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고수 이향하의 파도(Wave)를 보다 - 2023 수림뉴웨이브 스페셜

2023 수림뉴웨이브 <Re:Wave>_고수 이향하 소품집
글 입력 2023.09.1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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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에는 소리꾼과 고수가 있다. 소리꾼이 창을 읊을 때 그 옆에 앉아 추임새를 넣거나 간단한 설명을 하는 역할을 바로 ‘고수’가 수행한다.

 

관객의 눈과 귀는 소리꾼을 향하지만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소리꾼과 관객을 아우르며 분위기를 주도하는 고수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수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번 2023 수림뉴웨이브 Re:Wave는 전년도 수림뉴웨이브 수상자인 ‘고수 이향하’를 관객에게 다시 선보였다.

 

그녀는 판소리의 전통을 이으면서 현대에 맞춰 판소리를 변화하는 등 새로운 실험을 하곤 하는데 바로 그녀의 역할인 ‘고수로서’ 만들어낼 수 있는 시도를 도전해왔다. 판소리는 결국 판’소리’이기에 소리꾼이 중심이지만 고수가 할 수 있는 음악과 극에 대한 개입의 영역을 확장해 고수 중심으로 이뤄지는 판소리를 구현했다.

 

고수 중심이라 해도 전통적인 고수의 미덕을 해치진 않는다. 무대에서의 지리적인 위치와 물리적인 조명의 빛은 소리꾼과 배우를 돋보이게 하며 고수와 연주자는 관객이 극에 더 집중할 수 있게 어둠 속에서 존재를 다 한다.

 

그럼에도 고수는 전통적인 악기(거문고)와 키보드, 드럼 등이 합쳐지며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고 중간중간 빛을 받아 해설의 역할을 하는 등 극의 흐름과 분위기를 주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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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의 역할만큼이나 그녀는 음악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했는데 앞단에서 언급한 거문고와 키보드, 전자음 등이 그 예다.

 

거문고가 무겁고 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반면, 전자음과 실로폰, 키보드는 가볍고 통통 튀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상반되는 악기들을 활용해 빛이 그려내는 풍경과 사랑에 대해 풍요롭고 묵직하게 표현한다.

 

작품 <빛, 자국>에서는 거문고와 실로폰을 통해 빛과 그 풍경을 그려냈다. 묵직한 거문고 뒤로 실로폰이 팅커벨이 지나갈 때 나는 소리를 내며 거문고를 따라간다. 그 음악에 빠져 계속 듣다 보면 거문고와 실로폰 어는 악기가 선행하는지 잊게 되고, 빛이 굴절하고 반사하며 온 세상을 밝게 비추듯 거문고의 음표와 실로폰의 음표도 서로 부딪쳐 화음을 이루며 빛이 밝힌 풍경을 만든다.

 

 

추야장 긴긴 밤에

임의 방에 들었다가

날 잊고 깊이 든 잠을 깨워볼까

 

- 임그린 상사몽이 中

 

 

이는 다른 작품인 ‘임그린 상사몽이’에도 나타난다.

 

사랑하는 이를 향한 그리움이 후반부로 갈수록 증폭된다. 거문고의 음은 더 깊어지고 실로폰의 음은 더 높아지며 그리움에 주체할 수 없는 화자의 마음이 잘 느껴진다. 가사를 끌며 꺾는 판소리의 특징이 기나 긴 밤을 지새우는 여인의 마음을 잘 대변하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작품이다.

 

고전적인 시조곡의 특징을 고수하며 악기의 구성으로 변화를 준 음악적 연출이 ‘고수 이향하’의 지향점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적인 고수의 미덕을 지키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그녀가 겹쳐 보인다.

 

시조에서 그리움의 대상이 불분명하지만 현재에 이르러 그립고 보고 싶은 대상이 그녀가 동행했던 ‘판소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까맣고 작은 개미

별이 빛나는 더러운 웅덩이

 

- 판소리 긴긴밤 中

 

 

전년도 수상작인 <긴긴밤>을 다시 한번 선보였다. 고수로서의 역할이 가장 잘 돋보였던 작품이었다.

 

그녀의 주도 하에 소리꾼과 연주자가 각자의 위치에서 도드라져 보였다. 동화 <긴긴밤>을 원작으로 했다는 소식을 들어 조금은 어색한 면이 있지 않을까 했지만 전래동화의 이야기를 전달했던 판소리의 특징을 생각해 보면 현대의 동화를 판소리로 어떻게 재해석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됐다.

 

자유를 찾아 떠난 코끼리와 펭귄의 동행이 흥미로웠다. 코끼리는 주로 아프리카에, 펭귄은 주로 추운 극 지방에 살기 때문이다. 이들이 겪는 시작과 만남, 이별, 여행, 어쩌면 우리의 인생이 배우의 연기와 소리꾼의 창, 고수의 추임새로 나타난다.

 

어떤 대목은 시작과 만남의 흥겨움이, 어떤 대목은 이별과 여정에 대한 비극이 중점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을 담았다. ‘이향하’가 작품에서 느끼는 감정이 손을 통해 악기로, 악기에서 음표로, 음표에서 작품으로, 그리고 다시 관객으로 전해지는 것 같다.

 

다소 음악적 표현의 폭이 적은 타악기의 특징이 마지막 부분의 대목에 큰 장점으로 활용되는데 코끼리와 펭귄의 새로운 여정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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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맣고 작은 개미처럼 결국 우리도 세상의 작은 존재이며 더러운 웅덩이에도 별에서 오는 빛을 비출 수 있을 만큼 세상은 예측 불가능하다. 얼마나 밤이 길면 긴 밤도 아닌 <긴긴밤>일까 생각도 든다.

 

예측 불가능한 세상에 개미처럼 기어가는 여정일지라도 웅덩이에 고인 빛은 볼 수 있다는, 밤이 긴긴밤이라서 별을 더 볼 기회가 많다는, 개미라서 뛰지 않고 기어갈 수 있다는 나름 작은 희망이 느껴진다. 그런 어둠과 빛이 타악기처럼 단순하게 스며든다. 그녀의 음악적 도전과 시도도 조금씩 대중들에게 스며들지 않을까.

 

그녀가 만들었던 파도(Wave)가 다시 나에게 밀려온다(Rew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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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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