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서울세계무용축제 SIDance 2023 - 최수진 Alone

나의 감정을 해석해 달라는 몸부림
글 입력 2023.09.12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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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국제무용협회에서 주최하는 제26회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 국내 초청작, 최수진의 Alone을 관람했다. <댄싱 9>과 <스트리트 맨 파이터>로도 잘 알려진 세계적인 현대무용수 최수진의 새 작품인 만큼 그의 경이로운 움직임과 획기적인 시도를 기대하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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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이루어졌다. 작년 탈춤 공연 관람 이후로 재방문이었다.

 

쿼드는 무대 양옆에 객석이 위치한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는데, 지난번 관람한 탈춤과 같이 한국 전통 공연에는 잘 어울리는 공연장이다. 주로 드넓은 광장이나 마당에서 사방이 관중에 둘러싸여 공연이 진행되던 한국 전통 무용에서는 둥글고 입체적인 신체 활용이 두드러진다.

 

그와 반대로 발레와 같은 서양 무용은 전통적으로 객석이 무대 앞에만 있기 때문에 공간을 평면적으로 이용하여 양옆 혹은 위아래로 길게 늘이는 자세와 동작이 주로 사용된다. 현대무용의 경우 워낙 실험적인 장르지만 여전히 주로 일반적인 서양식 공연장에서 공연을 올린다.

 

나도 이런 식으로 객석 방향이 두 개로 갈라진 무대에서 현대무용을 관람하는 건 처음이었다. 아마도 기존 방식에 익숙한 안무가가 쿼드처럼 ‘앞’이라는 개념이 없는 공간에서 안무를 짜기란 더욱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공연 역시 이러한 공연장 특색에 맞게 무대 바닥에 출력되는 텍스트가 양방향 관객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양쪽 모두에 배치되었으며, 안무도 뚜렷한 앞뒤 구분 없이 짜여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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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이 무대 양옆에 위치하는 구조를 가진 대학로극장쿼드

 

이번 작품에서는 인공지능 챗GPT를 활용하여 예술과 기술의 융합 무대를 선보였다. 작품 소개에 의하면 무용수가 감정을 담아 춘 춤을 챗GPT가 해석하여 텍스트로 출력했다고 한다. 안무 구상 단계에서 챗GPT가 출력해낸 텍스트를 공연에 활용한 건지, 아니면 공연장에서 즉흥적으로 챗GPT가 매번 다른 텍스트를 출력해내는 건지는 모르겠다.

 

공연은 6~7개 정도의 챕터로 구성되었다. 각 챕터가 시작할 때 무대 바닥에 키워드가 출력되고, 무용수가 그에 상응하는 듯한 춤을 추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키워드는 My Room, Fight, Run, Sad, Other Room, Imagine 등의 단어들이었다. 공연 소개글에도 나와 있듯이 이번 공연은 제목 ‘Alone’에 맞게 주로 외로움, 슬픔, 우울감, 분노, 고독 등 내밀한 감정을 주제로 한다.

 

무용수로는 최수진과 신영준이 출연했다. 주로 최수진의 독무가 많았지만 함께 춤을 추기도 하고, ‘Other Room’ 챕터에서는 신영준의 독무도 나왔다. 오랜 세월 단련된 몸의 움직임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을 정도로 두 무용수의 춤 퀄리티가 훌륭했다.

 

첫 번째 챕터 'My Room'에서 최수진은 홀로 아무런 옷을 걸치지 않은 듯 살색 쫄바지와 쫄티만 입고 나와 천천히 독무를 춘다. 간헐적으로 외로움과 고독에 잠긴 한 여성의 독백이 흘러나온다. 벌거벗은 듯한 여성의 몸이 외로움에 몸부림치다가 고독하게 쪼그라들면서 첫 챕터가 마무리된다.

