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현실의 비현실 노래하기 : 행복회로 부수는 중

글 입력 2023.03.12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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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말’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걸 연상하게 되는가?

 

나노말은 2020년 [행복 회로 돌리는 중]이라는 앨범으로 처음 데뷔한 인디 팝 밴드다. 2인조 밴드였던 그들은 부산 씬에서 주로 활동하다 2022년 한 명을 더 영입하여 인천에 본거지를 두고 홍대 씬에서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독창적인 사운드로 평범하지 않은 팝 음악을 한다고 본인들을 소개하는 팀답게 그들의 음악 세계는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했을 장난스럽고 음울한 입체적 개성을 가졌다.

 

 

아티스트 이미지_나의 노랑말들.jpg


 

나는 그들의 범상치 않은 음악 세계를 접하고 나니 아, not normal(평범하지 않은)이라 나노말인 건가? 했는데, 이전 밴드 이름이었던 ‘나의 노랑말들’을 줄인 것이라고 한다. 우연치 않게 not normal과 발음이 비슷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나의 노랑말들’이라는 전 이름도 사실은 꽤나 특별한 사연이 있다. 멤버들이 같이 작업을 하던 중 한 멤버의 ‘여기 누나 노랫말이…’라는 말을 ‘나의 노랑말들?”이라고 잘못 들은 것이 그대로 밴드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이 기막힌 우연의 스침들을 놓치지 않는 기막힌 밴드, ‘나노말’은 그 이름처럼 흔한 감정들을 특유의 유쾌하고 팝한 감성으로 풀어낸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마음들, 찌질함, 질투, 쾌락주의, 우울 등의 진득하고 부정적인 감정들을 이들은 멋지게 꾸며내는 일 없이 숨기지 않고 표현한다. 심연으로 꺼질 마음들을 끌어다 신나게, 또 노랗게 튀겨진 음악들은 우리의 귓속에서 유쾌하게 터진다.

 

이번 정규 앨범 [행복 회로 부수는 중]은 행복 회로 시리즈의 마지막 단계로, 밴드 이름을 ‘나의 노랑말들’에서 ‘나노말’로 바꾸고 내는 첫 앨범이기도 하다. 행복회로 ‘돌리는 중’, ‘터지는 중’, ‘불타는 중’을 거쳐 ‘부수는’ 단계에 이른 나노말은 그동안 아이덴티티로 가져오던 노란 배경 위에서 주요 오브제였던 사탕을 부수기에 이른다.

 

이는 기존의 아이덴티티보다 확장된 밴드의 색을 보여주겠다는 굳은 포부가 담겼다고 한다.

 

 

행복회로 부수는 중_앨범커버.jpg

 

 

나노말 특유의 팝하고 경쾌한 멜로디는 전 앨범을 관통하는 에너지를 가졌고, 채도가 높은 음악이라고 느꼈다. 멜로디 전개에 따라 여러 형광색들이 번갈아 나오는 느낌이랄까. 우연히 지은 이름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들의 음악은 의도하지 않고도 강한 색채를 띤다.


이는 첫 트랙이자 타이틀곡인 <우주 미아>에서부터 분명하게 나타난다. 아, 음악 감상에 앞서 나는 음악에 대해 아는 바가 전무하기에 나의 묘사들이 본 음악의 장르나 성격과 완전히 다를 수 있음을 미리 밝힌다.

 

 

난 우주미아

초라하게 떠도는

미아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우주 미아>는 묘하게 sf스러운 느낌이 나는 시티 팝 같다. 어딘가 비장하게 시작하는 첫 전 자음들을 따라 나는 분명 사방이 네온사인인지, 그저 거리를 비추는 조명인지 모를 빛으로 가득한 로드 웨이를 걷게 된다. 후렴이 시작과 함께 나는 중력조차 잃고 몽환적인 보컬과 함께 두려움과 멍청함이 가득한 우주 저편을 떠돌며 노래 속으로 완전히 빠져들게 된다.

 

 

따따따 네온사인 그 속을 헤엄쳐

따따따 새파란 내 얼굴을 비추고

따따따 다신 그대를 떠 올릴 수 없게

바다는 필요 없어

 

 

이러한 우주적인 분위기는 다음 트랙인 Neon Ocean이 이어받는다. 네온과 바다, 인공과 자연의 이질적인 만남이다. 이 노래 안에서는 네온이 바다를 삼킨다. ‘비밀과 나를 숨기고’ ‘바다를 그리워하지 않는’ 노래 속 화자의 외롭고 염세적인 태도는 경쾌하고 빠른 템포의 음악 덕일까, 은폐보다는 반드시 찾아달라고 소리치는 인상을 준다.

 

또 좋았던 트랙 중 하나는 9번 트랙인 <기억을 지우는 병원>이다. 잔잔한 멜로디에 기억을 지워달라는 구슬픈 멜로디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애절한 여자를 머릿속에서 그려내던 순간, 내레이션이 등장하며 현실로 끄집어 당겨지는 경험을 하게 한다.

 

기억을 지우고 싶은 환자와 환자를 안타까워하며 기꺼이 돕고 싶어 하는 의사가 번갈아 나오는 전개는 당황스러웠으나 그만큼 뇌리에 강렬히 박히게 했던 트랙이다.

 

 

팀 로고 이미지_나노말.png

 

 

전체적으로 나노말의 앨범은 각기 소극적으로 연결된 sf 단편집 같다. 각 트랙마다의 세게관이 견고하고, 그것들은 지극히 사실적이고 직설적인 가사들이 몽환적인 멜로디를 만나 현실을 납작하게 눌러 공중으로 띄운다. 내가 느낀 나노말은 우리가 느끼는 보통의 감정들을 가상의 평면 공간으로 구현한 2D 만화 같은 밴드다.


만화가 어떤 현실을 편집하고 잘라 그려내도 그것은 결국 판타지가 되듯, 나노말은 끈적하고 불쾌한 현실적 감정들을 판타지처럼 풀어낸다. 그렇기에 우리는 나노말의 음악이 아무리 축축한 감정을 노래해도 젖지 않고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나노말이 연재하는 형광빛 음악들을 계속해서 챙겨보고 구독하고 싶어졌다.


평범하지 않게 시작한 밴드가 자신들을 닮은 음악을 한다. 그뿐으로 사랑받아야 마땅하다. 노란색으로 시작한 노랑말들이 앞으로 어떤 기막힌 색들을 입고 나와 현실을 떠다니게 될까. 그 초입을 함께 하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이라는 말을 전한다.

 

 

[오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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