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연극 '용의 아이' 주재현 배우를 만나다. [공연]

글 입력 2023.07.24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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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이 두려운 시대다. 최신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인류는 더욱 발전할 무언가를 찾기 위해 헤맨다. 이렇듯 격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예술은 어떤 기능을 하는지 잠시 고민해본 적이 있었다. 예컨대 연극을 무엇에 비유하여 설명할 때, 지겨울 만큼 쓰이는 표현이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하지만 이제 거울을 보는 사람이 별로 없다. 부러 연극을 볼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한편 요새 쉬이 ‘MZ’라는 표현으로 어린 세대를 뭉뚱그려 표현하고는 한다. 그러나 편리한 길만을 택하는 개인주의적인 집단이라는, MZ 세대에 대한 일방적 편견이 좋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이기적 효율보다는 이타적 가치를 추구하는 젊은 세대 또한 곳곳에서 그들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기 때문이다.

 

공연예술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곳이 어렵고 험난하다고들 하지만, 예술의 가치와 꿈을 위해 분투하는 젊은 예술인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이번 인터뷰에서 만난 주재현 배우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지금 산울림 고전극장의 연극 <용의 아이>에 배우로 출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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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주재현

 

 

<용의 아이>는 고려 시대 삼별초의 신화적 인물, 김통정에 관한 이야기를 재해석한 연극이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게 익숙한 요즘의 관객에게, 고전 문학을 소재로 한 연극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

 

안녕하세요 배우님. 우선, 어떻게 연극 <용의 아이>에 출연하시게 됐는지 여쭤볼까요?

 

이전부터 극단 ‘혈우’의 작품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작가 노트, 사라져가는 잔상들>이나, <진홍빛소녀> 등, 제가 이미 알고 있던 작품이 꽤 있었어요.

 

또, 제가 이전에 뮤지컬 작품으로 만났던 지인 배우 중에 혈우 작품에 참여했거나, 한민규 연출님과 작업했던 분들이 계셔서 주변에서 추천을 받기도 했어요. 기회가 된다면 함께 작업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오디션이 떴던 거죠.

 

 

평소에 작품을 선택하실 때 본인만의 기준이 있는지 궁금해요.

 

그렇게 까다롭게 보진 않아요. (웃음) 배우로서 연습에 임하면서 배울 거리가 많은 작품에 지원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제가 하면서 즐거울지도. 그런 걸 보는 것 같네요.

 

 

그렇다면 <용의 아이> 오디션에 지원해서 합격하기까지의 과정은 어떠셨어요?

 

웃긴 일화가 있었어요. 제가 오디션 봤을 때 옷이 찢어졌거든요. 나풀거리는 셔츠를 입고 가서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줘야 했는데 옷이 너무 품이 크다 보니까 손에 눌린 거예요. 땅에 잡힌 상태로 점프를 뛰니까 단추가 떨어지면서 옷이 찢긴 거죠.


 

오, 그래도 꽤 멋있는데요.

 

근데 저는 사실 그것 때문에 “이 배우가 흥분하면 주변을 못 보고, 몸을 못 가누는구나.”라고 보일까 봐 오디션에서 떨어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합격하셨네요?

 

(웃음) 작품의 장르가 무협 활극이니까 분명히 역동적인 무술 동작이 들어갈 거란 확신이 들었고, 몸을 어떻게 쓸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저희 오디션 지정 대사가 용의 아이, 김통정이 내뱉는 첫 대사였는데요. 어린 김통정이 “나 김통정, 얼굴은 괴물.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귀여운 얼굴.”이라고 하는 것부터 시작하는데, 이게 정말 길어요. 거의 A4용지 한 장 분량 정도예요. 심지어 중간에 “얍, 아뵤, 와다다다.” 이런 기합 소리도 있단 말이죠.

 

딱 보고,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생각부터 들었어요. 현재 공연에서는 김통정 역의 유영욱 선배님이 바위를 괴력으로 갖고 노시는데, 저는 당시 오디션에서 발차기하거나 뛰어다니고 그랬어요. 열심히 했어요. (웃음) 잘 봐주셔서 합격할 수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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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사진 ⓒ김명집



처음에 대본 읽으시고 어떤 것을 느끼셨을지도 궁금합니다. 작품의 첫인상이 어땠나요?

