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사 로슬러(2), 부엌의 기호학

〈A Budding Gourmet〉, 〈Semiotics of the Kitchen〉
글 입력 2023.03.0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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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는 동시대 예술가 마사 로슬러(Martha Rosler)를 소개하고, 70년대 대중문화 속 시선의 대상으로서 제시되는 여성 문제를 다룬 로슬러의 대표적 작업 몇몇을 살펴보았다. 오늘은 동시기 작업된 페미니즘적 작업 중 가사 노동과 올바른 여성상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대한 대표적 작업을 살펴보자.

 

 

 

〈A Budding Gourm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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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 미식가 A Budding Gourmet 〉, 1974.

 

 

한편 1974년의 비디오 작업 〈신예 미식가(A Budding Gourmet)〉(1974)는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로 여겨져 온 가사노동과 이에 따른 젠더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비디오 속 실루엣으로 보이는 여성은 쇤베르크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배경으로 작은 티 테이블에 앉아 자신이 미식가가 되고 싶은 이유를 설명한다. 이는 로슬러가 같은 해에 쓴 “엽서 소설”(로슬러가 1974년 1월부터 4월까지 가까운 친구와 지인들에게 우편으로 보냈던 “음식 소설”로, 〈A Budding Gourmet: Food novel 1〉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속 텍스트로, 12개 장 중 사회적 지위 상승으로서의 고급 요리를 배우고자 하는 여성 인물에 대한 이야기다.

 

전형적인 브루클린 억양을 구사하는 여성은 화려한 요리책과 잡지 속 사진에서 보이는 여러 음식을 제시하며 이를 문화적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수단이자 자신을 비롯한 가족의 지위를 향상시키려는 자신의 노력으로 묘사한다. 그녀에게 요리는 한 번도 가본 적도 경험해본 적도 없는 프랑스의 우아함과 브라질의 열정을 습득할 수 있는 방법이자 이를 자신의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는 수단이다.


해당 작품은 언뜻 오랜 시간 여성의 일로 여겨져 왔던 가정 내에서의 가사 노동이 어떻게 공공영역과 문화로 대변되는 남성들의 자아 실현과 비견될 수 있는지 논하는 여성주의적 입장을 내포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 사적 영역의 자아실현이 공공영역에서의 자아실현과 동일시되기는 어렵다. 요리라는 분야만 보아도 공공영역에서는 요리사라는 직업과 결부되어 매력적인 권력으로 인식되지만, 가정에서의 요리는 존재하지 않는 투명하고 당연한 영역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해당 작품은 공공영역에서 입지를 다지기 어려웠던 당시의 여성들이 사적 영역인 가정 내에서 집안일을 통해 바깥의 문화를 대변하는 남성들처럼 자아를 성취할 수 있다는 환상에 지배된 상황을 비판하는 것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Semiotics of the Kitc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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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엌의 기호학 Semiotics of the Kitchen 〉, 1975. 

 

 

〈부엌의 기호학(Semiotics of the Kitchen)〉(1975) 또한 가사 노동과 부엌으로 대변되는 여성에 대한 이미지와 문제를 다룬 로슬러의 대표적 비디오 작품이다. 역시 비디오 속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로슬러는 “Semiotics of the Kitchen”이라는 문구가 달린 팻말을 정지 상태로 들어보이며 요리 프로그램을 패러디하듯 요리 없는 요리 시연을 행한다. 각종 주방도구가 쌓여있는 부엌 테이블 앞에서 로슬러는 A부터 Z까지 각 알파벳에 상응하는 주방 도구의 명칭을 언급하며 사용법을 알려준다.

 

하지만 로슬러가 시연하는 요리 도구 사용법은 본래의 용도와는 전혀 다른 폭력의 도구가 되어 무기처럼 내려찍거나 공중으로 던져지거나 누군가를 찌르거나 때리는 듯한 제스처를 통해 보여진다. 부엌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폭력의 도구가 되어 이리저리 휘둘러지는 주방기구는 가정 내 고귀한 여성의 역할을 보여준다기보다 오히려 그 틀을 찢고 부수는 듯하다.

 

분노한 듯한 여성의 몸짓은 관람자로 하여금 사적 공간 안에서 당연시되어 어떠한 보수나 인정도 받지 못하는 가사 노동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폭력의 도구가 된 주방기구들 역시 일상적인 부엌에서의 의미 체계에서 탈피해 가부장적 의미와 더불어 가정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적 해석을 가능케 한다.


 

 

마사 로슬러 다시 읽기


 

본 글은 비록 페미니즘과 여성 문제를 다룬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지만, 여전히 로슬러의 작품세계를 어떠한 한가지 조형 방식이나 주제로 정의 내리기는 어렵다. 특히 양식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작가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으면 로슬러의 작품임을 알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이는 역시 초반에 언급했듯, 60년대 미국의 혼란한 사회상과 함께 등장한 네오다다, 팝아트, 플럭서스의 영향과 로슬러가 가진 사회의식에 기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일상적 오브제나 산업 생산물, 통속적 이미지를 활용하는 방식은 팝아트의 맥락에서 해석되기도 한다.


본론에서 살펴본 작품들을 통해 파악할 수 있듯이 페미니즘적 문제를 다루는 작업에 있어서도 로슬러는 단순히 여성의 권익 쟁취나 여성적 특성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개인을 억압하는 사회 구조와 자아실현의 방식 등 우리 삶에 보다 직접적으로 닿아있는 고질적인 사회문제를 함께 다루며 변화를 촉구한다. 이처럼 로슬러의 작업은 여타의 작업들에 비해 보다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특징을 보인다. 시대와 상황에 대한 면밀한 관철을 통해 개인과 여성 문제가 이미 정치, 사회적인 맥락과 분리할 수 없음을 꾸준히 시사하는 것이다.


로슬러의 페미니즘적 작업은 최근까지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부엌의 기호학(Semiotics of the Kitchen)〉의 경우, 2003년 런던의 Whitechapel Gallery에서의 전시를 위해 배우, 예술가, 큐레이터, 박물관 직원 등 26명의 여성을 모집하여 재연출 및 퍼포먼스 되었고, 2011년 싱가포르 비엔날레에서는 도시국가에서의 여성 공동체에 대한 고찰을 기반으로 하는 설치 조각 〈헬싱키 정원 Proposed Helsinki Garden at the Singapore Biennale〉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1960-1970년대에 이루어진 페미니즘적 작업들이 현재까지 많은 공감을 얻고 회자되는 데에는 여전히 우리가 그때보다 멀리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는 비단 젠더적 문제에만 한정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김윤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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