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무언으로 전한 낭만의 정수: 박유신 첼로 리사이틀

글 입력 2023.03.08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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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_박유신리사이틀(3월7일)_최종.jpg

 

 

2월 말에 예술의전당을 다녀온 후 연이어 3월 초에 예술의전당을 또 다녀왔다. 2월에는 슈베르트에 빠져드는 순간을 만날 수 있었다면, 3월에는 멘델스존을 한껏 만끽해볼 수 있는 날이 있었기 때문이다. 멘델스존으로 가득한 이 공연은 바로 첼리스트 박유신의 리사이틀이었다. 박유신 첼로 리사이틀은 이번에 멘델스존을 주제로 하여 바리에이션 콘체르탄테와 무언가 세 곡, 그리고 첼로 소나타 1번과 2번을 포함하여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이번 리사이틀은 작품명이기도 한 무언가를 공연의 타이틀로 내세웠기 때문에, 말 없이 노래하는 첼로의 특성을, 첼리스트 박유신이 더욱 극대화하여 표현해 주리라는 기대감이 컸다.


그리고 3월 7일 저녁에, 같은 기대감을 가진 사람들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이 북적였다. 동시간대에 콘서트홀에서 큰 규모의 공연이 있었지만 첼리스트 박유신의 무대를 보기 위해 찾은 사람들도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만큼 그의 무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특히 첼리스트 박유신의 무대를 찾은 관객 중에는 이례적일 정도로 외국인 관객들도 많았다. 영어로 대화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프랑스어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어서, 이 모든 사람들이 첼리스트 박유신의 무대를 기다렸다는 게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설령 박유신 첼로 리사이틀에 와서 첼리스트 박유신의 연주를 처음 듣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이번 공연을 찾은 것은 정말로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확언할 수 있다. 이 날 리사이틀에서, 첼리스트 박유신은 무언으로 멘델스존이 가진 낭만의 정수를 온전히 전달해주었기 때문이다.


 



< PROGRAM >


F. 멘델스존 (1809~1847 Felix Mendelssohn, 독일)


바리에이션 콘체르탄테 라장조 작품17

Variations Concertantes in D Major Op.17


첼로 소나타 제1번 내림나장조 작품45 

Cello Sonata No.1 in b-flat Major Op.45

I. Allegro vivace

II. Andante

III. Allegro assai


INTERMISSION


무언가 작품62 중 1번, 6번

Lied ohne worte, Op.62 No.1, No.6

No. 1 Andante espressivo

No. 6 Allegretto grazioso


무언가 작품109

Lied ohne worte, Op.109 


첼로 소나타 제2번 라장조 작품58 

Cello Sonata No.2 in D Major, Op.58

I. Allegro assai vivace

II. Allegretto scherzando

III. Adagio

IV. Molto allegro e vivace

 




이번 리사이틀의 첫 곡은 멘델스존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바리에이션 콘체르탄테(협주적 변주곡) 라장조였다. 시작은 두 연주자의 부드럽고 우아한 음으로 서막을 알렸다. 그리고 이 우아하게 아름다운 주제로부터 총 여덟 번의 변주가 이루어졌다. 여덟 번이나 변주가 일어나는 만큼, 박유신과 일리야 라쉬코프스키는 그 사이에 멘델스존이 숨겨둔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었다. 때론 격렬하기도 했고 한없이 부드럽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대목은 첼로의 피치카토가 통통 튀는 피아노 반주 위에 수놓인 다음 이어서 첼로가 펼침화음을 연주하고 피아노는 화음으로 호응하는, 두 주제가 연이어지는 구간이었다.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익살스러운 느낌이 들다가, 이와는 또 다르게 끝없이 일렁이는 듯한 분위기가 정말 아름다웠다.


*


이어지는 1부의 두 번째 작품은 멘델스존의 첼로 소나타 1번이었다. 1악장은 마치 첫 번째 곡이었던 바리에이션 콘체르탄테 같은 드라마틱함이 느껴진다. 우선 서주에서 첼로와 피아노가 유니즌으로 시작하는 대목이 장조이면서도 나름의 비장미가 서려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유신의 첼로 선율도,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피아노의 반주도 1악장 전반에 걸쳐 강렬하게 맞붙는 느낌이었다. 두 연주자가 끝없이 음악적인 대화를 나눠야만 하는 대목이었다.


