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류와 과학의 지난한 공존, '미래과거시제'

배명훈의 SF 단편 신작
글 입력 2023.04.06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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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거시제'란 미래를 마치 과거에 경험했듯이 확신하며 말할 때 사용하는 시제를 뜻한다. 이미 사어가 된 선어말어미 ‘-엄-/-암-’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는 표현이라, 일상에서는 사용할 만한 상황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배명훈의 단편소설 『미래과거시제(북하우스, 2023)』' 속 주인공 ‘은경’은 한 언어학 세미나에서 우연히 미래과거시제에 대한 정보를 접한 후, 불현듯 과거의 연인 ‘은신’의 말투를 떠올린다.

 

그녀는 단지 독특한 말버릇으로만 여겼던 그의 말투를 실마리 삼아 가설을 세운다. 어느 날 안개처럼 자취를 감춰버린 옛 연인이 어쩌면 둘의 미래를 이미 경험한 시간여행자였을지 모른다는 추론이다. 그리고는 그가 살아가는 시간과의 교차점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한 연인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는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 '미래과거시제'는 비교적 SF의 색채가 옅은 편이다. 

 

그럼에도 '미래과거시제'를 아홉 편의 이야기를 대표하는 책의 제목으로 앞세운 이유를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책에 실린 모든 이야기들이, 마치 미래과거시제를 사용해 대화하는 은신처럼 상상으로 피워낸 먼 미래를 마치 원거리의 시점처럼 묘사하기 때문은 아닐까. 이는 작가가 미래를 상상하는 과정에서 현재를 고찰하며 입체적인 영감을 얻기 때문에 가능한 기법이다. 


일례로, 펜데믹으로 생겨난 비말감염을 향한 공포는 ‘차카타파의 열망으로’에서 지금으로부터 약 두 세기 후 파열음이 아예 사라져버린 미래가 된다. 코로나로 인해 진행됐던 무관중 경기 역시 ‘홈, 어웨이’에서, 구두점이 찍힐 때마다 녹음된 관중의 함성 소리가 재생되는 소설가 전용 애플리케이션의 탄생 배경을 설명하면서 등장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굵직한 동시대 현상이 아니더라도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 또한 소재의 씨앗이 된다. 작가가 좁은 집에서 살며 짐을 줄여야 했던 불편은, ‘접히는 신들’에서 우주 너머의 존재들이 2차원의 상태로 날아왔다가 목적지에서 3차원으로 접히며 형상을 드러낸다는 가설로 변주된다. 

 

누구든 살면서 한 번쯤은 겪었을 시시콜콜한 경험이 작가의 상상력 안에서는 우주적 스케일로 확장되는 셈이다. 그 창작 비화는 챕터마다 함께 수록된 작가 노트에서 엿볼 수 있는데, 모든 이야기 기저에 우리 현실의 단면들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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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Unsplash, NASA

 

 

이번 신작이 눈길을 사로잡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에서 설명된다. 압축적으로 녹아 있는 섬세한 관찰들 덕에, 작가의 빼어난 참신함이 허무맹랑함 없이 매끄럽게 전달된다. 책에 실린 다섯 번째 이야기인 ‘인류의 대변자’를 살펴보자. 소설의 주인공이자 한국 우주군 소속의 ‘은수’는 서울에 착륙한 신원 불명의 외계인을 접견하러 잠실에 위치한 롯데타워로 향한다. 외계인들이 이곳을 공식적인 항구로 지정한 까닭이다. 외계인과 외계인 사절단, 그리고 한국 우주군. 세 가지 모두 우리의 현실에는 전무한 요소들임에도 작가 특유의 명료하고 집약적인 상황 설명이 모든 것을 납득시킨다.


