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3분 진료 공장의 세계

글 입력 2023.09.07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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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병원 진료실은 어쩌다

불평불만의 공간이 되었을까?


"대기해주세요, 여기는 불편한 진료실입니다"

 

 

1시간을 넘게 기다렸는데 3분도 안 돼 진료가 끝나는 병원, 게다가 의사들은 환자와 눈조차 맞추지 않으려 한다. 국내 최고의 인재들이 모인다는 대학병원의 진료실은 왜 환자들에게 불평불만의 장소가 되었을까? 이 책은 대형 병원을 가본 적이 있다면 누구나 한번쯤 겪어보았을 법한 우리 의료계 구조적 문제와 3분 진료 시스템의 문제를 속속들이 파헤친다. 의료계 종사자가 아니라면 알기 어려운 다양한 병원의 이야기를 통해 공장화되어가는 대형 병원의 문제와 '3분 진료 공장'이 되어버린 우리 의료계의 현실을 짚어본다. 그리고 그 '3분' 안에 지혜롭게 진료 받는 노하우 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환자'와 '의사' 모두가 만족하지 못하는 대한민국 의료계의 현실

대형 병원의 시스템적 문제와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의사들의 이야기


 

어느 중앙일간지 기자가 자신이 경험한 병원 진료실의 모습에 대해 신문 칼럼에 실었다. 그가 병원에서의 경험이 어땠는지는 이 길지 않은 문장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백발 신사의 시선은 허공을 맴돌았다. 의사는 팔순 넘은 환자의 CT 사진을 컴퓨터 화면에 띄우고 설명했다. 이해하지 못한 듯한 환자의 표정은 안중에 없었다. 짧고 강렬한 불통의 현장. 무척이나 바빠 보이는 의사는 ―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다음 환자가 걱정돼서인지 ― 마우스를 빠르게 돌려댔다. "여기 보시면 뭐가 보이죠. 검사가 필요합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노인은 '여기'부터 맥락을 놓치고 있었다. 평생 마우스를 안 쓰고 은퇴한 그는 화면 속 작은 화살표의 의미를 몰랐고, 그 섬세한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했다. 진료실을 나선 노인은 "아픈 게 죄"라며 한숨지었다."


서울의 유명 병원들, 소위 빅파이브(Big 5)라고 불리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본 사람이라면 대충 눈에 그려지는 경험들이다. 환자와 눈 한번 마주치지 않는 의사에게 마음이 상하고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병원을 예약하기도 쉽지 않고, 진료 대기는 항상 길고, 겨우 진료실에 들어서면 "검사부터 하고 다시 뵙겠습니다." 한마디에 또 몇 주 몇 달을 기다려야 하고, 이것저것 검사는 많고, 의사는 질문을 할 틈조차 주지 않는…… 불편한 병원, 불친절한 의사들.

 

이런 문제들을 의사들 역시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만족스럽지 못하기는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드러나지는 않지만 실적에 대한 병원의 은근한 압박, 하루 서너 시간 만에 50~70명의 환자를 살펴야 하는 의료 과밀화, 기다림에 지친 환자들의 고성과 아우성 등.

 

어쩌다 우리 의료 시스템은 환자와 의사 모두가 만족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을까? 이 책은 대학병원의 종양내과 의사인 지은이가 과밀화된 병원에서 일하며 생각해온 단상과 일화를 엮은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알기 어려운 병원의 시스템적 문제와 그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는 의사들의 노력이 엿보인다.

 

 


'3분 진료 공장'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병원 시스템,

무엇이 의사들을 공장의 노동자가 되어버리게 했는가?


 

대한민국의 의료 수준은 지난 10~20년간 눈부시게 성장했다. 의사들의 실력도 뛰어나지만 의료 가성비로는 전 세계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2019년 OECD 통계에 의하면 OECD 국가 평균 의사 1인당 연간 진료 환자 수가 2,122명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6,989명으로 세 배가 넘는다. 그러다 보니 1인당 의료비는 미국의 30퍼센트, 독일의 50퍼센트, 영국의 70퍼센트밖에 안 쓰면서 기대수명은 매우 긴 장수 국가에 속한다. 이러한 의사의 혼을 갈아 넣은 의료 가성비는 우리 의료를 외형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환자의 경험이다. 의사가 진료하는 하루 수십 명의 환자 중 한 명에 불과한 개개인의 환자들은 의사에게 충분한 인격적 대우를 받지 못한다. 인격적 대우는 고사하고, 1시간을 넘게 기다려 진료실에 들어갔는데 1~2분 만에 내몰리는 경험은 환자에게는 모멸감을 안겨준다. 빛나는 의료 성과 뒤에 숨겨진 부작용의 피해는 전적으로 환자들의 몫으로 남겨진 것이다. 우리 의료계는 어쩌다 '3분 진료 공장'이 되어버린 것일까? 이에 대해 지은이는 다음의 몇 가지 이유를 꼽는다.


