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장 말간 너의 거짓말, 비밀의 언덕 [영화]

나만 아는 언덕에 비밀로 묻을래요, 가장 내밀한 마음 한 조각에 대한 이야기
글 입력 2023.07.09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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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포스터를 보았다면, 어느 골목의 계단에 앉아 쓰기에 열중하는 여자 아이를 보고 미소 지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내 아이가 쓰는 글, 제목에서 말하는 비밀, 아이의 모습과 유사한 내 유년기 속 어느 순간이 떠오르고 말았다.

 

아마도 주인공일 저 아이의 비밀과 비슷할 나의 이야기를 대어보고 싶고, 천진한 표정 뒤에 숨었을 아이의 고단함을 알고도 싶었다. 지금에야 그 때가 가장 속없이 좋은 시절이었다 말하지만 유년에만 지녔던 순수하고 치열했던 고민이 그리운 마음에 지난한 평일 일과를 마친 뒤 반갑게 극장으로 향했다.

 

“가족은 무엇일까요? 저에게 가족은 물음표에요”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한 5학년 소녀 ‘명은’이 글쓰기 대회에 나가 숨기고 싶었던 진실과 마주하는, 그 시절 나만 아는 이 여름 우리가 꺼내 보는 비밀스러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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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매우 다정하고 사려 깊은 영화”라는 평과 함께 제72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Kplus 경쟁 부문 초청되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현지 언론으로부터 “보석 같은 데뷔작”(critic.de), “촘촘하고 강렬하며 흥미로운 영화”(thereviewshub) 등의 극찬을 받으며 국내 영화 팬들의 궁금증을 더한 가운데 세계 유수 영화제 초청, 수상 릴레이는 물론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CGV아트하우스 창작지원상 수상, 제10회 무주산골영화제 경쟁 부문 나봄상(감독상)과 무주관객상 수상 등을 통해 독보적인 올해의 데뷔작으로 떠올랐다.

 

이지은 감독은 “늘 새로운 10대 여성 캐릭터를 보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주체적이고, 독립적이고, 발칙하고, 뜨거운 욕망 가진 그런 작은 인물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고 그런 이상이 투영된 캐릭터가 주인공 ‘명은’이다.”라고 설명하며 예비 관객들의 관람욕구를 높였다.

 

 


#1. 그러니까 제 생각에 저는요. 


 

12살 소녀의 머릿속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잘 지내야 하고, 선생님께 인정받을 특기 하나쯤 살려 상도 받아야 한다. 누가 그러라고 한 건 아니지만, 그런 제가 좋고 그렇고 싶은 걸요. 스크린을 가득 채운, 선생님께 드릴 첫 선물을 열심히 포장하는 명은의 표정에는 이 친구의 순수한 이타심 외에 어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강한 욕구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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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끌어갈 주인공의 성격이 결코 만만하지는 않아요, 힌트를 주는 듯한 첫 장면부터 만족스러웠다. 이 이야기는 어른의 시선에서 본 아이의 삶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직접  말하는 소녀의 것이구나 싶었다.

 

감독이 말하고자 한 10대 여성의 캐릭터가 확실히 이전 영화에서와는 다르다는 선언처럼 느껴졌다면 비약일까.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분명히 알고, 강단있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귀여운 맹랑함이 만들어갈 크고 작은 사건들이 기대되었다.

 

 

 

#2. 저 좀 보세요! 반장이 하고 싶어요.


 

말똥한 눈에, 엄마가 골라준 옷을 하고 열심히 만든 비밀 우체통으로 반장이 되면서부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지키고 싶은 공약은 과감하게 단 하나,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반을 만들게요! 명은의 바람은 어느 정도 이뤄졌다. 반 친구들과 선생님의 관심이 나에게 더 많이 주어지고 있고, 누구보다 확실하고 영향력 있는 자신의 포지션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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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년이 될 때마다 반장 자리, 선생님의 애정을 두고 시작되는 은근한 경쟁 속에서 승리한 명은의 미소에 늘 감투 하나는 쓰고 시작했던 나의 유년도 떠올랐다.

