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너는 죄가 있어야만 해 [영화]

연대와 죄의식이 만들어낸 희생양 - 「죄 많은 소녀」를 보고
글 입력 2023.04.14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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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상황 속에서 결백을 입증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대다수 사람에게 ‘나의’ 잘못이라는 인식이 한번 심어지게 되면, 의심할 여지 없는 명백한 증거만이 그 의심을 겨우 반대로 돌릴 수 있다. 그러나 근거를 찾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며, 설령 발견했다고 해도 이미 정한 마음을 다시 바꾸게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2017년 개봉한 영화 「죄 많은 소녀」는 이와 같은 사실을 적시한다. 무고한 사람이 혐의를 받게 되는 과정부터, 그로부터 개개인의 불신이 모여 형성된 군중의 의심이 한 사람에게 가하는 폭력을 날카롭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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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겨눈 사람들만 있을 뿐



본작의 주인공 ‘영희’는 친구인 ‘경민’이 실종되자, 전날 마지막까지 같이 있었다는 이유로 인해 용의자로 지목된다. 주변은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들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경민의 엄마, 같은 반 친구들, 사건 담당 형사와 담임 선생님까지 영희를 가해자로 바라보기만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영희는 자신의 무죄를 밝혀야만 한다.


하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증명은 쉽지 않다. 모두가 귀를 닫은 채 각자의 시각으로 영희를 멸시하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자신의 반 아이들에게 영희의 사물함과 책상 안에서 경민의 유서를 찾게 시키고, 학급 친구들은 영희에게 집단으로 폭력을 행사하며, 경민에게 “내가 좋으면 목숨도 걸 수 있겠네.”라며 별생각 없이 한마디 던졌던 것으로 문제 삼아 혐의를 씌울 합당한 사유를 찾는 형사들까지.

 

영희의 편에 선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절벽 아래로 추락하기만을 바라는 것처럼, 모두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영희에게 칼을 겨누고 있다.

 


[크기변환]유서찾기.jpg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던 중 경민의 시체가 발견되고, 장례를 치른다. 그리고 영희는 지속적인 의심과 스트레스로 인해 한계에 다다른 상태에서 짧은 유서를 교복 주머니 안에 넣은 채, 표백제를 마셔 자살을 시도한다.

 

 

 

흉터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후 흐름은 다소 아이러니하게 흘러간다. 바로 영희의 자살소동을 알게 된 모두가 영희의 편을 들어주기로 한 것. 약속한 듯 각기 다른 방식으로 ‘죄 많았던 소녀’ 영희를 도와준다.


그리고 영희는 경민의 유서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경민의 유서 속에는 무엇 때문에 죽음을 택했는지는 알 수 없으며, 그저 친구들의 이름을 언급하고, 그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적혀있었다. 그리고 언급한 친구 중 영희의 이름도 적혀있었다는 사실로 그의 결백이 입증된다.

 


[크기변환]담임.jpg

 

 

그러나 칼로 후벼판 상처는 아물어도 흉 지기 마련이다. 폐허가 된 지 오래인 정신 속 이러한 모든 행동은 그저 무의미하고 가소롭게 여겨질 뿐이다. 무고했던 사람에게 압박을 가한 자신들의 과오를 탈피하려는 마음에서부터 그를 도와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극 중 군중의 이러한 속내는 담임 선생님의 대사로 얼핏 알 수 있다.

 

 

사람이 누구나 살면서 잘못을 저지를 수가 있어. 

응,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

우리는 또 잘 살아가야만 해.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될까?

얼른 잊어버려야 돼.

이럴 때는 좀 뻔뻔해질 필요도 있어.

 


동시에 러닝타임 내내 그 흉터를 째려고 하는 경민 엄마의 행동도 주목된다. 그는 계속해서 다방면으로 영희에게 경민의 죽음에 대한 죄의식을 심으려고 한다.


 

뭐가 해결됐는데요?

무슨 결론이 났는데요?

쟤 저렇게 입 다물고 있는데.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너희들도 빚이 있잖아.

넌 경민이 도움으로 살아난 거야.

고마워해야지.

 


경민의 보험금으로 영희의 수술비를 수납하고, 입원 중인 영희를 찾아가 경민의 옷을 가져다주며 경민을 절대 잊지 말라 하고, 경민의 이름으로 영희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려 하는 등의 행동으로. 부정할 수 없는 근거까지 나온 상황에서도, 끝까지 영희를 의심하고 죄 많은 소녀로 만들려고 한다.

 

 

 

죄가 많아야만 했던 소녀



다들 경민을 ‘누가’ 죽게 했는지 그 책임에 대해서만 주목하며, 그 잘못에 대한 제물의 역할을 할 누군가를 찾아 나선다. 애초에 경민이 왜 죽음을 선택하기로 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인 것처럼 말이다.


그 이유는 편의를 위해서. 희생양이 생기면 모든 일이 편해지니까. 그 누군가를 당당하게 욕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고, 이를 징벌하기 위한 행동을 실행함으로써 자신에게 드리워진 죄책감을 말끔히 벗어던질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인물이 바로 영희가 된 것이다. 영화에서는 군중의 단합력으로 희생양을 만들어 매도하는 것에 끝내 성공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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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죄가 많아야 했던 소녀 영희는 결국 이러한 군중 심리에 그 나름의 방식으로 부응하려고 결심한다. 죄 많은 소녀로 기억되어야만 했던 영희는 그 강요에 보답하려는 듯이 평소에 생각해 두고 있던 죽음을 실행에 옮기기로 한다. 살아갈 의지가 뿌리뽑혀진 그에게는 죽음에 이르는 것만이 유일한 해방이 되어버린 셈이다. 이는 수술 후 학급 친구들에게 수화로 전달하는 장면으로 알 수 있는데, 이는 동시에 영화의 주제 의식을 여실히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여러분이 기다리던 나의 죽음을 완성하러 왔습니다. 

여러분 앞에서 가장 멋지게 죽고 싶습니다.

 

 

 

과연 나는 아무 잘못도 없을까



「죄 많은 소녀」는 군중이 죄의식과 연대감을 가지게 될 때, 어떤 행동 양상을 보이는지에 대해 피해자 영희의 관점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과감하고도 어찌 보면 자극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연출과 시나리오를 통해, 관객들은 이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말로 형용할 수는 없어도, 확실히 체감할 수는 있게 만든다.


영화가 주는 주제 의식은 다양한 편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앞서 말했던 군중심리, 죄의식, 연대책임 외에도 청소년들의 심리묘사와 미성년에게 가하는 어른들의 이기심, 동급생들의 잔혹함과 또 다른 누군가에게 덮어씌우고 발뺌함으로써 자신들의 잘못에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책임 전가의 모습 등등.


영화를 통해 자기 생각과 행동에 대한 타당함, 그리고 그 결론이 도출되기까지의 객관성과 편협함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군중 심리는 강한 연대 의식으로 대담하게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타인과의 원활한 소통과 사고의 합당성을 소거하며 잔혹함을 도출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게 한 작품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계속해서 사고하며 소통해야 한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진정으로 진실된 것인가. 그러한 상황에서 도출된 결론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대중으로서 행동했을 때 나의 책임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최소한의 경고 의식. 그러한 경각심을 잊지 않고 상기시키며 살아가야 한다.


정의 구현에 심취한 나를 만들지 않도록. 그리고 또 다른 영희를 탄생시키지 않기 위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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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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