 

“현실적으로도 한국 우주군은 많은 부분을 연합우주군에 의존했다. (중략) 연합우주군은 케슬러 신드롬을 막기 위한 집단방위체제였다. 우주 전쟁이 일어나고 연쇄 폭발로 인해 위성 궤도 전체가 마하 25의 속도로 떠도는 우주쓰레기들로 가득 차는 사태, 그 일을 막기 위해 선진국들이 조인한 국제 협약의 집행 기구. 한국 정부도 여기에 꽤 큰 액수의 분담금을 내는 대신 우주 관련 기술을 이전받기로 했는데, 그 분담금 관리 기구로 만든 게 한국 우주군이었다.” (pp.172-173 中)

 


국제 정세와 한국 우주과학의 현주소를 둘러싼 현실적인 묘사가 눈에 띈다. 이로써 외계인이 지구인을 공식적으로 만나게 된다는, 도무지 실감나지 않는 미래가 마치 곧 닥쳐올 상황처럼 생생히 그려진다. 공중에 떠 있는 미지의 비행선이 롯데타워 꼭대기에 정박해 있는 모습을 설명하는 부분 역시 마찬가지다. 마치 증강현실 필터로 우리가 보는 실물 세상 위에 정교한 이미지를 덧씌우는 듯하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현실 속의 요소를 활용해 작가의 상상을 독자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옮겨 놓는다.


 

“외계인이 그 건물을 접안 시설로 이용한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그 생각을 할 때마다 은수는 큰 배가 닿는 부두를 떠올리곤 했다. 해안선과 수직 방향으로 쭉 뻗어 나온 접안 시설. 그 옆에 멈춰 서서 손님을 내리고 가는 커다란 유람선. 그 접안 시설을 3차원으로 옮기면 딱 지금 우주선이 정박해 있는 모습이 될 수밖에 없었다. 500미터가 넘는 건물 꼭대기에 외부로 통하는 통로가 만들어져 있을 리 만무했지만 그거야 건물을 아주 조금만 뜯어내면 될 일이었다.” (p.187 中)

 


이야기의 결말에서 은수가 내놓는 요청사항을 살펴보면, 다름아닌 대학수학능력시험 당일인 11월 15일 오전만큼은 영어 듣기평가를 위해 비행선을 운항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이다. 은수는 해외 기자들과 학자들 앞에서 민망함 때문에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한다. 한국 우주군이 수호하려 하는 최우선순위가 지구의 평화 내지는 인류의 안보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기 때문이었을까.


사실 생각해 보면, 수능이란 것이 얼핏 김새는 듯 보여도 한국 사회에 한해서는 참으로 중차대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지금껏 쌓아온 맥락에 따르면 그 또한 우리만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수순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또 한 가지 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우리의 의식구조를 구성하는 사회문화적인 요인들이 쉽게 소멸되지는 않으리라 어렴풋이 예견해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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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에는 ‘미래과거시제’나 ‘인류의 대변자’를 비롯해 아홉 편의 서사가 실렸지만, 각 이야기들은 파편화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느슨하게나마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예를 들어 2차원에서 3차원으로 ‘접히는’ 우주 너머의 존재들은 이야기 두 편에 걸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소재다. 또 ‘하임’, ‘은경’ 등의 인물명 역시 두 차례씩 등장한다. 그래서 책장을 넘기면서 작가가 창조해낸 일관된 세계관을 상상할 수 있다. 바로 우주와 지구의 경계가 흐려지고, 인류가 외계인의 존재를 직시하고, 21세기의 펜데믹이 역사의 변곡점이 되어 아득히 멀어질 그 시점이다.


그러한 미래는 과학적인 방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면 설득력을 갖추기 어렵다. 그러나 작가는 이성적으로 타당한 가설을 구축하면서도, 그로 인해 다소 차가워지기 쉬운 SF 소설의 문체를 섬세하게 다듬는다. 특히나 객관적인 배경 묘사에 융화되는 인물 내면의 묘사가 조화롭다. 또 한글 고유의 문체를 자유자제로 실험하기도 한다. 백미는 로봇 조종사 ‘지하임’의 모험담을 판소리의 형식으로 풀어놓는 ‘임시 조종사’다. 작가의 치밀한 연구의 흔적이 여실히 드러나는 파트다. 


배명훈의 ‘미래과거시제’는 미래와 현재의 간극을 정교하게 메운다. 그 틈에는 공들인 문장으로 담아낸 기발한 영감과 여신한 상상력이 자리한다. 짧은 호흡의 단편소설들로 우리의 의식을 쉴 틈 없이 환기시키고, 그 가운데에서 기술의 파장이 불러올 인류의 미래를 고찰하게 만든다. 결국에는 과학과 인간의 지난한 공존을 끊임없이 궁리하게 한다. 한 문장으로는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로운 즐거움을 선사하는 SF 소설의 정수가 궁금하다면, 바로 이 책을 기꺼이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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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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