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21쌍의 맨눈으로 보는 미술작품 - 도서 '내가 읽는 그림'

글 입력 2023.04.09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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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들은 같은 걸 보고도 다르게 해석한다.


 

목수가 "연장"이라고 외치면, 조수가 연장을 가져오는 것처럼, 우리는 눈치를 보는 일명 '언어게임'을 통해 서로의 기호와 의미를 맞춘다. 때로는 그 과정을 통해 서로가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곰곰이 생각해서 따져보면 우리는 단 한 번도 같은 것을 본 적이 없다. 우리가 모두 이런 현실을 알고 있지만, 삶의 수많은 순간 속에서 그것들을 인지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기도 하고, 그것이야말로 마음의 감옥에 갇히는 일이다.

 

아무튼 그래서 우리는 현실에서 서로가 가지고 있는 미세한 맥락의 의미를 일치시키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거의 밟지 않는다. 하지만 삶에서 단 한 번쯤은 서로가 사용하는 언어가 비로소 맞닿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것이 꼭 같은 기호를 사용해서는 아니다. 어떤 의식적인 노력 없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그 순간을 나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그런 통합감을 느끼는 순간은 아니지만, 서로의 언어를 확인할 좋은 기회가 있다. 바로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 것이다. 글에는 자주 쓰이는 심상, 단어, 맥락이 있다. 현실의 그것보다는 덜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 사람의 언어로 완성된 글은 가벼운 대화보다 더 많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같은 것을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들의 글은 우리가 하는 이 언어게임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왔는지 알게 한다. 하나의 작품에 대해 입을 여는 순간 나의 언어와 그 사람의 언어가 베일을 벗고 정체를 드러낸다.

 

누군가와 긴밀하게 만나는 자리에 '같은 체험하기'가 종종 포함된 것은, 그것이 서로의 언어를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어떤 것의 감상을 공유한다는 것은 나의 언어 세계 안으로 그 사람의 언어를 들여보내는 것이다. 거기에서 어떤 일치감을 느낄 수 있게 되면, 우리는 그의 언어와 그가 바라본 것을 인지하게 된다.

 

오늘 리뷰할 책, <내가 읽는 그림>은 그런 과정을 방구석에서 할 수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두 가지 관점에서 리뷰하고 싶다. 첫 번째 관점은 이 책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것이고, 두 번째 관점은 BGA의 콘텐츠 사업 중 하나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2. 첫 번째 관점 : 책- 21개의 시선을 쫓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내가 읽는 그림>에는 '나'와 '그림'이 있다. 이 과정에 '너'와 '세상'이 없다는 것이 주목할만하다. 콘텐츠의 생산과 소비가 대중에게 공개된 오늘날엔 좀 덜하긴 하지만,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때로 어떤 구별 짓기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어떤 이론이나 용어가 작품 해석의 자격이 되는 것처럼 남용되면 독자로서는 글을 쓰는 사람과 작품은 더 먼 존재로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들을 이해한다 해도, 자격을 부여받고 지식을 쌓아가는 느낌이지, 그 사람이 바라본 같은 위치에서 바라본다는 느낌은 들지는 않는다. 학술적 용어를 사용한 것들을 모두 구별 짓기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들은 그 글이 유통되는 채널, 수신자와 발신자 간에 흐르는 미묘한 맥락이 결정한다. 하지만 순수한 지식의 생성과 공유를 위해서 쓰였다 하더라도 그것은 지식을 유통하는 것이지 감상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두 과정에는 미묘한 질감 차이가 있다.

 

<내가 읽는 그림>은 후자에 가깝다. 이 책의 글쓴이들은 확실히 자신의 감상을 전하고자 한다. 어떤 뚜렷한 사고와 이론을 통해 그림을 해석하는 대신, 한 사람 한 사람의 맨눈으로 작품을 본다. 독자로서 읽은 이 책은 '평론'보다는 '주저리'에 가깝다. 생각을 정리한 노트의 한쪽처럼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감상을 이야기하는 이 책은, 아주 내밀한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일기와도, 어떤 구체적인 텍스트로 읽힌다는 생각으로 완성된 에세이와도 다르다. 짧게 구성되어있지만 어떤 진정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SNS와도 다르다.

 

좀 정리해서 이야기하자면, 이 책의 저자들은 모두 너무 무겁지 않은 진정성을 한 페이지로 담아낸다. 이 적절한 질과 양의 진정성은 '그들이 읽은 그림'을 좀 더 편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책에서 드러나는 글쓴이들은 메두사처럼 독자들을 노려보지도 않고, 드러난 감성을 숨기지도 않는다. 그래서 좀 더 자연스럽게 저자와 독자는 자신의 언어를 교환할 수 있다.

