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재즈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 — 맞춤형 알고리즘에 관하여 [문화 전반]

나의 취향을 내가 선택할 수 있는가
글 입력 2023.03.0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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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1976년 엘라 피츠제럴드는 즉흥 스캣으로 답변을 대신했고, 이는 2022년 새로운 밈이 되었다. 이 밈을 보고 무엇이 재밌는 부분인지조차 찾지 못하는 재즈 문외한이던 나는 처음으로 ‘그래서 정말 재즈가 뭔데?’라는 궁금증이 일었다. 내게 재즈란 넷플릭스 드라마 <굿 플레이스>의 엘리너의 즉흥성과 긴 연주 시간에서 비롯된 악몽이었고 지루하거나, 좋아하는 이들만 즐기는 마니아층이 있는 장르, 대중적이지 않은 것으로 분류되곤 하던 것이었다. 

 

대중적이지 않다고 여기는 장르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들이 가장 처음 하는 일은 무엇일까? 괜찮은 노래를 찾아본다. 그 노래의 연주자를 찾는다, 그의 앨범에 있는 노래를 듣는다. 그리고 그다음은 아마도 누군가에게 (이 누군가는 물론 나보다 이 장르에 대하여 아는 것이 많은 골수팬을 뜻한다) 물을 것이다. 

 

“재즈 음악을 추천해주시겠어요?”

 

그리고 나는 이 질문을 유튜브 뮤직의 맞춤형 알고리즘 AI에게 물었고, 그것이 아직도 내가 다른 이들 앞에서 재즈를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었다.

 

나는 재즈를 듣는다. 일할 때 항상 재즈를 틀어놓고 이동시간에도 거의 재즈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한다. 그러나 연주자의 이름은 모른다. 누가 유명한 연주자인지, 누구의 앨범이 명반인지, 재즈의 거장은 누구이고 신흥 강자는 누구인지 답할 수 없다. 괜찮은 음악이 귀를 스치면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연주자를 찾거나 그의 앨범을 찾아보는 일이 아니라 나의 맞춤형 알고리즘이 지금 듣는 음악과 비슷한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주는 유튜브 뮤직의 기능인 ‘뮤직스테이션 하기’를 누르는 것뿐이다.

 

뮤직스테이션을 누르면 비슷한 느낌의 곡들의 리스트가 주르륵 등장한다. 나는 재생버튼을 누르고 재즈를 듣는다. 그렇게 나는 내가 듣는 곡의 제목조차 알지 못한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 중 ‘나는 재즈를 좋아한다.’라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렇다면 맞춤형 알고리즘을 이용하는 일은 내가 음악 평론가의 재즈 플레이리스트를 따라 듣는 행위와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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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결합한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2 음악 이용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직접 곡이나 앨범을 검색하거나 사이트가 제공하는 차트를 이용한다고 답변한 비율은 감소했지만 ‘서비스가 제한하는 ‘테마 리스트, 내 취향 맞춤형’ 등 선곡 리스트 감상’, ‘스타DJ/일반 이용자 DJ 등의 플레이리스트’를 이용한다고 답변한 비율은 전년 대비 증가하였다. 팬데믹으로 인한 언택트 시대에 높은 수익을 올린 여러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들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현 상황에서 당시의 이용자 수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고려하는데, 이 중 유튜브와 스포티파이가 개인 맞춤형 알고리즘 기술을 활용하여 성공적인 결과를 얻고 있다. 

 

유튜브 이용자들은 대표적으로 자신의 취향에 맞게 추천하는 알고리즘을 해당 사이트를 사용하는 이유로 꼽았다. 구글은 맞춤형 알고리즘의 기준을 공개하지 않았으나, 크게 협업과 콘텐츠 기반 필터링을 이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나와 같은 음악을 좋아하는 다른 사용자들이 재생한 음악을 내게 추천하는 방식으로 개인의 만족도를 높이며, 내가 ‘좋아요’를 누른 음악을 만든 작곡가, 가수, 장르 등을 고려하여 비슷한 가수, 작곡가, 장르를 추천한다. 이는 나의 ‘좋아요’ 및 ‘싫어요’ 응답에 따라 점차 정교하게 나의 취향을 찾는다. 또한 이렇게 기록된 데이터가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이들에게 추천할 곡 리스트의 기반이 된다. 

