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에 관한 세상의 모든 썰, 도서 '예썰의 전당'

글 입력 2023.06.0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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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올해에 이르기까지 1년 넘도록 꾸준히 이어지는 교양방송 하나가 굉장히 인상적이다. 하나의 예술 작품을 두고 이를 예술가 개인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시작함과 동시에 역사적으로, 미학적으로 나아가 과학과 심리, 경제 등 다양한 시각으로 작품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감상법을 시청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알려주려는 방송이 생긴 것이었다. 공영방송 KBS1에서 편성되어 매주 토요일 밤에 방송되는 '예썰의 전당'이 바로 그 프로그램이다.


소위 말하는 '썰을 푼다'는 속어를 그대로 프로그램 제목으로 가져와서 예술에 대한 썰을 풀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 방송은 미술사학자 양정무 교수, 정치학자 김지윤 박사, 피아니스트 조은아 교수, 역사학자 심용환 교수와 더불어 방송에 능한 김구라와 문명특급의 재재까지 포괄하여 예술 작품에 대한 입체적인 접근을 보여주면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예썰의 전당은 KBS의 상반기 방송개편을 거치면서 종영이 될 예정이다.


하지만 예썰의 전당을 즐겨보았던 사람들을 위한 희소식이 있다. 바로 예썰의 전당이 책으로 엮여 나왔다는 소식이다. 보다 정확히는, '예썰의 전당: 서양미술 편'으로 나왔다. 프로그램에서 다뤘던 작품 중 특별히 시청자들의 호응이 컸던 서양미술 작품들을 다시금 다루는 책이다. 그래서 예썰의 전당 종영을 앞둔 이 시점에 나온 책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 책 소개 >


수백 년 전,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그려진 그림, 지어진 음악, 세워진 건축물 앞에서 알 수 없는 감동과 벅차오름을 느끼는 이유는 뭘까? 예술 작품에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전해지는 작가의 생애와 시대가 깃들어 있기 때문 아닐까?

KBS 화제의 교양 프로그램 [예썰의 전당]은 미술사학자 양정무 교수, 정치학자 김지윤 박사, 피아니스트 조은아 교수, 역사학자 심용환 교수와 함께 미술, 음악, 문학, 건축 등 다양한 예술 작품을 각각의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흥미롭고 입체적으로 풀어내 큰 사랑을 받았다.

 

이 책은 [예썰의 전당]에서 소개된 여러 예술 작품 중 시청자들로부터 가장 큰 호응을 얻었던 서양미술을 주제로 엮었으며,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부터 20세기 파블로 피카소까지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17인과 그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시대순으로 전개되는 작가와 그들의 뒷이야기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곁들여져 흥미롭게 읽히면서도 예술과 시대의 흐름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또한 각 장의 끝에 작가가 건네는 한 문장은 때로는 생각할 거리를, 때로는 위로를 주어 처음 서양미술을 접하는 독자들은 물론 평소 서양미술에 관심 있던 독자 모두에게 신선하고 따뜻하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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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썰의 전당: 서양미술 편'에는 대중들이 익히 알 법한 화가인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루벤스 등이 있는 반면에 그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작가들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알브레히트 뒤러도 그런 작가 중 한 명이다. 뒤러의 이름을 알고 있고, 독일 출신이지만 북유럽 르네상스의 주역이었던 점도 알고 있고 그의 작품 중에선 판화 작품들을 봤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뒤러에 대해 나만의 인상을 가지기에는, 내가 알고 있는 알브레히트 뒤러는 굉장히 단편적인 편린들 뿐이었다.


그런데 '예썰의 전당'에서 본 뒤러는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그의 자화상 중 <모피코트를 입은 자화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상당히 흡사하다. 인본주의의 시대가 열린 시점에서 모두가 인간이라는 보편적인 대상에 대해 골몰할 때에 뒤러는 그 인간 중에서도 특별히 자기 자신에게 집중했던 것이다. 자아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을 당시에, 스스로를 끊임없이 탐구하고자 했던 뒤러의 자세는 굉장히 선구적이다.


뒤러처럼 스스로의 정체성을 탐구했던 음악가 중에는 슈만이 있다. 슈만의 다윗동맹무곡은 자신의 상이한 정체성을 두 명의 인물로 형상화하여 음악적으로 풀어냈다. 또한 미술 분야에선 반 고흐와 프리다 칼로도 뺴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자화상 역시 스스로의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자기 자신을 파고들었다. 이렇게 뒤러의 작품을, 자아를 탐구했던 다른 예술가들과 동일한 선상에서 놓고 보니 그의 작품을 더욱 알고 싶어졌다. 뒤러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정체화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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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본 윌리엄 호가스는 나에게 이름부터가 생소한 화가다. 그런데 '예썰의 전당'에선 그가 18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화가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그런 화가를 미처 몰랐어서 다소 머쓱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이라도 알아가는 것이니까, 그가 어떤 화가인지를 자세히 보고자 했다. 왜냐하면 그를 소개하는 챕터명이 '풍요의 시대, 발칙한 시선'이어서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윌리엄 호가스는 사회풍조를 비판하는 그림을 그리는 데에 거침이 없었던 듯하다. 결혼이 그저 신분상승의 도구 또는 부의 증식으로 쓰일 뿐 가정을 꾸린다는 의식 없이 그저 사치와 향락에 빠져 살았던 당대의 사람들을 비판하기 위해 <결혼 세태> 연작 시리즈까지 그릴 정도면 그는 하고 싶었던 말이 분명히 많았던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주식으로 하는 투기에 빠졌던 당대 사람들을 비판하는 <남해안 계획>도 기획했다. 그야말로 투기심에 불탔던 당대의 사람들 중에는 투기에 성공했던 헨델도 있고, 대차게 실패했던 뉴턴도 있다. 그 모든 것들을 두 눈으로 보고 직접 경험하면서 비판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붓을 들었던 호가스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시대상을 고발하는 건 주로 글을 통해 이뤄져왔지 않은가. 그러나 윌리엄 호가스는 자신의 분야인 미술에서 마치 사회에 대한 감찰자와 같은 역할을 했다. 그 누구도 그에게 요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자신의 뜻으로 이렇게 시대의 거울 역할을 한 그를 나는 앞으로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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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해 장 프랑수아 밀레는 아주 익숙한 화가다. <만종>, <이삭줍기>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그는 평범하디 평범한 농민들을 화폭에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용기가 있었던 예술가였다. 당대에 농민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그림 속에 등장한다 하더라도 배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수준으로 그려졌지 주인공으로 그려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혁명이 있은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시기에 이런 작품활동을 했던 것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모든 노동을 귀히 여기는 신념이 있지 않았다면 쉽게 할 수 없었을 행동이기도 하다.


