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물 속, 상쾌한 자유로움 [운동]

수영 회귀자의 수영장 접수기
글 입력 2023.04.0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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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늘 우연처럼


  

동생의 수능이 끝났다. 수능이 끝나고 널널한 시간 동안 운동을 하나 해보자는 이야기 나왔다.

 

혼자 하면 재미없다며 은근슬쩍 나를 끼워 넣으려 했다. 나도 운동을 해볼까 생각을 하던 차였지만 겨울이라 너무, 너무 하기 싫었다. 그래서 조금만 따뜻해지면 하자고 꼬드겼다. 동생도 하고 싶은 마음만큼 하기 싫은 마음이 있었던지 내가 쓱 빼자 옳다구나, 따뜻해지면 하자며 패트와 매트 악수를 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겨울방학이 끝나고 졸업까지 해버린 2월의 어느 날. 해가 바뀌어서 그런가? 이제 이십 대 초반이 아니라서 그런가. 몸이 삐걱거렸다. 잔병치레를 달고 살았고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던 컨디션이 예전만큼 회복되지 않는다고 언니와 카톡을 하다가 깨달았다. 오늘이 3월 신규 등록 날이었다는 걸.

 

언니는 당장 뛰어가서 등록하라고 하는데 고민 속에 빠졌다. 아직 날이 추운데,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 거 같은데, 준비할 게 많은 데, 개인 사물함도 신청해야 하는데. 하고 싶지 않은 이유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났지만, 그날은 뭔가 달랐다.

 

홀린 듯 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딱 두 자리 남았단다. 새벽에 가서 기다려도 8시면 마감되던 게 오후가 되었는데도 자리가 남았단다. 갑자기 마감이 생기면 안 나오던 발상이 폭발하는 것처럼 동생을 끌고 센터로 향했다.

 

그렇게 봄과 입학의 계절 3월부터 수영을 시작하게 되었다.

 

 

새벽.jpg

 

 

 

힘차고 굳센 아침…. 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졸업 후 평균 기상 시간 10시에 눈을 뜨던 나는 해뜨기도 전, 6시에 눈을 떴다. 거의 2년 만이었다. 이렇게 수영을 가는 것은. 코로나 초기에 위험하다며 그만뒀으니 말이다.

 

2년 동안 생활방식은 완전히 바뀌어 못 일어 날 줄 알았는데 첫날이라 그런가? 눈이 반짝 떠졌다. 사물함은 아직 배정받지 못해 전날 바리바리 싸둔 샤워용품을 야무지게 챙겨 버스를 타러 나왔다. 해가 떠 있는 오후는 슬슬 따뜻해질 시기지만 새벽의 공기는 여전히 차가웠다.

 

차갑고도 상쾌한 바람을 뚫고 버스를 타러 가면 잠이 깰 법도 한데, 버스가 흔들리면 고개도 흔들흔들, 눈꺼풀도 오르락내리락. 내릴 때가 다 되어 동생이 깨울 때면 후다닥 버스에서 내렸다.

 

2년 만이지만 전혀 달라지지 않은 길을 따라 센터에 도착하며 자신에게 인사를 건넸다. 자 오늘도 힘차고 굳센 하루.

 

 

 

초보들의 라인에 회귀자의 등장이란


  

수영을 그만두기 전, 나는 중급반으로 올라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초급반에서의 하던 것에 배는 힘들어서 항상 따라가기 힘들어했다. 그래서 수영을 갔다 오면 오전 내 자거나, 혼나는 한이 있더라도 꾀병을 부리며 자주 수영을 빼먹곤 했다. 이전에 계시던 강사분들은 한 명도 없이 바뀌어 있어서 더 고민되었다.

 

반 토막 난 폐활량과 반의반으로 줄어버린 체력과 근력, 다 잊어버린 자세와 타이밍으로 도저히 중급반에서 살아남을 수 없겠구나 싶어 초급반부터 차근차근 올라가기로 했다. '처음부터 하나씩 다시 정복해 나가는 거다.'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돌아온 수영장은 내 기억과는 좀 달랐다. 초급반이라면서 다들 접영을 무슨 선수처럼 하고 마무리 운동으로 자유형을 10바퀴씩 돌던 초급(超級)반이 아닌 정말 초급(初級)반이 되어 있었다. 무작정 앞 사람을 따라 하는 식이 아니라 자기만의 진도에 맞게 초급반에서도 나누어서 수업하다 보니 예전에 고되게 돌았던 게 거짓말 같았다.

 

무작정 허겁지겁하기보다는 천천히, 자세를 바로 하는 데 집중했다. 한번 해 본 거라고 몸이 어느 정도 기억하는지 자세를 고쳐 나가자 놀던 근육을 쓰고 체력이 붙는 데까지 한 달. 나는 초급반 짱이 되었다.

 

 

 

눈앞에 물을 가르고 공기 방울을 헤치며 앞으로 나가는 순간은 언제나 즐겁다.


  

코로나 동안에는 거의 운동을 하지 않았다. 밖에서 하기에는 마스크가 갑갑했고 집에서 하기엔 공간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운동의 즐거움을 잊고 살았는데 물속에 들어오자 다시 피어올랐다. 다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예전만큼 앞으로 나가는 속도나 실력이 빠르게 좋아지지는 않지만, 숨을 몰아쉴 정도로 몸을 움직이자 상쾌했다.

 

 

물 속.jpg

 

 

손을 뻗어 물살을 가르고 그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공기 방울들을 벗 삼아 발끝까지 움직인다.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고 오직 내가 움직이는 소리와 물소리만 들리는 아늑하고도 치열한 순간. 숨이 가빠와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티다 크게 내쉬고.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보이는 벽에서 끝내지 않고 빙글빙글 돌아 벽을 뻥 차고 다시 나아갈 때 나는 그 순간이 가장 좋다. 내 앞의 보이지 않는 벽도 다 차고 다시 나아가는 기분이 드니까.

 

새벽같이 나오기 싫어 꾸물거리던 것은 다 잊어버리고 비로소 나는 보람을 느낀다. 나오길 잘했다. 다시 시작하길 잘했다. 이제 초급반이니 배울게 더 많을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 몸을 움직이는 개운함을 즐기기 위해 건강하고 부지런하게 살아가야겠다. 물론 가끔은 쉬면서 말이다.

 

 

[빈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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