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비로소 에티엔의 자비 속에서 잠든 그를 기리며 - 도서 '코코 샤넬'

글 입력 2023.04.29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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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 샤넬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디자이너? 사업가? 예술가? 고독한 인간?

 

나는 한동안이 긴 평전을 덮으면서 이 질문 앞에서 서성거렸다. 누군가에게 그녀는 자신의 삶의 철학을 녹여낸, 삶의 끝까지 일을 멈추지 않은 디자이너였을 것이다. 자신의 영리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적극 활용하여 눈부신 성공을 얻은 사업가, 수많은 예술가와 교류하면서 자신의 상품을 작품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예술가일 수도 있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고독하게 태어나서 고독하게 삶을 마무리한 인간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오늘 리뷰할 도서, <코코 샤넬>은 샤넬의 수많은 모습을 충실하게 다루지만, 그 시작과 끝에는 외로운 인간 샤넬을 비춘다. 거의 강박적으로 느껴지는 조사연구를 통해 옮겨낸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샤넬의 삶을 별다른 꾸밈없이 담담하게 그려낸다. 코코샤넬의 어린 시절 환상, 친구들에 대한 평가 중 어디까지가 현실적인 자료에 기반을 두었는지는 의문스러울 수 있겠지만, 책은 그것이 무엇이었건 인간 샤넬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내는 데 충실하다. 사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무엇이 사실인지가 그리 중요한가? 누군가를 회고할 때 판타지는 오히려 더 진실에 가깝게 만든다.

 

코코샤넬의 표지는 샤넬의 트레이드 마크인 목걸이가 그려져 있다. 실로 그녀를 대표하지만, 대표하지 못하는 상징이다. 우리는 샤넬을 화려한 상품으로서 기억한다. 그녀는 혁신적인 여성 디자이너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오늘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그녀를 둘러싼 것들이 화려하기에 사람들은 그녀의 결과물과 결과물의 가치에 열광한다. 그녀의 디자인에서 돋보이는 절제미는 오히려 그래서 가치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표지에 그려진 화려한 목걸이에 집착하느라 그것을 걸고 있는 사람을 잊어버리는 것처럼, 샤넬은 결코 그러한 방식으로 회고될 수 없는 인물이다. 목걸이를 통해서만 그녀의 윤곽을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그녀의 삶은 마치 좋은 시간의 망령들이 떠다니는 것 같다. 그녀는 끝없이 일함으로써 부와 명예를 얻었지만, 그녀가 가장 가지길 원했던 소속감만큼은 끝까지 얻지 못했다. 우리는 이 평전을 통해 더듬거리듯 그녀의 윤곽을 발견한다.

 

그렇다 한들, 그녀의 삶을 단순히 고독한 삶으로 정리하는 것은 너무나 피상적일 뿐만 아니라 모욕적이다. 그녀는 자기 삶 전체에서 고독과 절망에 대항해 끝없이 저항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만들어낸 업적은 고독을 통해서만 완성될 수 있었다. 결핍과 고독은 언제나 한 인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문이 되고, 그 점에서 샤넬은 평생 가능성의 세계를 여행한 사람이었다.

 

말년까지 작품을 손질했던 그녀의 모습에서 수녀를 발견한 저자의 서술은 아주 적절하다. 과연 내가 그리는 샤넬 역시 그렇다. 수도원의 버려진 딸은 아름다운 문양으로 겹쳐있는 이름을 계시처럼 받아들이고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그 모든 노력에도 가장 채우길 바랐던 마음의 빈방을 채울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끊임없이 작품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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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코코샤넬의 삶은 그 업적과 유명세로도 지울 수 없는 씁쓸함이 있다. 그러한 고독과 고통이 그의 삶을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되었지만, 스스로 삶을 실패라고 회고한 이의 삶을 감히 아름다웠다고만 말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내가 그녀의 삶을 단순히 고통스러웠다고 이야기하는 것만큼이나 모욕적이다. 나의 감상을 공유하기 위해 이 긴 평전에서 드러난 코코샤넬의 삶을 짧게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코코 샤넬은 프랑스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상인이자 난봉꾼이었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와 밀월을 나누다가 임신한 몸이었다. 아버지는 임신한 어머니로부터 도망 다녔지만, 어머니의 가족에 의해 반강제로 혼인하게 된다. 하지만 이후로도 아버지는 그 기질을 버리지 못한다. 어머니는 한평생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했으나, 제대로된 보상을 받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떠돌아다니는 남편을 쫓아 고된 노동을 하는 삶을 살다가 남편의 온전한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병사하고 만다. 하지만 샤넬의 아버지는 남겨진 자식을 잘 돌볼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수도원에 자식들을 버리고 떠났다. 샤넬은 수도원에서 고독한 생활을 보낸다. 샤넬은 이 시기 버려진 아이들과 버려지지 않은 아이들의 옷이 다른 것을 경험하고, 수도원 특유의 정갈한 이미지를 접하며 산다. 이 시기 어린 샤넬은 수도원의 설립자인 평온하게 잠든 에티엔의 석상을 인상 깊게 기억한다.

 

재봉술을 활용한 가게점원으로 일하다 샤넬은 자신의 독특한 매력을 활용하여 캬바레 가수로 활동한다. 그러던 중 부유한 남자들의 후원을 받아 무위도식하는 삶을 보내게 된다. 평생을 노동하며 살아온 샤넬에게 이 시절은 많은 고통을 수반한 시절이었다. 그녀는 이곳에서 '고급창녀'가 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한다. 이때 샤넬은 남성복을 맞춰 입으면서 승마를 배우거나, 너무 화려하지 않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모자를 디자인하기 시작한다.

