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평생 귀엽고 예쁜 것 속에 파묻혀 살고 싶어 -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 V.15 [전시]

좋아하는 것이 확실하고 선명한 사람들은 빛이 난다
글 입력 2023.07.15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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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반 오십을 돌파해 버린 지 3개월이 지났다. 아니, 이제 한국에도 만 나이가 적용되기 시작했으니 간신히 반 오십을 목전에 둔 셈이다. 많으면 많고, 적다면 적은 나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이미 어른이라는 딱지가 붙어버렸다. 어른. 생각보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단어가 아닐 수 없다.


너는 나이가 몇인데 이런 걸 사니. 그런 거 사서 어디에다가 쓸래. 이런 거 다 어릴 때나 좋아하는 거지. 


목적어는 모두 달라도 한 번씩은 들어본 말일 테다. 성인이 되면 좋아하는 걸 마음껏 할 수 있을 줄만 알았는데, 그건 착각이었나. 무언가를 좋아하는 내 마음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데, 주변에서는 자꾸만 뭔가를 좋아하는 데 정해진 시간이 있는 것처럼, 마치 때가 되면 졸업해야 하는 것처럼 말한다.


노트북 겉면에 붙였던 귀여운 스티커들은 이미 진작에 모두 떼어냈다. 귀여운 키링은 가방에서 꺼낼 일 없는 블루투스 이어폰 케이스에 옮겨 달았다. 열심히 스케줄러에 붙이던 스티커들은 스티커 앨범에 들어간 후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딱히 신경 쓰이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스스로 조금은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나는 나이가 들어도 평생 귀엽고 예쁜 것 속에 파묻혀 살고 싶어!

 


1. SIFV.15_포스터.png

 

 

서울 일러스트레이션 페어는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한 행사이다. 2015년 국내에서 최초로 개최된 일러스트레이션 전문 전시회인 서일페는 일러스트레이션을 대중에게 소개하고,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는 소통의 장을 제공한다.


일러스트 굿즈가 가득한 서울 일러스트레이션 페어 (이하 서일페)는 다양한 매력이 가득한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지난 7월 9일부터 9일까지 코엑스 C홀에서 개최된 서일페는 1,000여 명의 작가들과 함께 역대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일러스트레이션의 트렌드를 읽기에 단연 최적화된 행사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이번 서일페 V.15에서는 2023년 새롭게 개발된 BI를 처음 선보였다. 서일페만의 멤버십 아이덴티티로 만들어진 BI는 ‘그리움의 즐거움’ 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서일페 현장에서는 이 주제로 SIF 글로벌 기획관과 방콕 일러스트레이션 페어 리뷰어 전시인 SIF 프렌즈 등 다양한 기획관이 열렸고, 4가지 세션으로 세미나가 진행되기도 했다.

 


3. 현장사진.jpg

 

 

사실 귀엽고 예쁜 굿즈나, 멋진 일러스트를 정말 좋아하지만 나는 일러스트와는 연이 없다. 그림에 뜻이 없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스타일의 작가님들을 팔로우 해놓기는 했지만, 서울 일러스트 페어를 찾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서일페의 규모를 마주한 후의 놀라움은 두 배가 됐다. 입장을 위해 대기하는 줄이 그렇게 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천 개가 조금 넘는 부스가 끝없이 이어진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장내를 가득 채운 인파를 보며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일러스트를 사랑하고, 일러스트에 진심이라는 것을 느낀 순간이었다. 


천 개가 넘는 부스를 전부 구경하는 것도 굉장히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각각의 부스가 전부 멋진 일러스트 굿즈를 판매하고 있어서 어느 하나라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나씩 구경하다 보니 시간이 어느덧 3시간이 훌쩍 지나 있는 게 아닌가. 내게 남은 건 너덜너덜해진 몸과 가벼워진 지갑, 그리고 양손 가득 들린 굿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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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듯이 나는 그림에 뜻이 없다. 내가 그릴 수 있는 건 내 이름에 들어가는 동그라미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부스를 구경하는 내내 감탄사가 입가에 맴돌았다. 세상에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정말로 많았다! 


독특한 아이디어와 훌륭한 예술 작품들의 향연을 구경하는 내내 기분 좋은 질투가 온몸을 휘감았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에 대한 질투였다. 단순히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 작가님들의 개성과 취향이 한눈에 드러나는 작품이어서 더욱 질투가 났다. 


부스 하나하나마다 각각의 색깔이 짙게 묻어나는 건 정말이지 마음을 울렸다. 나는 아직도 나만의 색을 찾지 못했다. 선명한 취향도, 나만의 스타일도 아직 흐릿하다. 그로 인한 초조함이나 불안함도 있었다. 그래서 자신만의 색깔로 잔뜩 칠해진 캔버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부러운 마음이 생겼다. 나도 언젠가 뚜렷한 나의 색을 찾을 수 있게 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세상을 선명하게 구현해 낼 수 있는 건 정말 훌륭한 재능이다. 자신의 세상을 타인과 공유할 수 있으니 말이다. 어떤 세상은 분홍빛 구름이 가득했고, 어떤 세상은 푸른 파도가 가득했다. 어떤 세상엔 보라색 향기가 가득했고, 어떤 세상엔 노란빛이 가득했다. 나는 그날 천 개의 세상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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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페의 부스에는 저절로 웃음 짓게 만드는 귀여운 캐릭터들도, 입이 떡 벌어지는 멋있는 그림도,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아름다운 그림도 가득해서 눈이 행복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고래가 그려진 포스터도 사고 싶고, 시원한 바다가 그려진 액자도 사고 싶고, 귀여운 캐릭터가 달린 키링도 사고 싶었다. 본능적으로 지갑을 움켜쥐었다. 아, 이거 잘못하면 빈털터리가 된다! 


하지만 구매를 절제하는 것도 정도껏이지, 부스가 자그마치 천 개나 되는 곳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시원한 파도가 그려진 책갈피를 어떻게 구매하지 않을 수 있는가. 취향의 그림이 그려진 스티커를 어떻게 참을 수 있냐고. 계속 눌러보고 싶은 에폭시 키링을 어떻게 안 사냐는 말이다. 그렇다, 나는 지갑을 지킬 수 없었다. 


그렇지만 정말 행복하고 즐거운 소비였다. 어떤 굿즈를 살지 고민하는 시간도 즐거웠다. 그리고 전부 후회 없는 소비였다. 새로 산 파도 책갈피를 빨리 써보고 싶으니, 오늘은 새로 산 후 아껴두었던 책을 펼쳐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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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이 확실하고 선명한 사람들은 빛이 난다.


서일페에는 그런 빛이 가득했다. 그건 비단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부스를 구경하는 참관객들에게서도 반짝이는 빛이 났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열정이 빛이 되어 반짝이는 것이니까. 서일페는 일러스트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리기의 즐거움이란, 그리는 사람과 감상하는 사람 모두가 함께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서울 일러스트 페어는 SIFverse 플랫폼을 개발 중에 있다. 2030년 공개될 이 플랫폼에서는 지속적인 창작의 기회와 팬, 그리고 바이어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될 예정이다. 이는 세상의 모든 크리에이터들과 상생하고자 하는 서일페의 의도가 담겨져 있다. 


2024년에는 서일페 멤버십이 공개될 예정이고, 굿즈이즈굿, 서일페 V.17과 V.18, 그리고 부산 일러스트레이션 페어 V.5도 개최될 예정이라고 하니 일러스트레이션에 관심이 있다면 참관해 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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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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