 

첫 연습에 저만 못 갔어요. 그다음 연습에 합류했을 때 대본을 받고 저만 그걸 처음 읽었던 거예요. 다른 배우분들은 뭔가 많이 생각해오신 상태였고 저는 거의 모르는 상태에서 리딩을 시작했는데요.

 

 

그때 처음 대본을 읽으면서 파악하셨겠네요. 이런 내용이구나, 하면서.

 

대본의 페이지 수가 아주 많은데도 되게 술술 읽혀서 신기했어요. 중간중간의 대사들이 허를 찌르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았고요. 짧은 마디의 대사들이 작품의 전체적인 주제를 함축적으로 설명한다든지, 인물의 특징을 콕 집어서 표현하는 대사들도 재밌었어요.

 

근데 그게 첫 리딩에서부터 느껴지는 게 신기했죠. 재밌게 읽었어요. 그리고 일정한 형식을 가진, 양식적인 대사가 많아서 새롭기도 하고 낯설었어요. 만화적인 구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뭔가 만화처럼 머릿속에 인물과 대사, 배경이 프레임별로 나뉘어 자연스레 이어지는 것 같았죠.

 

 

저도 공연 보고 그런 생각을 했어요. 만화는 말풍선의 크기가 정해져 있잖아요. 그래서 보통 대사의 호흡을 짧게 끊는데, <용의 아이>에서도 대사의 호흡이 짧더라고요. 긴 대사도 나오지만 끊어가는 흐름이 짧았고, 의성어나 의태어도 많이 쓰였고요.

 

맞아요. 근데 이건 무대 공연이잖아요. 그래서 대본을 읽고 그 생각도 했어요. 우리가 상상한 것들, 무대 위의 약속을 관객에게 온전히 보여주자.

 

약속이요?

 

저는 연극 작업에서 제일 중요한 게 약속이라고 늘 생각하거든요. 무대 위에 환상의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창작자들이 작품을 만들면서 그 세계에 대한 약속을 맺어야 하고, 결국 관객에게 보여줌으로써 약속을 이행하는 거니까요.


오디션에서도 연출님께서 저에게 연극 작업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셨는데, ‘약속’을 말씀드렸어요. 대본을 읽고 나니 특히나 더더욱 이 연극적인 약속들이 정말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대본에 제시되는 양식을 토대로, 약속을 걸어서 그걸 딱-딱-딱 지켜나가면 정말 좋은 작품이 나오겠다. 우리가 상상한 것들을 관객분들에게 보여드리고, 그들로 하여금 이 모든 상상을 이끌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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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배우님께서는 관객분들이 <용의 아이>를 보고 어떤 것을 생각하길 바라시나요? 관객이 무엇을 얻어가면 좋을까요?

 

연습하면서도 생각했던 거고, 연출님께서 하셨던 이야기들과도 연결되는데요. 연출님께선 ‘미래 담론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다고 해요. 천 년 전의 고려 시대 이야기를 무대에서 보여주면서도, 앞으로 천 년 뒤의 미래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렇게 시대를 초월한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이 공연의 목표였어요.

 

이것과 연결되는 게, 극중에서 ‘공생을 거부하는 인류, 공생을 바라는 비인류‘라는 대사가 나와요.

 

 

비인류라는 표현이 되게 독특했어요.

 

그렇죠. 인류라는 단어도 고려 시대에는 없었던 말이라고 해요. 근데 작품에서는 미래 담론적인 주제와 연결되게끔, 현재 우리 인류가 살아가는 시대와 당시의 고려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줘요.


그때는 이유 없이 사람들이 죽고, 사라졌던 일이 빈번했잖아요. 저는 과연 그때만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도, 미래에도- 우리가 공생의 가치를 정말 생각하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인류마저도 멸종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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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사진 ⓒ김명집



그래서 작품 후반부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공생의 가치인 거군요.

 

네, 저는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정말 좋아요. ’김방경(고려 당시 삼벌초 토벌군의 지휘관)‘이라는 인물이 극중에서 가장 공생을 거부하는 인간인데요. 실존 인물이긴 하지만, 완전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만들어지진 않았고 픽션이 가미되기는 했어요.

