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화풍과 장르를 뛰어넘어 -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전: 라울 뒤피

행복의 멜로디 선율을 따라 그린 작품들
글 입력 2023.06.02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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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를 통해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 퐁피두센터에서 소장하고 있던 라울 뒤피의 작품들을 더 현대 백화점에 위치한 전시관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사실 나는 더 현대라는 공간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가장 트렌디하고 핫한 곳이니만큼 사람이 몰리기 마련이고, 부대끼는 사람 수만큼 실시간으로 기가 빨리는 내향형 인간에게 그런 핫플레이스는 고역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핫 플레이스에서 열린 포토존 위주의 전시에 데인 경험도 있다. 평소 작품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기를 선호하는 내게 컨베이어 벨트 공장식으로 줄을 서서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고 뒷 사람을 위해 빠져 주어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있던 그 전시는 좋은 작품을 다수 가지고 있었음에도 전시장의 분위기로 인해 어떠한 감상이나 감동도 느끼지 못하고 서둘러 빠져 나오기 바빴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렇기에 한가득 걱정과 각오를 안고 도착한 전시장의 분위기는 너무나 의외였다. 우선 사진 촬영이 전반적으로 금지되어 있었고, 생전 음악을 통해 영감을 얻곤 했던 라울 뒤피의 작업 방식을 반영한 것인지 잔잔한 클래식이 배경 음악으로 흐르고 있었다. 적당한 볼륨의 음악이 흐르는 조용한 전시 분위기 덕분에 전시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고, 잘 짜여진 구성 덕분에 오랜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관람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더현대라는 공간에 대한 나의 인식 자체가 바뀌었을 정도로 간만에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지금부터는 인상 깊었던 작품에 대한 감상을 남기며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다. 다만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사진 촬영이 불가능했던 만큼 전시를 보며 간단하게 휘갈긴 메모 내용에 기반을 두고 기억을 더듬어 쓰는 것이라 다소 부족할 수 있다는 점에 양해를 구한다. 

 

 

 

Intro 자화상으로 보는 뒤피의 자유로운 작품 세계


 

Autoportrait, 1898.jpg

 

 

본격적으로 전시가 시작되기 전, 각기 다른 년도에 그려진 자화상 작품 3점을 만나볼 수 있었다. 1898년에 그려진 자화상은 갈색이 주를 이루는 따듯한 색감에 유려한 곡선을 지니고 있었는데, 인물의 우아하고 다정한 기품이 느껴지는 전형적인 자화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에 반해 1920년대 그려진 자화상은 같은 작가가 그린 작품이 아니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색다른 느낌을 준다. 선이 훨씬 간결해졌으며 색체 없이 오로지 드로잉과 명암 표현만으로 건조하게 표현된 인물에게서는 어딘지 고집스러워 보이는 인상이 느껴진다. 양안의 명도 차이 또한 자화상이 풍기는 독특한 분위기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었다. 


그보다 이후에 그려진 또다른 자화상은 사람의 피부색으로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상아색 외에도 여러가지 색체를 이용했는데, 얼굴의 대부분의 면적을 푸른 빛이 차지하면서 앞선 자화상들과는 다른 생기 없고 조금은 섬뜩하기까지 한 느낌이 표현되었다. 


이렇듯 자화상 3점을 통해 라울 뒤피는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 등 빠르게 변화하는 미술사의 흐름 속에서 특정 표현법에 국한되기보다 장르와 분야를 넘나드는 자신 만의 독창적인 작업 방식을 추구 해왔음을 단편적으로 알 수 있었다.

 

 

 

Part 1 인상주의로부터


 

생트아드레스의잔교.jpg

 

 

라울 뒤피는 인상주의 화가들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자랐다. 그렇기에 그의 초기 작품들에는 인상주의 화풍이 느껴지는데, 특히 그는 미세한 날씨의 변화를 잘 포착하여 질감이 느껴지는 표현 방식으로 빛의 효과를 담아냈다고 한다. 마치 햇살 가득한 니스의 해변을 떠올리게 하는 [생트-아드레스의 잔교] 작품에서 그러한 그의 작품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해당 작품은 강렬한 햇빛이 내리쬐는 해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마치 크레파스로 그린듯한 질감 표현은 거친 해변의 모래 질감을 떠오르게 한다. 빛을 받아 거의 하얀색을 띄는 모래 사장과 빨간 원색의 조화를 이루는 파라솔, 그리고 짙은 파란색의 바다와 하늘의 색이 대비되며 묘한 안정감을 선사한다. 