1. 대형 병원 쏠림 현상 - 대형 병원 쏠림 현상은 우리나라 의료의 고질적인 문제이지만, 암 진료에서 특히 심하다. '암은 큰 병원에 가야 낫는다.'는 관념이 대중에게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대형 병원들이 과거 선도적으로 암 진료 시스템을 발전시키면서 좋은 치료 성적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다른 많은 병원들도 암 진료 수준을 상당히 향상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쏠림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진료비의 5퍼센트만 내면 되는 건강보험 산정특례제도 때문에 암 환자들이 수도권 대형 병원에 몰린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좀 더 체계적인 대형 병원에서, 좀 더 실력 있는 의사에게 치료받고 싶은 마음은 지방에 사는 환자나, 수도권에 사는 환자나 매한가지다. 이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5퍼센트라는 염가로 환자들을 끌어들이고, 95퍼센트를 건강보험공단에서 받아 수지타산을 맞추는 병원들이 수익을 위해 과도하게 환자들을 받는 것과, 국가가 이를 방관하는 것이다.


2. 빠른 고령화와 의료 수준의 발전 - 암은 나이가 들수록 발생 위험이 높아지는 노년의 병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70대가 넘는 환자가 암 치료를 받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80대 심지어 90대도 항암 치료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또한 수술 기법과 방사선 치료 장비의 발전, 표적 항암제와 면역 항암제의 등장 덕분에 예전 같으면 일찍 생을 마감했을 환자들이 더 오래 살 수 있게 되었다. 의료 기술의 발전은 그 자체로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지만 이로 인해 진료실의 과밀화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암 환자들이 늘어나면서 병원들은 너도나도 시설과 인력에 투자해왔으나, 이제는 그마저도 과포화된 지 오래다.


3. 낮은 의료수가 - 사립 병원의 궁극적 목적은 당연히 수익 창출이다. 표면적으로 그 어떤 숭고한 목적을 내세우더라도 수익이 발생하지 않으면 병원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의료수가 자체가 낮은 우리나라 병원들은 더 많은 환자를 받아 이를 채워야 한다. 이렇게 환자를 많이 보아야 병원의 경영이 유지되는 구조에서는 그 피해가 환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최근 환자 경험 평가 결과를 의료수가에도 반영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병원에서는 '좀 더 친절해라', '설명을 잘해라', '회진을 제때 돌아라', '환자를 칭찬하고 격려해라'와 같은 내용을 담은 공지 메일을 발송하지만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인 환자 수를 줄이려는 노력은 병원도 정부도 기울이지 않는다. 현재의 진료양은 유지하면서 더 환자를 만족시키라는 채찍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분 진료실'에서 똑똑하게 진료받는 법

"질문은 미리 준비하고, 자신의 몸 상태는 스스로 체크해둬라"


 

가끔 진료를 받기 위해 의사 앞에 앉으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의사의 설명은 짧고 궁금한 것은 많은데 무엇부터 질문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두서없이 한두 가지 질문하고 진료실 밖을 나서면 아뿔사, 가장 중요한 질문을 잊고 물어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병원 시스템적 질문이야 밖에 있는 간호사에게 물어보면 되지만, 병과 관련된 질문은 의사 외에는 대답해줄 수 없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진료 받고 있는 진료실에 다시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 미리 질문을 적어두라고 조언한다. 환자의 질문은 단지 환자의 궁금증을 해결할 뿐 아니라 자신의 몸을 돌보는 데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의사에게는 환자들이 궁금해하는 것, 필요로 하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된다. 그러니 미리 질문을 준비해서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것이 좋다.

 

또한 진료 시간에는 본인이 궁금한 것을 묻는 것뿐만 아니라 의사가 궁금해하는 것도 말해줘야 한다. 환자가 일방적으로 묻기만 하면 본인의 궁금증은 어느 정도 풀리겠지만, 의사가 환자의 증상을 살필 수 있는 기회가 없다. 그러니 지금 어떤 부분이 가장 불편한지, 그리고 내 몸의 상태가 어떤지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고 있다가 정확히 알려주어야 한다.


이 책은 진료실에서뿐 아니라 항암 치료를 받을 때 유의사항이나 알아두면 좋은 팁을 제공하기도 한다. 단순히 자신이 치료받는 대형 병원에만 의존하지 말고, 동네 의원과 양다리를 걸치라는 이야기, 자신의 몸 상태를 어떻게 정확히 체크할 수 있는지, 항암 치료 전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병원을 옮길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관한 방법도 알려준다.


 

 

김선영


 

어느새 삶의 절반을 병원에서 보낸 대학병원 의사다. 의료의 목적이 뭔지 늘 의문이지만 여전히 '3분 진료 공장'의 부품으로서 열심히 살아가고자 애쓴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병원과 국립암센터를 거쳐 현재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부교수로 있다. 의료전문지 《청년의사》에 칼럼을 기고하면서 글쓰기를 시작했고, 암으로 사망한 아버지의 투병 일기를 통해 오늘의 진료 현장을 조망하는 에세이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과 의사 집단과 사회의 불화를 들여다본 《의사들은 왜 그래?》를 썼다.

 

 

[박형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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