밀레의 작품들을 보다가, 특히 <첫걸음>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졌다. 하루종일 고생하고 귀가한 아빠에게, 아기가 가려고 아장아장 발걸음을 떼려고 하는 모습이 담겨있는 이 작품에서 느껴지는 그 일상의 소중함, 작지만 가장 선명한 행복이 가슴을 가득 채우는 기분이 들었다. 모든 노동이 숭고하고, 하루를 끝마치는 그 순간에 함께 할 수 있는 소중한 가족의 존재는 참으로 귀하고, 그 모든 것을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삶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이 작품 하나로, 밀레가 지친 내 삶을 응원해주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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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소개되었던 여러 작가들 중에서 클림트를 꼽고 싶다. 클림트에 대해서는 <유디트>나 <키스> 같이 금박을 사용해 화려하게 아름다운 작품들이 아무래도 유명할 것이다. 나 역시도 그런 작품들로 클림트를 쉽게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클림트는 <의학>이나 <법학>을 그리면서 당대에 엄청난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학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듯한 작품으로 인해 학계의 반발을 샀던 것이다. 도상학적인 의미를 잘 모른다 하더라도, 예컨대 <의학>을 본다면 적어도 이것이 의학에 좋은 인상을 가지고 그린 작품은 아닌 것 같다는 인상을 대번에 받을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클림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길을 걸어나간다. 설령 예술계에 입문하던 시기에는 기성세대와 권력계층의 구색에 맞는 작품을 생산했다 할 지라도 그는 점차 분리주의 화가로 활동하면서 예술에 자유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랬기에 견고한 기득권층의 비판이 쏟아질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시각대로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그렇게 격렬한 비판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이어나가던 클림트는 이탈리아로 여행을 다녀온 뒤 <키스>를 발표하면서 모두에게 인정받는 작가로 우뚝 섰다.


The best is yet to come이라 했던가. 클림트는 마치 자신의 삶을 통해 이를 증명해나간 것 같았다. 자신이 믿는 바를 온전히 추구하고 흔들리지 않으면서, 하지만 결코 안주하지 않으면서 그 길을 올곧게 걸어나갔기에 비로소 그는 모든 비판을 뒤엎고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저 아름답기만 했던 그의 작품 <키스>가 그런 가시밭길 위에 탄생했다는 걸 시간 순대로 알고 나니까 클림트의 삶으로부터 뭔가 용기를 나눠받는 기분이 들었다. 내 인생의 소중한 순간도 그렇게 다가오고 있으리라는 믿음을 마음 속 한 켠에 간직하게 되어서, 언젠가 내가 삶에 지치는 순간이 왔을 때 클림트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다시금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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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관한 세상의 모든 썰을 담겠다는 부제처럼, '예썰의 전당: 서양미술 편'은 예술가 한 명을 다루면서도 그의 일생이나 시대상에만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예술가와 작품들을 넘나들며 이들을 더욱 풍성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안배하고 있다. 올 상반기를 기점으로 예썰의 전당이 종영되는 것이 너무 아쉬울 정도였다. 이만큼 예술을 풍성하게 감상할 수 있는 기회는 대중들에게 생각보다 흔치 않기에 추후에라도 재편성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 예썰의 전당 도서도 시리즈로 계속 나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신기하게도 예술 관련한 책들을 정말 여러 권을 읽었는데도, 항상 예술 관련한 책들은 새롭게 와닿는다. 똑같은 예술가에 대해 다루더라도 작가마다 그 사람에 대해 집중하는 포인트가 다르기도 하고, 또 익숙하지 않은 예술가를 새롭게 접하게 되기도 하기 때문에 예술 관련 도서들을 계속적으로 읽어도 늘 즐겁고 신선하게 감상할 수 있는 듯하다. '예썰의 전당: 서양미술 편' 역시 익숙함 속의 새로움, 그리고 새로움 가운데의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는 책이었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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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이혜린
    • 너무나 공감하는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이렇게 종방이라니 정말 아쉽기 짝이없네요... 추후에 다시 꼭 재편되어 예술의 향기를 온전히 맘껏 향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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