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빛에 대한 새로운 해석, 라울 뒤피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전 <뒤피, 행복의 멜로디>
글 입력 2023.06.06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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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전시는 '더 현대 서울'과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의 첫 번째 프로젝트라고 한다.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과 함께 프랑스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연간 천만 명이 찾는 근 현대 미술의 중심지인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과 2년간 8천만 명의 방문객 수를 기록하며 전시, 패션, 엔터테인먼트 등 K 콘텐츠의 최신 트렌드 집약체인 '더 현대 서울'의 만남이다.

 

 

더현대서울_퐁피두_뒤피_포스터1.jpg

 

 

뒤피는 프랑스 출생으로, 초반에는 인상주의에 심취하였으나 마티스 작품을 접하면서 야수파 대열에 합류한다. 이후 밝고 경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그만의 독창적인 화풍으로 평생 삶이 주는 행복과 기쁨을 주제로 작품을 그렸다.

 

왜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과 더현대 서울의 첫 번째 프로젝트가 뒤피인지는 뒤피의 작품 몇 점만 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뒤피의 작품은 굉장히 감각적이고 알록달록하다. 이 트렌드가 지났지만 매우 트렌디한 힙한 느낌이 더 현대 서울과 유사하며, 시간이 지남에도 트렌디함이 묻어나는 동시대성이 깃든 작품이라는 점이 유별나다. 본 전시에서는 그의 초기 인상주의 작품들부터 야수파 시절 작품들까지 볼 수 있다.

 

이 전시의 프롤로그는 그의 자화상 세 점이다. 세 점의 자화상은 각각 1898년, 1920년, 1948년에 그려졌으며 매우 스타일이 다르다. 개인적으로 인상주의 때 그렸던 첫 번째 자화상이 가장 인상 깊었다. 인상주의답게 색채, 색조, 질감에 힘을 준 이 작품은 뒤피의 성격을 묘사해 주는 듯하다.

 

어찌 되었건 자화상이라면 본인이 본인의 모습을 그린 그림인데, 그는 매우 우울하고 멍해 보인다. 아래를 향해 깔고 있는 두 눈꺼풀은 서로 생김새가 다르다. 입술은 약간 뽀로통하며, 어디 하나 흠 없이 잘 차려입었지만 전혀 멋이 나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그가 그린 그의 얼굴에 스며든 그림자와 다운된 그가 내뿜고 있는 하강의 색 때문일 것이다.

 

 

Autoportrait.jpg

 

 

전시 속에서 이곳이 여러 번 등장한다. <생트 - 아드레스의 해변>, <생트-아드세스의 잔교>. 대체 이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졌었다. 찾아보니 모네가 자주 이곳의 그림을 그렸었다고 한다. 프랑스 북서부 지방, 노르망디 해안의 작은 마을인 생트- 아드레스는 오래전부터 휴양지로 이름난 곳이었다고 한다.

 

모네는 '생트- 아드레스의 테라스'라는 제목의 이 해변의 풍경을 1867년 그린 적이 있는데, 1900년대에 들어서 또 이 해변을 묘사한 뒤피를 보았을 때 같은 인상주의로서 모네의 작을 이어간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인상주의답게 세밀하게 표현한 색채감들이다. 푸릇푸릇하고 진한 색들과 파스텔한 연한 색감들이 뒤섞여 있는데, 전혀 따로 놀지 않고 바다에 풍덩 빠진 양 잘 섞여 있다. <생트-아드레스의 해변>의 경우 붉은색들도 포인트로 널브러져 있는 듯한데, 단연 붉은색은 눈에 띈다.

 

그리고 여기서는 그의 사인이 매우 힙하게 칠해져 있다면, <생트-아드레스의 잔교>에서는 차분하게 써져 있는 둘의 차이점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무엇보다 바다를 좋아하기 때문인지, 바다를 아름답고 판타지적인 파스텔컬러들로 형상화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La plage de Sainte-Adresse.jpg

 

 

때때로 그의 작품들을 보면 사람의 마음을 색깔로 담아낸 것 같기도 하다. 그 어떤 화가보다 색을 잘 인지하고 이해한 화가가 아닐까? 그는 색에 대해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화가가 자신의 색채로 빛을 담아내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이 그린 것들을 다른 사람들이 보고 이해하도록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색채가 아닌 빛에 의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 라울 뒤피

 

 

그가 바라본 세상은 어떤 색들로 차 있었을까? 아님 이 모든 그의 그림들은 그의 상상 혹은 허상인 것일까? 문득 그의 시야가 궁금해진다.