 

이 추천 체계는 더 세분화되어 ‘친숙한 곡, 처음 듣는 곡’의 사용자 맞춤 필터와 ‘인기곡, 숨은 명곡, 신곡’ 등과 같은 다른 사용자들의 데이터를 이용한 필터, ‘신나는, 느긋한, 경쾌한, 우울한’ 등의 음악 콘텐츠 자체 태그를 이용한 필터를 제공하며 더 개인의 취향을 찾아간다.

 

스포티파이는 차세대 개인 맞춤형 알고리즘 플레이리스트 컬렉션 ‘스포티파이 믹스(Spotify Mixes)’ 서비스를 제공하며 내가 즐겨 듣는 장르, 아티스트, 시대와 같은 직관적인 그룹화를 제공한다. 특히 스포티파이는 이용자에게 위클리 추천곡과 데일리 추천곡 리스트를 제공하며, 친숙한 곡과 내가 좋아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곡의 비율을 조절하여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추천해준다. 스포티파이 수석 프로덕트 매니저 이쓰라 오메르(Issra Omer)는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음악 자체가 가지고 있는 구성 요소와 음악이 재생되는 맥락적 요소 등을 포함한 다양한 알고리즘이 다른 음원 서비스들과는 다른 스포티파이만의 차별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스포티파이 이용 후기에 ‘취향에 맞는 곡들을 잘 추천해준다’라는 이야기가 항상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맞춤형 AI 알고리즘의 기술력이 점차 뛰어나 개인에게 최적화되면 될수록 우리는 더 편리하고 행복하기만 할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곡 추천 리스트는 정말 나의 취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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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형 알고리즘이 추천한 곡이 정말 나의 취향일까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맞춤형 알고리즘은 크게 나와 비슷한 이용자들이 들은 음악을 추천해주거나,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비슷한 음악을 추천해준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이미 ‘비슷함’이라는 값을 가진 선행된 데이터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용자의 음악 재생 여부와 지속시간, 그리고 선호 표현이 기업의 수입을 창출하는 데이터가 된다. 그리고 빅데이터로 학습된 알고리즘의 규칙은 기업의 사적 이익과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로 대중에게 밝혀지지 않는다. 

 

EU는 기본권 헌장(The Charter of Fundamental Rights)에서 모든 이용자는 자신의 데이터 통제권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명시하였으나 이 권리가 보장되느냐는 기업의 투명성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의 음악 감상 행위가 어떠한 방식으로 합계되고 해석되어 알고리즘을 구성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한 음악 선호도로 알고리즘이 우리에 대해서 무엇을 아는지, 우리를 어떻게 프로파일링하는지 알 수 없기에 우리의 사생활이 침해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없다. 

 

또한 맞춤형 알고리즘이 여러 곡을 추천할 때, 우리의 만들어진 취향은 점차 확고해지며 이는 우리를 필터 버블 안에 가두게 된다. 머신러닝 기반의 개인화는 새로운 것과의 상호작용을 막는 형태로 강화되며 필터 버블에 갇힌 우리의 취향은 맞춤형 알고리즘이 우리에게 최적화되면 될수록 고정된 정체성을 생산한다.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진 취향이 나의 것인지 구분하지 않는다. 그렇게 소비자로서 내가 가지는 결정권이 점차 흐려지다가 이내 소멸한다.

 

나는 재즈를 좋아한다.’ 

 

이 문장을 사용하기 위해서 나는 무슨 결정을 했을까? 나는 그저 괜찮은 노래 옆의 점 세 개를 누른 후 뮤직스테이션을 실행하거나, 유튜브가 선정해준 믹스 플레이리스트를 눌렀을 뿐이다. 나는 나 스스로 어떤 뮤지션을 좋아한다고 말하거나, 어떤 악기를 선호한다고 말하거나, 어떤 앨범, 어떤 곡을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덩어리진 플레이리스트’가 별로라고 말하거나 혹은 유튜브의 추천 리스트가 별로 맞지 않는다고 말할 뿐이다.