 

“화가가 자신의 색체와 빛을 담아내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이 그린 것들을 다른 사람들이 보고 이해하도록 바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색체가 아닌 빛에 의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라울 뒤피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그에게 ‘빛 표현’이란 얼마나 중요한 포인트였는지 알 수 있는 구절일진데, 그가 작품 속에서 빛의 양에 따라 변화하는 풍경을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Part 2. 야수파 뒤피


 

트루빌의 백보들.jpg

 

 

앙리 마티스의 영향으로 뒤피는 새로운 회화의 역학 속에 빠져들게 되는데, 바로 야수파 화풍이다. 그는 색체 실험에 매진하여 강렬한 색체를 찾기 시작했고, 붓터치 또한 훨씬 넓고 과감해지기 시작했다. [트루빌의 백보들]이라는 작품을 보면, 이전에 보았던 [생트-아드레스의 잔교]와 분명한 차이점을 몇 가지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전의 흐르는듯한 곡선을 주로 이용하던 때와 달리 형체의 윤곽선이 분명해졌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한 덩어리로 표현되기 보다 뚜렷한 개개인으로서 형체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전의 파스텔 색감 보다는 강렬한 원색의 조화가 돋보인다. 형광빛 노란색 옷을 입은 행인하며, 배경이 되는 집들의 빨간 색이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Part 3. 입체파 시기


 

에스타크의나무들.jpg

 

 

라울 뒤피의 입체파 화풍은 굉장히 독특했는데, 언뜻 처음 봐서는 대상의 형체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간결한 표현법을 이용하였다. [에스타크의 나무들]이라는 해당 작품의 제목을 접하기 전까지 나는 이 그림이 표현하고 있는 것이 나뭇잎이라고 눈치채지 못했던 것 같다. 


제목을 알고 보니 잎사귀를 현미경으로 확대한 듯한 형체를 인식할 수 있었고, 그제서야 잎사귀의 디테일한 잎맥 표현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색체 또한 야수파 시기와 달리 오렌지와 갈색 빛이 주를 이루며 현저히 달라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에스타크의 아치]라는 작품에서는 원만한 곡선 표현이 잘 이루어져 있다. 창문의 아치 모양, 건물의 곡선적 형태, 나뭇잎의 둥근 쉐입까지 곡선을 이루며 형태적 안정감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입체파 시기 뒤피가 추구했던 장식적 효과를 느껴볼 수 있었다. 


그는 “예술 작품의 구성은 필요한 논리 정연함에 대한 열망과 예술가에게 잠재된 무질서적 혼란에 대한 이끌림의 투쟁으로부터 탄생한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렇듯 여러 미술사적 시기를 걸치며 다양한 표현적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뒤피의 도전 정신과 유연적 사고를 확인할 수 있었기에 이러한 전시 구성이 상당히 의미 있게 다가왔던 것 같다.

 

 

 

Part 4 대중예술, 패션, 장식 예술 장르를 가리지 않는 그의 도전


 

뒤피는 시기를 넘나드는 화풍 뿐 아니라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도전 의식으로도 주목할만 한데, 그 첫번째 시도는 일명 엘리트 예술과 같이 소양을 갖춘 이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예술 뿐 아니라 순수한 애국심을 담은 선전용 그림 작업을 포함한 대중 예술에도 관심을 보였다는 점으로 볼 수 있다. 

 

 

세계대전종전.jpg

 

 

[제 1차 세계대전 종전에 대한 습작]이라는 해당 작품은 마치 신문 잡지에 실제로 실릴 법한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정치에 다소 무지한 나에게 당시 사회적 배경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지만, 정 가운데 위치한 닭의 형상을 국기 문양으로 채색하고 그 아래 검은 칠면조로 보이는 새가 깔려있는 모습을 통해 최대한 직관적인 표현을 통해 애국에 대한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암사슴새나비.jpg

 

 

뒤피는 또한 패션과 섬유 분야 전문가들로부터 수많은 러브콜을 받았을 만큼 도화지 뿐 아니라 직물, 옷감 등 다양한 팔레트에 경쾌한 표현을 수놓기를 즐겼는데, [암사슴과 새 그리고 나비]라는 제목의 해당 작품을 보면 그의 표현 세계가 얼마나 넓고 한계가 없는지 알 수 있다. 


해당 작품은 옆의 액자와 비교해보아도 확연히 차이가 날만큼 엄청난 규모의 카펫 제질에 표현되었는데, 카펫의 황토빛 색감과 직물 위로 표현된 나무, 사슴, 나비의 색 조합이 상당히 조화롭다. 각 대상들의 위치와 구도 또한 사슴-나비-새 순으로 안정적으로 배치되며 시각적 안정감을 주고 있다. 

 

 

조개껍대기.jpg

 

 

뒤피는 장식 예술에도 조예가 깊었는데, 그는 이를 통해 예술을 서열화 하던 당시 관행을 무시하고 다양한 장르에 거리낌없이 도전하던 뒤피다운 시도를 이어갔다. 해당 작품은 [조개 껍대기를 든 목욕하는 여인]이라는 제목을 지니고 있는데, 마치 화장실 타일을 이어 붙인 듯한 형태로, 각각의 타일에 유약을 바르고 가느다란 흰 선으로 형체를 그려냈다. 


그렇게 구현된 이미지는 마치 인어공주를 연상케 할만큼 오묘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데 흔하지 않은 타일 배경이 주는 차가운 느낌이 마치 여인이 살고 있는 바다의 느낌을 한 층 살려주면서 작품의 분위기가 더욱 살아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컬처리스트 명함.jpg

 

 

[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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