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보는 미술을 넘어 감각하는 미술로 - 럭스: 시적해상도 [미술/전시]

DDP 전시 "럭스: 시적해상도" 관람 후기
글 입력 2023.09.12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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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미술과 이전 미술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다양한 매체의 사용일 것이다. 뉴미디어 아트는 미술 영역의 확장을 가져옴과 동시에 새로운 담론과 수용 방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제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은 바라보기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우리는 미술관에서 보고, 듣고, 느끼며 더 깊은 감각과 사유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현 시류에서 미술, 혹은 예술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관람자에게 색다른 경험을 건네는 전시 《럭스: 시적해상도》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올해 12월 31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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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영국에서 먼저 성공적으로 개최된 미디어 전시 《럭스: 현대미술의 새로운 물결(Lux: New Wave of Contemporary Art)》의 순회전으로, 당시의 주요 작가 5인과 함께 새롭게 초청한 아티스트 7팀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 명이 쉽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지만 기획 의도를 충분히 담아내고자 한 것이다. 빛의 조명도를 나타내는 단위인 ‘럭스(lux)’는 미술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다뤄져온 주제인 빛을 나타낸다. 특히 현대의 빛은 문명의 기술이 발산하는 빛으로, 과거 자연적인 태양의 빛과는 다른 새로운 특성을 지니며, 이러한 빛에 대한 탐구가 전시의 축이 됨을 설명한다.

 

처음 ‘시적해상도’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자연스레 시각적 의미로서의 ‘시적’인 줄 알았으나, 영문 표기를 보고 문학적 의미의 ‘시’였음을 알게 되었다. 곧 시적해상도(Poetic Resolution)는 빛과 소리처럼 보이지 않는 비물질적 요소를 해상도와 주파수로 수치화하여 한 편의 시와 같은 시청각 매체, 즉 예술로의 표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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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텐 니콜라이, 〈유니컬러〉, 2014

 

 

전시는 베를린 기반의 독일 예술가이자 음악가인 카스텐 니콜라이(Carsten Nicolai)의 작품으로 시작한다. 기다란 디스플레이 위로 다양한 형태의 색채가 떠오르는 〈유니컬러〉(2014)는 기묘한 소리 또한 표출한다. 이는 빛과 소리의 인식에 대한 그의 탐구심이 투영된 작품으로, 시각과 청각으로 분리된 인간의 감각을 통합하는 실험이다.

 

시(poetry)가 문자를 통해 건네는 공감각의 심상을 작가는 현실 속에서 직접적인 빛과 소리로 구현한다. 예측하지 못한바 일수도 있지만, 앉아서 감상할 수 있도록 설치한 긴 의자에 앉으면 소리의 진동이 느껴지면서 촉각의 감각도 활성화된다.

 

색채의 이미지와 특정 주파수의 소리는 예전 tv의 화면조정 시간의 칼라바나 라디오 소리와 연결되며 초창기 미디어의 형태를 상기시키면서도 설치된 공간과 화면의 부드러운 변화가 현대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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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 유시, 〈AI 산수화〉, 2022

 

 

카오 유시(Cao Yuxi)는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의 시각효과 디렉터 담당했던 예술가 및 개발자다. 〈AI 산수화〉(2022)는 인공지능 프로그래밍 기술을 이용하여 인터넷상의 여러 동양 수묵화 이미지로부터 역동적인 입자를 만들어낸다.

 

세계를 인식하는 동양적 사고관의 핵심인 기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제시하는 듯한 입자의 흐름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으며 순환함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인다. 화면 내에서의 형태적인 미감도 인상적이지만 각 디스플레이의 배치 형태가 마치 8폭 병풍 형태로 되어있어 병풍의 형태와 영상 이미지, 곧 과거와 현재의 결합이라는 점이 흥미롭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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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필로티 리스트, 〈겨울 풍경〉, 2021

 

 

스위스 출신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피필로티 리스트(Pipilotti Rist)의 〈겨울 풍경〉(2021)은 제54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주목받은 작품이다. 회화 작품 위에 다른 영상을 비추는 최신 연작 중 하나로, 여기선 폴 바이만(Paul Weimann)의 유화 위에 새로운 풍경의 층을 가미한다.

 

작품은 회화라는 아날로그적 매체 위에 영상, 빛을 영사시킴으로써 중첩된 이미지를 만든다. 마치 눈으로 보는 시각 위에 이전의 경험과 기억이 투사되는, 시각과 사고 과정을 이미지로 보여주는 듯하다. 한편으로 이전에 관람하였던 마틴 그로스 개인전에서와 같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복합적 관계를 다루고 있으며, 매체간의 융합, 하이퍼텍스트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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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멜로 레이저 피스트, 〈발견되지 않은 숲의 성역〉, 2021~2022

 

 

마시멜로 레이저 피스트(MLF, Marshmallow Laser Feast)는 런던을 근거지로 8년 째 전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실험적인 예술 그룹이다. 비디오 작품 〈발견되지 않은 숲의 성역〉(2021~2022)은 인간이 가진 지각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 대상을 인식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살아있는 동물의 혈관과 같은 나무 내부의 이미지엔 에너지가 되는 양분이 분주하게 이동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형태적인 유사성으로부터 나무는 동물, 우리의 폐와 연결되며, 지구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생명으로서 대상 간의 경계가 흐려지고 상호 유기적인 구조로 인식된다.

 

영상과 함께 재생되는 소리는 숲에서 나는 소리나 나무가 물을 빨아들이는 소리 같기도 하며, 혹은 어머니의 뱃속 태아가 듣는 호흡 소리 같기도 하여 생명력이라는 하나의 공통된 에너지로서 들려온다. 작품의 화면과 소리는 안식처로서 사유의 시·공간을 제공하며 우리도 자연 일부로서 관계망 안에 존재하고 있음을 재확인시켜주는 듯하다.


미술의 영역에서 디지털 매체의 활용은 단순히 시각적인 유희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번 전시에서 강조했듯이, ‘시적해상도’는 공감각적 인지를 일깨워주고 그를 통해 외부 감각의 수용을 넘어 내적인 사유로의 길을 열어주어 더욱 풍부하게 예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이끈다.

 

《럭스: 시적해상도》를 통해 동시대 미술에서 현대적인 기술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더 나아가 개인적 혹은 공동체적 사유를 어떻게 제공하는지를 경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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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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