 

 

 

맞춤형 알고리즘의 추천 리스트 vs 음악 평론가의 추천 리스트



그렇다면, 분야의 전문가의 추천 리스트는 어떨까? 그들의 추천곡과 맞춤형 알고리즘이 나의 선호도를 분석한 후 추천한 곡의 리스트는 무엇이 다를까? 이 두 리스트의 차이를 생성자에 따라 분류하자면, AI가 인간의 능력을 갖출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환원될 뿐이다. 두 가지 리스트의 차이점은 우리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용자에게 있다. 

 

나는 재즈라는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알고 싶다. 몇 개의 재즈곡을 들었더니 자연스럽게 유튜브는 나에게 재즈 플레이리스트를 띄워준다. 재즈뿐 아니라 클래식이나 뉴에이지도 함께 뜬다. 그렇게 유튜브에서 몇 개의 플레이리스트를 듣고 유튜브 뮤직에 들어가니 빠른 선곡에 재즈곡이 몇 개 보인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의 뮤직 스테이션을 만들면 나의 취향이 생성된다. 

 

맞춤형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리스트는 내가 나의 취향을 형성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선택권도 없다. 리스트라 생성되는 기준을 알 수 없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이용자는 그 리스트를 스스로 자신의 취향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그 플레이리스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우리는 알고리즘이 잘 작동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을 우선한다. 우리는 구태여 시간을 할애하여 개별적인 곡에 대한 선호 판단을 하지는 않는다. 다른 곡으로 뮤직 스테이션을 돌리면 5초 안에 나의 취향이 다시 생성되기 때문이다. 

 

어떤 재즈 장르에서 저명한 음악 평론가가 본인 추천 리스트 50곡을 소개하였다. 재즈의 초심자인 나는 그 리스트를 본다. 그 리스트는 나, 즉 이용자의 취향이 아니다. 그것은 그 평론가, 즉 어떤 재즈 뮤지션을 좋아하고, 어느 곡을 좋아하고, 재즈 말고 다른 음악 장르를 좋아하는지 알 수 있는 한 인간의 취향이 담긴 리스트이다. 나는 그 리스트의 곡들을 찾아 듣는다. 그 리스트는 타인의 취향이기에 나는 그 곡들을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을 선택권이 존재한다. 선택권이 존재하기에 개별적인 곡에 대하여 선호 판단을 할 시간을 할애한다. 개별적인 곡에 대한 판단이 선행된 후 나는 평론가의 추천 리스트에 대한 선호 판단을 내린다. 평론가의 추천 리스트에서는 나의 취향을 생성하는 것은 내가 된다. 그러므로 나는 이 플레이리스트가 생성되는 기준에 대하여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이는 5초보다 더 긴 시간과 노력이 걸리는 일이다. 

 

나는 재즈를 좋아하는 걸까? 나의 취향을 맞춤형 알고리즘에 일임한 채, 플레이리스트를 하나의 큰 덩이로 여기며 플레이리스트 자체에 좋고 싫음을 판단하는 나는 재즈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어지는 타인의 후속 질문에 멋쩍게 플레이리스트만 듣는다고 답할 것을 생각하면 여전히 재즈를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나의 취향을 말하는 것은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통해 친밀감을 형성하는 일이다. 같은 취향과 취미를 향유하는 이들을 만나면 호감도는 금세 상승한다. 

 

그렇기에 재즈의 초심자인 내가 평론가의 추천 리스트가 마음에 들었다면 나는 그의 취향에 공감한다. 이는 그러한 취향을 가진 그에게도 공감하는 일이다. 그러나 내가 매번 찾아 듣는 유튜브 뮤직의 알고리즘에게는 공감이 없다. 공감이 없기에 엿보고 싶은 철학이 부재한다. 그러므로 ‘그때 당신이 추천해 준 이 곡이 좋았다.’라며 시작되는 대화도, 그로 인해 쌓이는 유대도 없다.

 

 

[양자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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