 

정말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야수파 시절 뒤피는 지저분하고, 입체파 시기 그림들은 색들이 한정되어 있어서 낡고 매력 없어 보인다. 그는 예술작품이 늘 짜인 계획에 따라 탄생하지 않고 작품을 구성하는데 필요한 논리정연함에 대한 열망, 무질서와 혼란에 대한 이끌림 이 둘 사이의 투쟁으로부터 탄생한다고 말했는데 솔직히 이 시절 뒤피의 논리정연함에 대한 열망은 잘 모르겠다. 굳이 찾는다면 색 사용을 제한한 정연함? 하지만 그 색들의 제한 속 논리에 대해서는 노코멘트.

 

뒤피의 습작들은 별로 재미가 없었다. 진짜 결과물이 아닌 것을 알기 때문인지, 아니면 뒤피가 평소에 워낙 완성도 높은 그림을 그려서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까닭인지, 습작과 완성작의 차이가 심하게 났다. 색칠을 하다 말거나, 대충 했거나, 밑그림이 그대로 드러나기도 했다. 어쩌면 습작은 완성작이 존재한다면 실패한 그림이 아닌가? 그렇다면 치부의 그림이 아닐까? 이걸 공개하는 걸 뒤피가 원할까? 제1차 세계대전 종전에 대한 습작은 꽤 완성된 듯한 그림이었지만 인상 깊었던 점은 전쟁 통에 키스하고 있는 커플이 있었다는 것이다. '전쟁 중에도 사랑은 핀다' 뭐 이런 건가? 아니면 그가 목격한 것을 그저 그려낸 것일까? 바빠서 사랑을 할 시간이 없다는 말에 '전쟁 통에도 애는 낳았어~'라고 받아치는 동기 언니의 말이 생각난다.

 

암티르티테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이다. 포세이돈의 아내로서 바다의 여왕으로 불리는 그녀를 형상화한 그림이다. 눈에 띄게 큰 이 그림은 전시의 한 벽면의 높이만 하다. 확실히 크니까 아우라가 생겼다. 너무 장대하다 보니 한 발짝 떨어져서 차근차근 보게 되었다. 그림 안에 많은 것들이 숨어있는 것 같았다. 작은 장면들이 한 그림 속에 쪼개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그림은 하나하나 뜯어볼 수밖에 없다. 그림이 무대 같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다. 센터, 집중할 곳은 분명히 있지만 막상 그곳만 보는 관객들은 별로 없다. 나의 경우 맨 밑 왼쪽에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빛이 공존하고 붓 칠이 어지러우니 한 움직이는 장면 같았다. 영상 같은 그림이었다고 할까?

 

숲속의 말을 탄 사람들 - 약간 영화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영화가 생각난다. 아이들이 다 말을 타고 있고, 케슬러 가라고 써져 있는 것으로 보아 매우 명문 집안의 아들들인 것 같다. 하지만 쓸데없이 아이들의 피사체가 크고, 표정은 무표정인데다가, 이상하게 곱상하고 아름다운 웅장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전체적인 이 조화가 억지스럽다. 물론 멀리서 아무 생각 없이 본다면 지나치게 아름다운 그림이긴 하다. 이 그림은 내가 감히 예상하건대 돈 받고 그린 그림이 틀림없다...!

 

 

Les Cavaliers sous bois (La Famille Kessler).jpg

 

 

이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사실 그의 벽화이다. 하지만 난 그 벽화가 그리 인상 깊진 않았다. 분명 굉장한 스케일이고 멋진 그림이었지만, 그만큼 상업적인 느낌이 풍기는 그림이었다고 할까? 물론 그 속에 뒤피의 색들이 많이 담겨 있어 그 점은 좋았다. 하지만 이 거대한 그림 앞에서 감탄보다는 위압감이 더 들었다.

 

다른 곳들은 모두 사진 촬영 금지였는데 이 그림만 촬영이 가능해 모든 관람객들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는 풍경도 이 느낌에 한몫했던 것 같다. 기획의도, 전시 구성, 여러 가지 마음에 드는 전시였지만 뒤로 갈수록 습작들이 많았던 점, 집중력을 떨어뜨리게 하는 (중간에 사진 촬영 가능) 요소들이 아쉽긴 했다.

 

 

La Fée Electricité (partie gauche).jpg

 

  

하지만 뒤피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색의 논리는 확실히 품고 갈 수 있었다. 검은색의 경우 그만의 뒤집힌 발상을 통해 사용하기도 했다. 태양빛에 반짝이는 바다를 볼 때 순간적으로 눈이 부셔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강렬한 밝은 빛을 검은색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이라이트'라고 사용되는 곳에 검은색을 칠한 그림들이 처음에는 낯설기도 했지만 보다 보니까 실제로 강렬한 햇빛 앞에서 뜨기조차 힘든 상황들이 연상되면서 더 실재감 있는 그림들로 느껴졌다.

 


[신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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