 

이어지는 두 번째 챕터 'Fight'에서는 전 챕터에서 독백을 한 여성의 음성이 자신의 감정을 읽어달라고 챗봇에게 요구한다. AI 챗봇의 기계적인 음성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세요" 등의 자동 완성 문장을 반복하고, 이내 여러 종류의 기계 음성들이 중첩된다. 그리고 최수진과 신영준이 함께 춤을 춘다. 배경음악은 직전보다 훨씬 리듬감 있고 활기찬 음악이 나온다. 흡사 패션소에 등장할 것 같은 음악이다.

 

이후 차례대로 Run, Sad, Other Room, Imagine 챕터가 이어진다. 키워드와 춤은 서로 상응하는 듯 아닌 듯 하다. 여성의 독백 음성이 자신의 감정을 이해받고 싶어하는 외로운 마음을 표현한다. 바닥 재질과 같은 재질의 카페트가 유일한 소품으로 등장하는데, 최수진이 뒤집어 쓰기도 하고 무대 한쪽에 길쭉한 봉 위에 걸쳐지기도 한다. 바닥과 같은 재질이라 바위 같은 형상으로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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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분 동안 공연을 보는 내내, 그리고 관람을 마친 후에도 열심히 생각해 보았다.

 

나도 현대무용을 8년간 취미로 해 온 사람이지만 현대무용 공연은 여전히, 언제나 난해하다. 현대 음악, 현대 미술, 현대 무용… ‘현대’라는 이름이 붙은 모든 예술은 아이러니하게도 현대 사람들이 제일 어려워 하는 장르인 것 같다. 아무래도 고전 예술이 쌓아 올린 정교한 구조와 규칙을 무너뜨리고 표현의 자유와 실험적인 시도에 초점을 맞춘 예술이라서 그렇겠지만.

  

모든 예술이 공통적으로 그렇듯이 현대 예술도 명확한 메시지를 해석해 내야만 한다는 강박과 욕심을 버리면 오히려 즐길 수 있다고 한다. 그걸 알면서도 여전히 현대 예술에 대한 감상을 언어로 정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번 후기는 느낀 대로 써보고자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 되겠지만, 규정할 수 없는 현대예술의 매력이란 결국 보는 사람마다 고유한 감상을 가진다는 것일 테니.

 

작품의 의도에도 나와 있고 제목이 말해주듯이 이 작품의 핵심 주제가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춤에서도 느껴졌고, 여성의 독백도 그런 내용이었다.

 

인간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공허감, 우울, 고독, 혹은 어떤 단어로도 명확히 설명되지 못하는 어떤 구멍을 갖고 살아간다. 이 빈 공간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몸부림친다. 타인의 존재에도 기대보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신영준 무용수가 '타인'으로 표현된 게 아닐까 싶다) My Room에서 홀로 괴로워했듯이 타인 역시 Other Room에서 혼자 나름의 분투를 할 뿐, 서로에게 정답이 되어주진 못한다.

 

가장 인상 깊게 남았던 부분은 'Fight' 챕터에서 감정을 읽어내길 실패하는 AI의 음성이었다. 해당 작품은 인간의 춤을 챗GPT가 텍스트로 해석하는 과정이 있었다고 했는데, 애초에 이것이 가능한 영역인지 물음을 던지는 듯했다. AI에게 자신의 감정을 읽어달라고 요구해도 AI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라는 자동 완성 문장만을 반복할 뿐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근원적이고 내밀한 감정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인간은 계속 이유 없이 외로울 것이다.

 

결국 차례차례 스스로 옷을 입는 인간. 작품의 마지막 챕터 'Imagine'에서 최수진은 몽환적인 선율과 조명 속에서 비현실적인 옷을 걸쳐 입고 춤을 춘다. 살아가기 위해 외로움과 고독을 꽁꽁 싸매듯이. 마치 고독과 외로움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초연해진 듯한 느낌이었다.

 

우울증을 다스리는 방법은 우울감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하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라고 한다. 언제고 불쑥불쑥 찾아오는 공허하고 외로운 감정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나의 어쩔 수 없는 일부분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고독은 언제나 있을 것이다. 공연이 끝나도 여전히 무대 한쪽에 자리잡고 있던 바위 덩어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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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연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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