그 뒤에 이어지는 2악장은 안단테지만 다소간 스케르초적인 느낌이 있다. 리듬감이 있는 피아노 선율이 먼저 제시된 다음 첼로가 호응하며 2악장의 본 선율이 전개가 되는데, 박유신은 여기서 절묘하게 완급을 조절하며 오묘한 스케르초 분위기를 잘 표현했다. 2악장에서 짧게 나온 피치카토까지 부드럽고도 익살스러운 2악장의 느낌을 극대화했다. 마지막 3악장은 피날레치고는 부드럽게 시작해서 점차 피날레다운 화려함으로 점점 발전해가는 악장이다. 또한 다른 악장보다도 여기서 첼로보다 화려한 듯한 피아노 선율이 확실히 느껴졌다. 마지막 순간까지 두 악기가 뜨겁게 맞물리다가 나오는 부드러운 마지막 음 이후, 객석에서 뜨겁게 박수가 쏟아졌다.


이번 박유신 첼로 리사이틀 1부의 두 곡은 모두 멘델스존이 자신의 남동생 파울에게 헌정했다고 한다. 프로그램 북을 보니, 동생 파울은 아마추어 첼리스트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만일 멘델스존이 이런 곡을 헌정했다면 파울은 프로에 준하는 아마추어였을 것이다. 아마도 첼리스트 박유신이 뛰어나게 전달해준 덕에 더욱 그렇게 판단하게 되었겠지만, 멘델스존의 두 곡이 결코 만만하지 않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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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마무리된 박유신 첼로 리사이틀의 1부는 개인적으로 '고전적 낭만'이었다고 이름 붙여보고 싶다. 이렇게 이름 붙인 이유는 1부와 2부가 달랐기 때문이다. 1부가 고전의 향취가 느껴지는, 고전과 낭만 사이에서 낭만에 더 가까운 구성이었다면 2부는 낭만 그 자체이자 이번 리사이틀의 핵심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


우선 2부는 이번 박유신 첼로 리사이틀의 제목이기도 한 '무언가'로 시작했다. 이번 연주회에서 첼리스트 박유신은 총 세 곡의 무언가를 선곡했는데 그는 이 무언가를 연이어 연주해주었다. 무언가 중 처음으로 연주된 곡은 작품번호 62의 1번, 5월의 산들바람이었다. 주선율을 첼로가 맡으니까 가볍고 산뜻하면서도 어느 정도의 무게감이 있는 느낌이 들었다. 다가올 봄이 얼마나 아름다울지를, 박유신의 짙은 첼로 음색이 호소하듯 노래하는 느낌이었다.


뒤이은 무언가는 바로 작품번호 62의 6번이자 무언가 중에서도 손에 꼽히게 유명한 봄의 노래였다. 이 작품은 피아노로 연주될 때 보통 페달링을 순간적으로 깊게 해서 둥근 소리를 내는데, 이번 리사이틀에서 일리야 라쉬코프스키는 페달링을 아주 얕게 해서 반주했다. 아무래도 첼로가 주선율을 연주하니까 피아노 울림이 너무 강하면 첼로 선율을 살짝 가릴 수도 있어서 그랬던 게 아닐까 싶었다. 항상 피아노로만 듣던 봄의 노래를 첼로와 피아노 연주로 들으니 이색적인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 중에 마지막으로, 무언가 라장조 작품번호 109가 연주되었다. 처음부터 첼로와 피아노를 위해 멘델스존이 작곡한 무언가인 이 작품은 오늘 리사이틀의 테마곡처럼 느껴졌다. 오늘의 본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앞선 두 무언가보다, 이 작품에 이르러서 박유신의 첼로 선율은 마치 말 없이 감정을 전부 토해내는 것 같은 울림을 주었으니까 말이다. 앞선 모든 작품들과 견주었을 때에도,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무언가는 가장 감정의 전달이 완벽하게 된 작품이었다. 너무나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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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의 아련한 여운을 이어받아, 멘델스존의 첼로 소나타 2번이 마지막으로 연주되었다. 멘델스존 2번 소나타의 1악장은, 직전에 있었던 무언가에 이어서 낭만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도입부로 시작한다. 박유신과 일리야 라쉬코프스키가 그 첫 대목을 연주하기 시작하자마자 이 순간을 위해 오늘의 리사이틀을 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두 악기 모두 격정을 노래하는데, 그 사이에 녹아든 기교와 감정 모두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무언가에 이어 관객들에게 엄청난 몰입을 만들어낸 연주였다.


