전의 헌정(Widmung)을 들려주겠다고 말했다. 원래 피아노 버전에선 왼손의 펼침화음으로 들리는 그 아름다운 패시지를 드미트리 리, 채훈선, 박상혁이 함께 나누고 오른손의 주된 멜로디를 첼리스트 심준호가 맡으면서 네 대의 첼로로 헌정을 들은 것이다. 고아하고 아름다운 화음, 하나의 호흡처럼 들리는 선율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


이번 첼리스트 심준호의 리사이틀은 본 프로그램에서부터 앵콜까지 온전히, 슈만에게 헌정된 무대였다. 슈만의 낭만이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지, 그리고 첼로가 그 낭만을 얼마나 내밀하게 풀어낼 수 있는 악기인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리사이틀이었다. 그가 연주하는 아름다운 슈만을 가을비 내리는 밤에 들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후에는 그가 어떤 기획공연을 보여줄까. 그가 보여줄 또 다른 작품과 정서가 무엇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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