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누구에게나 그런 기억이 있다 -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

잊을 수 없는 그 해 여름
글 입력 2023.06.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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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은 유명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의 공동 각본을 맡기도 한 카나자와 토모키가 각본과 감독을 맡았다.

 

그는 자전적인 이야기가 가진 힘으로 주인공 히사의 기억 속에서 펼쳐지는 그 해 여름의 추억과 아름다운 우정을 생동감 넘치게 풀어낸다.

 

문학을 하고 싶지만 계속해서 대필 의뢰만 들어오는 작가 히사는 어느 날 책상 앞에 앉아있다가 찬장에 놓인 고등어 통조림을 보고 어린 시절에 사귀었던 한 친구를 회상하게 된다. 때는 1986년, 첫 여름방학을 맞은 초등학교 1학년 히사는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집에 찾아온 같은 반 친구 타케와 함께 돌고래를 보기 위해 둘만의 비밀스러운 여행을 떠난다.

 

산을 넘고 숲을 지나 바다를 건너는 두 사람의 여정은 눈으로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하다. 의심이 많은 구멍가게의 주인 부부, 시비가 붙은 동네 양아치들, 궁지에 몰린 히사와 타케를 도와주는 형과 누나, 귤 농장을 하는 할아버지 등 여행 도중에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 또한 히사와 타케의 여정에 긴장감과 재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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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돌고래의 등 뒤에 올라타 바다를 자유롭게 누빌 수도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히사와 타케는 고래를 만나지 못한다. 그러나 여행의 목적이 달성되지 못한 그들은 생각보다 크게 아쉬워하지 않는다.

 

이 추억을 회상하고 있는 현재의 히사가 말했듯이, 처음부터 돌고래는 없었는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타케는 그저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의 소중한 첫 여름방학을 히사와 함께 보내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낡고 허술한 자신의 집을 보고 온갖 조롱을 해대는 학생들 사이에서 히사 혼자 웃지 않았으니까.

 

히사는 자신의 아픔을 조롱거리로 삼지 않았던 유일한 친구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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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사도 처음에는 돌고래를 볼 수 있다는 것과 마트 앞에서 몰래 주운 100엔을 들켰다는 것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행을 가자는 타케의 요구를 승낙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에게 이 모험은 때로는 너무 당돌하고, 때로는 무척이나 어른스러운 타케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타케를 이해하는 시간이 된다.

 

비밀스러운 모험을 마치고 돌아와 서로를 향해 또 보자는 말을 수도 없이 던지는 히사와 타케. 힘을 잔뜩 실은 두 사람의 외침은 공중에서 흩어지고 마는 빈말이 아닌 진심 그 자체다. 하루 동안의 여행으로도 이렇게 끈끈하게 연결될 수 있는 아이들의 순수한 우정이 부럽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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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정에는 언제나 엇갈림도 있는 법. 보통의 아이들보다 훨씬 성숙하고 섬세한 타케는 혹여나 히사가 자신을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봐 약간의 선을 긋는다. 타케의 엄마로부터 이런 타케의 생각을 전해 들은 히사는 그에게 실망하고 만다.

 

그러나 히사는 타케가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속에 품고 있던 서운함을 밀어내고 마지막으로 그를 보기 위해 전속력을 다해 기차역으로 달려간다.

 

히사가 떠나가는 타케를 위해 한 아름 사 온 고등어 통조림은 어디에서나 살 수 있는 흔한 음식이지만, 타케에게는 이 고등어 통조림이 자신을 향한 히사의 마음이 되어 전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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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우정이 여기에서 끝났다면 아쉬웠을 테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둘도 없는 친구 사이이다.

 

히사는 타케의 말대로 작가가 되었고, 타케는 히사의 말대로 스시 장인이 되었다. 서로의 응원에 힘입어 꿈을 키워나갔고 결국 꿈을 이뤄낸 두 사람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관객들에게 우정의 지속성이라는 희망을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그런 기억이 있다. 평범한 하루를 살다가도 물건 하나에 문득 수면 위로 떠오르고 마는, 그 시절의 전부였던 그런 순간 말이다. 중년이 된 히사와 타케가 서로에 대한 기억에 기대어 이 세월을 살아온 것을 보면, 추억을 야금야금 먹고사는 인간에게 지나간 순간을 선명히 떠올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역시 행운이 아닐까 싶다.

 

나가사키의 아름다운 여름과 풋풋한 우정을 가득 담은 영화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은 7월 5일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 영화를 통해 잊고 있던 누군가에 대한 기억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란다.

 

 

[윤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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