 

이런 편안한 분위기에서 그림을 다루는 방식은 저자들마다 다르다. 그림의 묘사 여부, 자신의 경험을 결부시키는 방법, 경험의 정서적 질, 글의 구조 등이 모두 다르다. 모든 글이 시작하기전, 책은 모든 저자에게 한 페이지 정도 자신을 설명할 기회를 준다. 이름과 한 줄의 자기소개, 그리고 자신이 그림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아주 짧은 산문을 써놓았다. 독자입장에선 이런 단서들이 글과 엮여 나름대로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가 있다.

 

책은 이처럼 다른 개성과 스타일을 가진 수많은 사람이 한 명당 다섯 작품씩, 각 작품당 반 페이지 가량 쓴 글을 모았다. 21명의 저자는 21개의 섹션으로 느껴지고, 실제로 읽어보면 모두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을 비교하면서 읽는 것은 아주 재미있었지만, 지나치게 파고드는 스타일을 가진 한 명의 독자로서 고백하자면, 책을 읽는 내내 정서적 전환이 쉽지 않았다. 한 사람이 익숙해지면 다른 사람이 바로 밀려들어 오니 뭔가 만남도 이별도 제대로 하지 못한 기분이다. 애당초 21개의 주제는 버거울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각 저자는 가볍게 묵상하듯 글을 쓰지만, 한 번에 책을 읽게 되는 독자 입장에서는 무겁게 느껴졌다.

 

이 책이 가진 수많은 가능성을 잠깐 접어두고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자면, 책의 제목이 다소 독자들의 기대에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있다. '내가 읽는 그림'이라는 제목과 '숨겨진 명화부터 동시대 작품까지 나만의 시선으로 감상하는 법'이라는 표지의 부제목을 보면, 각 저자가 어떤 관점을 설명할 것처럼 보인다. 이 섹션 아래에서 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이 책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콘텐츠의 완성이라기보다 특정 프로젝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에 목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책 소개를 읽고 책 표지를 읽을 때까지, 기대했던 책의 내용이 아니어서 잠시 당황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배우지 않고도 내 감각으로 작품을 즐기는 편안한 미술 감상 수업’이라는 목표 아래에 기획되었다 하니, 좀 더 에세이보다는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론에 관한 이야기가 수록되어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방법론'은 독자들이 이들 글 속에서 스스로 유추하는 것으로 남겨둔다(솔직히 이야기하면, 독자들의 감성과 자유를 존중하며 넘겨주는 이런 방식이 '미술관람'스럽다고 생각한다. 책이라는 매체에서는 상당히 생소하지만 재미있는 접근법이다). 하지만 이런 나의 불일치가 이 책이 가진 매력과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일러둔다.

 

 

 

3. 두 번째 관점 : 프로젝트- 페어링 콘텐츠


 

이 책의 기원이 'BGA 백그라운드 아트웍스'의 콘텐츠 프로그램 중 하나임을 고려하면, 책의 형식을 취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책 <내가 읽는 그림>은 매일 밤 11시마다 BGA에서 발행해온 콘텐츠 중, 121편의 ‘작품 + 에세이’ 페어링 콘텐츠를 엄선하여 수록한 것이다. BGA는 미술 구독 서비스를 지원하여 고정된 시간마다 그림 한편과 에세이를 함께 제공한다. 미술 전공자 외에도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필자로 참여하고 있다.

 

책 <내가 읽는 그림>은 다양한 저자가 그림과 짧은 에세이를 묶은 책이다. 책의 형식은 정확히 BGA의 특성과 정확히 일치하기 하기 때문에, 이 책은 어떤 다른 기획 아래에 만들어진 콘텐츠라기보다는 BGA의 정체성을 적극 드러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구태여 내가 두 번째 관점으로 이 책을 리뷰하려고 한 것은 이 책의 기원이 책 그 자체보다는 BGA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미술 구독 서비스를 만나는 것은 참 새로운 일이다. 비트코인의 열풍으로 NFT 붐이 일어나면서 대중적인 그림 콜렉팅 사업도 탄력을 받았는데, 구독이라는 수익창출 방법을 함께 엮은 BGA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술이 대중적인 옷을 입는다는 것은 반길 일이다. 그리고 그 방법이라는 것이 대중적인 나르시시즘에 기반을 둔 이미지를 틀에 찍어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시선에 초점을 둔다는 점이 더 그렇다. BGA같은 프로젝트가 대중화되어 틀에 갇히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이 기호와 상징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삶은 좀 더 즐겁고 다채로울 것이다.

 

그래서 내게 책은 "이제 더 많은 상징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의 시대가 왔다"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고, 그 점이 참 기쁘고 반가웠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미술은 좀 더 개인적이고 대중적인 옷을 입었다. 새로운 미술의 패션은 이전처럼 무거운 옷은 아니지만, 새로운 언어와 상징과 어떤 교감을 시작할 좋은 기회를 만들어 준다. 그런 시대적 흐름을 느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은 꽤 재밌는 시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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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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