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보존하기가 아닌 의미 부여하기 - 보존과학자

글 입력 2023.06.1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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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기, 사진, 그림, 영상 등을 통해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것, 기억의 창고를 착실히 채워가는 것에는 유한함에 대한 인식이 작용했을 것이다. 언제든지 평생 누릴 수 있는 시간이라면 순간을 영원처럼 기록하는 일이 불필요할 것이다. 때로는 내가 사라지더라도 누군가 나의 잔해를 발견해 지나간 삶의 조각을 서툴게 맞춰보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위대한 예술은 때로 영원이라는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영원성은 있다고 믿고 싶은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곤 한다. 좋은 것들이 영원하지는 않더라도, 좋은 것들이 지닌 좋은 가치는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이 여기에 있다. 연극 <보존과학자>는 이와 관련한 상상력을 극대화한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국립극단]보존과학자_포스터s.jpg

 

 

연극 <보존과학자>는 대략 2930년 경, 커다란 재앙 이후 아무것도 남지 않은 땅을 배경으로 한 SF 연극이다. 유일한 생존자인 '보존과학자1'은 과거의 흔적을 전시 가치가 있는 무언가로 보존 및 복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극은 미래와 과거를 교차하며 진행되는데, 과거에는 세 자매와 아버지가 살고 있다. 넉넉치 않은 집안 형편에 첫째는 자꾸만 경제적 실패를 반복하고, 둘째는 하고 싶은 일에 부딪히는 걸 포기하며, 셋째는 전공과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아버지는 자신의 세상이 오로지 그곳에만 있다는 듯, 매일 TV만 보며 하루를 흘려보낸다.

 

결국 TV로 들어간 아버지, 아버지가 된 TV는 시간이 흘러 보존과학자의 실험실에 당도하게 된다. 보존과학자는 이것이 백남준의 <다다익선>에 쓰인 TV 중 한 대였을 것을 굳게 믿고, 그것이 거대한 예술적 가치를 지녔을 거라 기대한다. 그러나 해당 TV가 그저 가난한 가정집의 가족들이 보던 것임을 깨달았을 때, 보존과학자는 크게 절망하게 된다.

 

보존과학자가 강조하는 것은 '의미'이다. 유일한 생존자인 그에게 의식주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의미일 수밖에 없다는 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세상이 멸망해버린 것, 자신이 혼자 남겨진 것, 보존해도 아무도 봐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버티려면 의미 창출은 중요하다. 자신이 하는 일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홀로 남은 자의 고독은 날선 칼날이 되어 삶에 상처를 낼 테니 말이다. 그러나 연극은 앞서 말한 절망 속에 보존과학자를 오래 내팽개쳐두지 않는다. 

 

아버지에게 TV는 그 자체로 보존의 수단이었다. 그가 계속해서 돌려보는 자신의 인터뷰 장면, 뒤에 스치듯 걸리는 아내의 모습은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쭉 감각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보존과학자1 앞에 떨어진 낡은 TV는 그 존재부터가 보존을 상징하고, 때문에 그의 역할은 그것을 '보존'하기 보다는 그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있다. 이를 깨닫는 순간 극은 갈등을 해소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세계>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한다.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어쩌면 우리 존재의 본질인 무의미함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나아가 사랑해야만 비로소 의미에 찬 존재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는 텍스트이다. 게다가 의미 없음은 곧 뭐든 자유롭게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자매 역시 인상적인 인물들이다. 그들은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조차 무의미해보이는 일상을 영위하면서도, 아버지가 사라진 이후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과 세상을 이해해보려고 나름의 논리를 부여한다. 각자로는 철부지에 무력해보이던 그들이 함께 거실에 모여 대화할 때 느껴지는 시너지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 장면이 웃음과 동시에 애틋함을 유발하는 것은 '아버지가 자신의 세상인 TV 속으로 들어갔다'라는 설명과, 그러니 그를 따라 TV로 들어가자는 제안 역시 그들 나름의 의미 부여 행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삐걱대며 살아갈 수밖에 없고, 무의미를 더듬대며 의미를 만드는 우리 자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보존과학자>만의 개성이라 하면 사물을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묘사한다는 것이다. 극중 특히 강한 인상을 남긴 유리, 철, 알루미늄 전문가는 물질을 의인화한 역할로 볼 수 있다. 물성에 따라 각자만의 캐릭터성을 지닌 이들의 연기를 지켜보는 것이 무척 즐거웠다. TV가 아버지가 되어 사람처럼 말하고 움직이는 것처럼, 이 물질들 역시 '활동'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능동성을 지닌 채 우리 도처에 존재함을 깨닫게 한다. 특히 세 물질 전문가가 등장할 때마다 객석 중간중간에서 유쾌한 웃음이 터져나왔던 것을 잊지 못한다. 유머의 한 축을 담당한 특급 조연들이었다.

 

<보존과학자>는 배우들의 호연과 독창적인 무대 연출, 개성있는 극본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이다.

 

 

[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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