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AI와 무용의 만남 - 서울세계무용축제, 최수진 Alone

글 입력 2023.09.17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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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acne2023 포스터.jpg


 

최수진

Alone

한국

09/09(토) 3:00 pm, 7:00pm | 09/10(일) 2:00 pm, 5:00 pm (2일, 총 4회 공연)

대학로극장 쿼드

소요시간 : 60분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가장 사적인 감정들인 외로움, 고독, 슬픔, 분노 등 한 단어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하고 내밀한 감정들을 몸짓과 형상으로 보여준다. 보이지 않는 감정들을 보다 실질적으로 관객과 나누기 위해 AI와 프로젝션 맵핑을 활용하여 무용극의 형태로 표현한다. Chat GPT를 통하여 출력되는 텍스트는 무용수의 동작을 언어로 치환하여 관객들에게 보다 구체적인 공감을 이끌어낼 예정이다. 라이브 형식으로 진행되는 만큼 보다 생생한 기술과 예술의 협력을 관람하고 공연 후 이어지는 전시를 통해 직접적으로 작품을 경험할 수 있다.



 

리플렛을 확인하고 공연장으로 들어가는 길, 리플렛은 멋진 엽서같았지만 공연에 대한 정보는 적었다. 기획의도나 주제의식 등을 관객의 해석에 맡기겠다는 의도로 보였고, 나 또한 그런 마음가짐으로 극이 시작하길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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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가 독특했다. 짧은 패션쇼장이 떠오른다. 객석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고 말이다.

 

알고 보니 이번 공연장인 쿼드가 지어진지 1-2년 정도밖에 안된 신생 극장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전반적인 시설도 깔끔했다. 동행자는 최근 장애인 프렌들리한 공간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쿼드는 신생 극장이라서 그런지 그런 부분에서도 다른 곳에 비해 잘 되어있다고 한다. 엘리베이터도 있고, 복도도 휠체어가 다니기 충분하게 넓다.


이번 공연의 주인공 최수진은 국립현대무용단 창단 무용수, <댄싱9>, <뮤즈 오브 스트릿맨 파이터>에 출연해 현대무용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유명 무용가로 보였다. 같이 등장한 신영준 무용가 역시 빠지지않는 실력으로 극의 질을 높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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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무용에 관심이 많아져 이번 무용축제가 너무나 기다렸졌었다. 무용, 즉 몸으로 하는 말이 생각보다 굉장히 생생하고 날 것 처럼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음악이나 미술보다 스크린과 실제 사이의 갭이 더 크게 느껴진다. 무용수의 숨소리, 발소리, 땀, 그 모든 것이 안무의 일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공연은 홈페이지에 적힌 짧은 설명처럼 이미지 프로젝션(단어들 포함), 무용, 음악으로 이루어져있다. 이미지 프로젝션은 타이포 그래픽 + 모션 그래픽 영상 느낌이었다.

 

시작은 안녕?이라는 단어로 시작되었던것 같다.

 

차례대로 글자가 등장한다. 외로움, Fight, Run, My room, Other room 등 순서는 정확치 않지만 단어들이 등장한다. 단어에 맞춰서 극의 챕터가 넘어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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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품은 아주 단순했는데, 회색의 장판같은 것이었다. 사람을 덮을만한 크기의.

 

프로젝션이 위에 씌여져서 정확한 재질이나, 크기 등은 객석에서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시각적으로 효과적인 소품이었다. 일종의 알같은 역할로 이해해했다. 자궁같은. 남성 무용수 (신용준)가 여성 무용수(최수진)에게 자판을 덮자 최수진은 그것을 헤쳐 나온다.

 

그 후 소품은 과거에 대한 트로피처럼 혹은 부산물처럼 혹은 장애물 처럼 무대의 끝에 걸려 있었다. 소품이 무대의 색과 거의 일치해서 그런지 덮어지는 프로젝션으로 인해 바닥 자체가 꿈틀대는 것 처럼 보이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여러 단어가 지나가고, 점차 절정을 향해 극이 달려갔다.

 

거의 막바지 최수진은 마치 주술사처럼 옷을 갈아입고 등장한다. 머리의 위의 관도, 옷도 흰색으로 맞춰 깔끔했지만, 그 실루엣은 마치 제사장과 같은 모습이었다. 이전보다 절제된 움직임, 단정해진 감정폭으로 극의 긴장감을 높여갔다. 사실 난 이 부분이 극의 중후반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부분에서 머지않아 극이 끊겼다.


무대가 끝나고 그래서 이 극이 무엇을 말하려고 한 것일까? 머리가 팽팽 돌아가고 있는 와중, 최수진 무용가가 나와 직접 말을 했다. AI와의 현연한 공연이었고, 공연에 사용된 AI 프로그램 체험을 지금부터 진행하겠다고 말이다. 긍정적인 놀라움도 잠시, 관계자분께서 나오신 체험부스 쪽으로 이동했다. 내가 이해한대로 설명하려고 하니, 틀린 부분은 양해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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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가 시작하는 문장을 적고, 뒤에 이어지길 원하는 문장 갯수를 입력하면 이야기가 자동으로 완성되는 알고리즘이 사용되었다. 이는 chat got-4 알고리즘을 활용해 제작했고, 이번 공연을 위해 특수하게 제작되어 다른 곳에선 체험할 수 없다.

 

그 AI를 이용해 극의 전반적인 구성을 짜는데, 이 구성은 뼈대만 인간 안무가가 구성했을 뿐 매일매일 조금씩 내용이 바뀐다. 바뀌는 내용은 곧 무대에 쏘던 이미지 프로젝션과도 연결된다.

 

실시간으로 반응해 조금씩 다른 이미지를 생성한다. 그렇기에 안무역시 완전히 암기된 상태가 아닌 즉흥성이 감미되어 있다.


여기까지가 내가 이해한 바였고, 체험하는 것을 자세히 보니 문장 생성 갯수뿐 아니라, ai음성으로 변환도 가능한데, 성별, 읽는 빠르기, 감정 정도도 설정이 가능했다.

 

체험을 마치고 대학로를 걸으며 동행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첫 번째로 공감했던 부분은, 무대가 굉장히 난데없이 끝났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글과 이미지 무용 사이에서 난해했던 지점들이 AI가 생성했다는 사실을 알고나자 이해가 되었다. AI 탓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궤변과 AI가 할 수 있는 궤변은 치밀도와 유연성에서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난 정말 열심히 안무가의 의도와, 단어와 안무, 소품, 의상 모든 것에서 이야기를 찾고, 몰입해보려고 했는데 그 모든 것이 신기루를 쫒은 것 같았다. 만약 리플렛이 조금 더 친절했어서, 이런 부분을 미리 고지했다면 AI가 상징할 수 있는 부분들에 더 집중해서 관람했을 듯 하다. 여기도 분명히 흥미로운 지점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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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퀄리티 좋은 공연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세계무용축제 같은 좋은 취지로 눈과 귀가 호강한다. 행사 진행도 공간도 공연의 퀄리티도 모두 기대이상이었다. 앞으로도 이런 플랫폼이 활성화되어 더 많은 실험작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승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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