 

김방경이 마지막에 죽어갈 때, 현대 문명 소리가 울려 퍼지거든요. 드릴 소리, 비행기 지나가는 소리 등이요. 현대 문명의 소리를 넘어서 미래의 소리, 어떠한 전자음까지 나와요. 근데 산울림 소극장이 아레나형 극장이잖아요. 그 장면에서 모든 인물이 김방경을 둥글게 에워싸서 몸으로 소리를 내기 시작해요.

 

휘파람을 분다든지, 울음소리를 낸다든지, 자연의 소리로 문명의 소리를 서서히 집어삼키죠. 그래서 결국 자연의 소리가 커지면서 김방경이 최후를 맞이해요. 여기에서 문명의 대척점에 있는 자연은 비인류. 즉, 지금의 소외 계층이나 사회적 약자로도 해석할 수 있겠죠.

 

 

배우님께서는 고려의 특수부대 ‘별초’ 역을 맡으셨죠. 이외에도 무대 위에서 일인 다역을 연기하시는데, 어떠셨나요?

 

제가 하는 역할이요. 처음에는 처형수의 부하로 나오고, 두 번째 나왔을 때는 바람의 형상으로 나와요. 그다음에는 김방경의 자객으로 나오고요. 고려 군졸로도 나오고, 몽골 군졸로도 나와요. 김통정이 사는 마을의 행인으로도 나오고, 그 마을을 습격한 도적으로도 나오고. 많죠? (웃음)

 

 

여러 가지 역할을 번갈아 준비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어쨌든 모든 역할이 다르게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도적에서 행인으로 넘어갈 땐 진짜 찰나의 순간에 인물을 바꿔야 하거든요. 쓰러지고 바로 일어나서 행인으로 바뀌어야 해서, 어떻게 하면 완전히 다른 인물로 보일 수 있을지 표현적인 부분을 고민했어요.

 

짧은 대사를 어떻게 쳐야 할 지도요. 그래서 초반에 처형수의 부하로 나올 때 “이 방은 모두 끝났습니다. 건넛방에도 사형수들이 있습니다.” 이 대사를 할 때도 많이 고민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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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사진 ⓒ김명집

 

 

각 인물이 누구인지를 짧고 확실하게 보여줘야 하니까요.


맞아요. 단순히 생각하면 ‘부하’ 역할은 그저 딱딱하게 연기해도 되죠. 근데 이 장면이 되게 아이러니해요.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사형수로 몰려서 죽임을 당하잖아요. 변명할 기회도 안 주고 되게 속도감 있게 사형이 집행되죠. 그 시대에 억울한 죽음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보여주는 장면이에요.


저는 과연 ‘처형수의 부하는 안전할까?’ 생각했어요. 이 부하도 언제든지 죽임을 당할 수 있을 것이고, 또 처형수의 옆에서 따라다니는 것 자체가 얼마나 무섭겠어요. 이러한 인물을 어떻게 제가 이 짧은 대사만으로 보여줄 수 있을지 많이 생각했어요.

 


작은 배역이어도 투철하고 세심하게, 열심히 연습하셨네요.

 

열심히 해야죠. 그리고 이번에 뵙게 된 선배들이 연기도 물론 잘하시지만, 다들 아이디어를 내는 능력이 너무 좋으셨어요. 현장에서 매번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져오셨고, 논의하면서 생산적인 방향으로 연습을 이끌어주셨거든요. 덕분에 팀 분위기도 되게 좋았고요. 보면서 저도 더 많이 노력하고 연구했던 것 같아요.

 


작품도 작품이지만, 이번 인터뷰를 통해 배우님에 대해서도 많이 알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용의 아이>가 끝난 후의 계획이 있는지요?

 

올해 하반기에는 이전에 참여했던 뮤지컬 작품을 아마 대학로에서 다시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내년 초에 공연 예정인 창작 뮤지컬이 하나 또 있는데, 그건 입대하기로 생각했던 기간과 겹쳐서 고민 중이에요. 군대에 가기 전에 여행을 다닐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일정이 꼬이긴 했어요. (웃음) 그래서 생각을 미루고 있어요. 지금 공연 잘 마무리할 때까지요.

 

 

[이남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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