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WHAT NOW -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

볼프강 마트호이어, 이젠 어떻게 해야 되나요
글 입력 2023.04.07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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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년 동안 많은 전시회를 보러 다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회는 현재의 고민과 생각과 엇비슷한 작품을 만났을 때다.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이 그랬다.

 

고등학교 친구와 봄 산책하듯 전시회를 걸어 다녔는데, 어느 순간 각자 몰입했던 작품이 달랐다. 이후 각자의 시선과 발걸음에 따라 잠시 떨어져서 전시를 향유했다. 이 친구와 나는 전시회가 끝나면 서로에게 인상 깊었던 작품을 소개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 시간을 가진다.

 

“너는 어떤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았어?

”난 볼프강 마트호이어의 <이젠 어떻게 해야 되나요> 작품이 계속 떠올라“

”왜?“

”지금 내 심정이 딱 이래서 그런가. 나 어떻게 해야 될까라는 생각을 엄청 많이 하거든“

”너 안 그래도 생각 많잖아. 무슨 생각?“

”예전에는 굳이 안 해도 되는 생각을 내가 억지로라도 만들어 냈다면, 지금은 진짜 생각해야 될 거리인데 지금 내 모습을 바꾸고 싶지 않아서 해야 될 생각을 안 하고 있어. 그래서 이런 날 <이젠 어떻게 해야 되나요>처럼 연결 지어서 저 작품에 몰입했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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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강 마트호이어, 이젠 어떻게 해야 되나요

 

 

나는 요새 정말 만족스럽다. 일을 스트레스 없이 재밌게 하고 있고 이 안에서 성취감도 맛본다. 일상이 집, 지하철, 회사가 전부다. 그래서 마음에 든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은 삶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특권이기 때문이다.

 

대학생에서 직장인으로 바뀌면서 생각이 많이 건조해졌다. 언제나 1순위는 사회에서 결과물로 보여줘야 하는 내 일이 먼저니까, 일에만 지장 가지 않는다면 나머지는 그냥 힘을 약간 풀자고 생각했다.

 

얼마 전, 10년 친구가 사라졌다. 지우개처럼 서서히 지워진 게 아니라 원래 없던 사람처럼 사라졌다. 그런데 감정에 별 타격이 없었다. 속으로 ‘어떻게 이럴 수 있지. 10년을 넘게 지켜온 우정이 눈앞에서 사라졌는데 아무런 감정이 안 들다니. 뭘까.’ 충격이었다.

 

관계가 하루아침에 박살 난 것에 충격을 가진 게 아니라 너무도 멀쩡한 나 자신이 충격이었다. 한편으로는 ‘다 그런거지 뭐’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어린애들도 아니고 사람 관계가 한 번 삐뚤어졌다고 낙심하고 이젠 어떻게 해야 되는지 걱정하는 건 시간 낭비라는 감정도 들었다.

 

그래서 <이젠 어떻게 해야 되나요>라는 작품에서 시선이 멈춘 건 이래서다. 예전이라면 스스로를 탓하고, 그게 아니라면 남이라도 탓했던 감정이 있었는데 이젠 정말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는 나를 어떻게 해야 되나요라는 물음에 멍하니 계속 서 있었던 것 같다.

 

감성이 충만했던 내가 사라졌는데 이젠 어떻게 해야 되나요. 무미건조하게 변한 날 어떻게 해야 되나요. 슬픈 걸 봐도 감정을 소비하는 건 현명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날 어떻게 해야 되나요. 10년을 구축한 우정이 눈에 너무도 보일 정도로 멀어졌는데 아무렇지 않은 건 어떻게 해야 되나요. 그런데 이런 내가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는 날 어떻게 해야 되나요.

 

이 작품의 오피니언을 쓰면서 어떻게 해야 되나요라는 내 생각에 결론 지었다.

 

사람 관계는 아무 탈 없어도 시간이 오래 지나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관계가 있다. 이번에 경험했기에 이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예전의 나라면 하루 종일 생각했을 문제를 별일 아닌 것처럼 흘릴 수 있다는 건 다행이었고, 이런 내가 어색했지만 나쁘다고 생각 안 했다. 나도 25년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한테 맞는 삶의 경로를 미리 구축해뒀기 때문에 타격감이 없을 수밖에 없는 거라고 생각하며 이 고민의 매듭을 지었다.

 

이처럼 처음 보는 작품이 고민과 생각을 정리해 줄 때 감사함을 느낀다. 문화생활을 즐기는 동시에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을 경험하고 혼자 소화시킬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어 행복했다.

 

 

[조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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