이어지는 스케르찬도에선 멘델스존의 익살스러운 리듬감과 부드러운 텍스쳐가 확연히 돋보였다. 박유신과 일리야 라쉬코프스키는 2악장에 담겨있는 특유의 느낌을 반짝이는 터치로 잘 표현해주었다. 첼로 피치카토에 맞춰 피아노도 여리게 연주되면서 드러나는 음색의 표현이 그야말로 절묘했다. 리듬감은 가볍게 하되 소리는 날리지 않게 표현했고, 부드러움과 명확함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이를 표현하는 두 연주자의 호흡도 완벽하게 맞아서, 관객의 입장에서 보는 즐거움과 듣는 즐거움이 모두 별미였다.


이를 뒤잇는 3악장은 다시금 낭만의 깊이감을 보여주는 악장이다. 3악장은 피아노의 깊은 페달링과 펼침화음으로 긴 서주로 시작하는데, 이는 직전의 무언가의 정서를 잇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무언가 뒤에 첼로 소나타 2번을 연달아 들어서 더 그랬던 듯하다. 첼로 소나타 2번의 3악장이 연주되는 동안 너무나 명백했던 것은, 박유신의 첼로와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피아노가 관객들의 감정을 어루만졌다는 점이다. 아름답다는 말 외에 표현할 길이 없는 이 노래 악장은 멘델스존의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악상의 결정체였다.


그 낭만적인 여정의 끝에, 마지막 4악장은 3악장에서 바로 이어서 연주되었다. 피날레는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악장 초부터 시종일관 부던히 음을 쌓아나가는 악장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두 연주자 모두 손가락으로 수없이 많은 음을 짚어가며 더더욱 깊게 교감할 수밖에 없는 악장이기도 했다. 1악장도 활기차고 화려한 낭만의 정서가 확연한데, 4악장은 그보다 더 나아간다. 그래서 박유신의 첼로도 훨씬 더 열정으로 가득했다. 그러니 그 끝에서 맞은 절정은 카타르시스 그 자체일 수밖에. 격정의 끝에서 맞이한 두 연주자의 마지막 음이 멈춰지는 순간, 객석에서 브라비가 연호되고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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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의 뜨거운 박수에 화답하여, 첼리스트 박유신과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는 다시금 무대 위로 나섰다. 그리고 앵콜곡을 연주하기에 앞서, 육성으로 이번 앵콜곡을 소개해주었다. 바로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D.957이었다. 세레나데이면서도 우울한 정서를 함께 내포하고 있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감미로운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이 아름다운 작품으로 리사이틀을 마무리한 것이다. 오로지 낭만으로 시작해, 낭만으로 마무리하는 연주였다.


*


첼리스트 박유신은 이번 리사이틀을 통해 관객들에게 멘델스존의 낭만의 정서를 확실하게 전해주었다. 멘델스존의 음악 속에 녹아있는 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낭만의 정서는 결코 저평가되어서는 안될 아름다운 유산이다. 첼리스트 박유신은 멘델스존의 이 놀라운 아름다움을 관객들에게 전해주면서, 그의 음악 속에 담긴 긍정의 에너지와 희망의 기운까지 무언으로 표현해 주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멘델스존으로 올 봄을 시작하게 되어 너무나 기쁘다. 올해 포항음악제와 어텀실내악페스티벌에도 멘델스존이 포함될까? 첼리스트 박유신은 두 음악제의 예술감독이기도 하다보니, 혹시 그의 이번 리사이틀이 올해 두 음악제의 테마 일부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멘델스존이 포함되지 않더라도 매번 인상적인 실내악 레퍼토리로 음악제가 진행되어 왔으니 올해의 일정도 눈여겨보아야 할 듯하다.


매번 실내악 무대에서 주로 만났던 첼리스트 박유신을 리사이틀로 만나서 더욱 뜻깊은 순간이었다. 앙상블에 뛰어난 연주자이니 당연히 독주자로서도 발군일 수밖에 없겠지만, 그가 전해준 멘델스존의 눈부신 순간들은 생각보다 더 가슴 깊게 와닿았다. 올해에 다시금 첼리스트 박유신을 무대에서 만난다면 아주 높은 확률로 실내악 무대에서 만나게 되겠지만, 가급적 빨리 박유신의 다음 리사이틀을 가고 싶어진다. 이 다음에 그는 또 어떤 레퍼토리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까? 무언으로 관객들에게 많은 것을 말하는 박유신의 첼로를 빨리 다시금 듣고 싶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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