 

일부러 나서지는 않았지만 친구들의 추천에 못이긴듯 공약을 말하고, 똑부러져 보였던 이미지와 그럴듯하게 먹혔던 말발로 표를 받으면 뿌듯해했던 학기 초. 표현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30명 남짓의 아이들이 들어찬 공간에서 펼쳐지는 작은 사회에 나의 존재를 각인시켰다는 생각에 기분을 내던 순수함이, 친구들과 부모님의 칭찬이 유치하게 그리워졌다.

 

 

 

#3. 우리 가족이요? 사실은…


 

하지만 명은이 솔직하지 못했던, 마음의 가시같은 존재인 가족 탓에 기뻐만 할 수는 없었다. 아빠는 회사원, 엄마는 가정주부고요. 그리고 오빠 하나 있는데요, 하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이건 새빨간 거짓말이니까.

 

어디에 내놔도 부끄러운, 시장에서 젓갈을 파는 우리 엄마와 놀기만 좋아하는 아빠, 엄마 아빠를 싫어하는 오빠까지 좋아할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는 우리 가족이 참 싫었다. 왜이렇게 억척스럽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하필 우리 가족인 거야, 명은의 마음 속은 불만만 한 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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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한 글 재주로, 명은은 더 큰 상을 욕심내며 가족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고 큰 결심을 한다. 글쓰기 대회에서 솔직한 이야기로 입이 떡 벌어지는 감동을 선사하며 늘 1등을 차지하는 전학생 자매의 속삭임에, 저도 그들을 따라 솔직함을 무기로 말이다.

 

사실은 가족의 진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 모르는 아저씨를 인터뷰해 회사원 아빠로 둔갑하고 친구의 엄마를 자신의 가정주부 엄마로 친구들까지 잘 속여왔는데, 이것들을 오빠에게 들키고 나니 유년의 특권인 변덕으로 한번쯤 심정을 시원하게 다- 말하고 싶어졌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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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누구이든 상관없이 그저 저는 저인데요, 굳이 말하자면 우리 가족 진짜 별로예요!”

 

 

 

#4. 그런데, 가족이 상처받는 건 싫어요.


 

집을 떠나 나의 세상이 더 커지기 전 가족은 나의 거의 모든 것이었다.

 

사회가 시작되는 가장 작은 단위라는 말처럼, 사소한 습관과 말투, 행동, 생각 하나하나 영향을 받으며 자라날 수 있었던 단단한 땅이자 바라볼 수 있는 하늘. 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일들에 함께 웃고 울어줄 존재. 명은은 가족을 생각하면 물음표가 떠오른다 했지만, 나는 이랬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에 다니게 되며 목격했던 다양한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각 지역에서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을 한데 모아놓은, 말하자면 수능형 비평준화 고등학교에는 여러 모습의 부모가 있었다.

 

누가봐도 번듯한 모습을 하고서 비정상적으로 공부를 강요하던 부모, 자녀의 도덕관에 별 관심이 없는 부모, 경제력으로 자녀의 모든 것을 해결하려던 부모. 선택할 수 없었지만 그 모든 부류에 우리 가족이 속하지 않았음에 감사하며 예민한 질투심과 경쟁심을 버텨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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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펼쳐 써놓고 보니, 명은도 진짜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일까.

 

우리 가족이 어떻다고 말하긴 여전히 어렵지만, 사랑한다는 마음은 어렴풋하게 알게 된 듯한 미소. "가족에 대해 거짓말했다는 것도, 적나라하게 우리 이야기를 해버렸다는 것도, 그래서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것도 나만 아는 언덕에 비밀로 묻을게요."

 

오랜만의 말간 이야기였다. 미워하는 마음 하나 없이 마음이 따뜻해졌다. 맹랑하고 욕심 많은 12살 아이의 예민한 감수성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니 명은을 그저 이해하고 용서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보다 진지하게 희로애락을 겪으며 한뼘 성장해낸 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에게 보낼 마음이, 응원 밖에는 없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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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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