 

모자 디자인으로 시작한 의류 사업은 날이 가면 갈수록 더 많은 인기를 끌게 되었고, 샤넬은 부유한 후원자의 후원 아래에 자신의 사업을 넓혀나간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보이카펠을 만나게 되는데, 그는 지적이고 부유할 뿐만 아니라 샤넬의 가능성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남자였다. 샤넬은 보이 카펠에게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의지하면서 사업을 키워나간다. 후에 샤넬은 카펠에게 모든 돈을 갚아주면서 자신이 더는 후원을 받는 여자가 아님을 증명한다.

 

이후로 샤넬은 당시 명사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넓혀간다. 소위 말하는 인플루앤서에게 자신의 작품들을 쥐여주고, 절제되고 우아한 샤넬의 디자인이 큰 유행의 흐름에 탑승하면서 샤넬의 사업은 몸집을 불려 갔다. 샤넬은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끝없는 협업을 통해 자신의 '상품'들을 '작품'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업적 성공과 달리 개인적인 애정전선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가 사랑해 마다하지 않는 보이 카펠이 다른 여인과의 결혼을 결심한 것이었다. 샤넬은 부유했지만, 귀족 가문의 여성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높은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고자 하는 보이카펠의 야망에 어울리는 신부가 아니었다. 샤넬은 카펠의 선택에 크게 낙심했지만, 그와의 관계를 유지한다. 카펠 역시 지루한 자신의 아내와 다른 샤넬과 지속해서 만났다. 하지만 이 삐걱거리는 관계도 결국 파국을 맞이한다. 카펠이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샤넬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카펠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잠재울 수 없었다. 샤넬의 유명한 검은 드레스의 기원이 카펠의 죽음이라는 이야기도 돌았다.

 

이후 샤넬은 여러 남성을 만났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결혼에 대해 생각하게 된 연인은 잡지 출판업자 이리브였다. 그는 종잡을 수 없고 제멋대로인 남자였지만 샤넬은 그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받아주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약혼하고 영원히 함께 하겠다고 맹세했을 때, 이리브는 테니스 코트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이후로 샤넬은 자신이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사실, 진정으로 사랑한 남자들이 그녀를 떠났다는 사실을 가슴에 깊게 파묻고 일에 열중하면서 살았다.

 

어느 일요일, 샤넬은 82세 나이에 봄 패션쇼에서 컬렉션을 작업하던 중 사망한다. 그녀가 사망했을 때 그녀의 친구들이 먼저 떠나가 있던 상태였다. 샤넬은 사교계의 여왕이었고,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그녀 옆을 지켜줄 사람이 없는 빈방의 밤에서 그녀는 몽유병을 앓았을 뿐만 아니라 잠들기 위해 모르핀을 맞았다. 휴식을 싫어한 그녀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가장 싫어한 일요일이었다. 언제나 고독을 일로 해결했던 그녀의 삶을 돌아볼 때, 이러한 사실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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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직업적 성취와 부유한 삶. 나는 독자로서 샤넬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현대인들이 모두 동경하는 삶과 그 이면을 보았다. 샤넬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평가하는 것은 나의 몫이 아니지만, 그러한 삶을 바라보는 나의 감상은 나의 몫이다. 책을 읽는 내내 인간의 안에 있는 가장 깊은 욕구와 현실이 만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생각했다. 돈과 명예가 삶의 가치를 향상해주지 않는 지지부진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부터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샤넬은 단 한 번도 어딘가 온전히 담길 수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단 한번도 완전히 결합한 적 없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아이들을 온전히 돌보지 못했다. 그녀가 유일하게 의지하던 어머니는 아버지를 그리다 죽고, 아버지는 남겨진 그녀를 버리고 떠났다. 그 사건들 속에서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어린 샤넬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상상하기 힘들다. 성장한 이후로도 그녀는 고독한 삶을 살았다. 자유를 원하는 마음과 살아남기 위한 수단 사이에서 그녀의 삶은 혼란스러웠다. 남성적 구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샤넬의 디자인과, 남성의 후원을 받아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젊은 샤넬의 이야기 속에는 어떤 모순이나 혼란이 있다. 아마 그것들은 그 안에서 더 휘몰아치고 있었으리라.

 

그녀가 사랑한 남자들은 그녀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남자가 아니었다. 그녀가 삶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주고받았던 남자들은 야망이 너무 커서 그녀를 선택할 수 없거나, 그녀에게 무관심하거나, 다루기 힘든 존재였다. 마치 그녀의 어머니처럼, 그녀는 사랑을 갈구했지만, 온전히 돌려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한 비극을 등지고 휴일을 거부하면서 일했던 샤넬의 삶은 단순히 유명한 디자이너 이상의 매력이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나에게 샤넬은 어떤 방식으로 기억될 것인가. 그는 어떤 키워드보단 하나의 이미지로 남을 것 같다. 자신이 거부했던 휴식을 비로소 죽은 뒤에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치열하고 혼란스러운 삶을 떠나, 그는 인제야 어린 시절에 보았던 에티엔 사제처럼 자비로운 잠에 빠질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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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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