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음악으로 쓴 수필, 안예은의 쉽게 쓴 이야기

안예은의 정규 4집 「쉽게 쓴 이야기」
글 입력 2023.03.02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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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예은 앨범커버.jpg

 

 

안예은의 음악은 색이 짙다.

 

그의 음악을 많이 접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홍연’이나 드라마 「역적」의 OST ‘상사화’나 ‘봄이 온다면’, 또는 정규 3집에 수록되었다가 인기에 힘입어 새로이 싱글 형태로 발매되기도 했던 ‘문어의 꿈’을 하나라도 들어본 적 있다면, 특색 있는 보컬과 흡입력 있는 노랫말 등으로 대표되는 안예은의 고유한 음악성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실은 알려진 것보다도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그의 역량은 더욱 뛰어나다. 사극풍 음악에서 특히 돋보인 탄탄한 서사력은 다양성 있는 음악 세계관이 창조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EP 「섬으로」와 EP 「섬에서」는 섬으로 출항하는 인물들과 섬에 있는 인물들이 동일한 ‘섬’ 세계관을 공유하며 동시간대에 겪는 다른 이야기를 담았다.

 

납량특집 기획으로 발매된 곡 ‘능소화’와 ‘창귀’는 평소 공포스릴러의 애청자인 안예은의 관심사를 바탕으로 고전 설화 속 귀신 이야기가 배경이 된 본격 호러 곡이다.


 

상상으로 만든 거대한 세계의 이야기만 몇 년 간 하다가, 스스로의 이야기를 담은 곡의 비율이 현저하게 높은 앨범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앨범 제목인 ’쉽게 쓴 이야기‘는 상상을 등에 업은 저의 다른 창작물보다 조금 가볍게 들으실 수 있다는 뜻이기도, 저의 강박을 많이 내려놓고 썼기 때문에 그전보다 쉽게 쓴 이야기들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무쪼록 이번에도 즐겁게 들어주시고, 언제나 건강하십시오.

 


그리고 2월 12일 발매된 안예은의 신보 「쉽게 쓴 이야기」는, 정규 3집 「ㅇㅇㅇ」 이후 2년 6개월가량만의 정규 4집이다. 타이틀곡 ‘죽음에 관한 4분 15초의 이야기’를 비롯해 총 열한 곡이 실려 있다.

 

이번 신보가 지난 음반들과 결을 다르게 하는 부분이 있다면, 상상으로 쌓아 올린 세계 안에서 그 밖으로 시선을 틀어 안예은의 내면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의 이야기를 선보인다는 점이다. 책이라면 소설가의 수필을 읽는 느낌으로 이 음반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짜임새 있는 구성과 그 안에서도 각각의 또렷한 색을 잃지 않는 곡의 개성은 여전한 강점이다. 6번 트랙 ‘그럴 줄 알았지’는 곡 설명에 따르면 ‘1부 끝! 쉬는 시간 3분!’이라는 의도로 만들어진 1막과 2막 사이 인터미션 같은 곡으로, 이 음악이 기준이 되어 앞과 뒤의 음악이 다른 톤을 갖고 있다.


 

“나는 사랑받을 이유도 방법도 몰라서,

허공 위에 구름으로 만든 탑에 살아요.

매일 이렇게 하소연해서 미안합니다.

이리 지내는 것이··· 녹록지가 않네요.”

 

- 안예은, ‘미움받는 꿈’

 


앞쪽으로는 이미지의 대비가 돋보이는 음악이 포진되어 있다.

 

첫 번째 트랙 ‘무거워’는 음반의 초입에서 리스너를 순식간에 중심으로 빨아들이는, 앨리스의 토끼굴 같은 곡이다. 몰아치는 악기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 검은 우주 거대한 구멍으로 / 빨려들어가’는 속도감 있는 움직임과 급박한 상황을, 음의 높낮이에 확실한 차이를 둔 가창은 ‘구십 도의 절벽 / 추락해’라는 추락의 수직 방향을 표현한다.

 

앞선 곡에서 급브레이크를 밟듯 ‘일순 그대로 멈춰’라는 가사와 함께 뚝하고 음악이 끝나면, 타이틀곡인 ‘죽음에 관한 4분 15초의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바이탈 사인 기계음이 흘러나온다. 누구나 한 번쯤 죽음 이후를 상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단테는 『신곡』을 통해 지옥, 연옥, 천국으로 이어지는 세계를 말했고, 불교에는 영화 「신과 함께」에서 다뤄지기도 했던 일곱 관문 설화가, 그리스 로마 신화에 의하면 인간은 죽음 이후 스틱스 강을 건너며 이승의 모든 기억을 지우게 된다.

 

이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것은 저승은 ‘돌아오는 이가 없어 비밀만 가득한’ 세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곡은 아무튼 인간이라면 다다르게 될 죽음에 관한 4분 15초의 이야기다.

 

안예은의 꼿꼿하면서도 당찬 가창은 이 곡에서 빛을 발한다. 날카로운 음색은 죽음 앞에 움츠러들게 되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꿰뚫고, 후반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향한다’며 힘 있게 내지르는 목소리는 체념에 고여있지 않고 작은 점이면서 목적지인 죽음으로 겸허히 나아가도록 한다. 동시에 피아노와 현악기를 주요하게 활용한 서정적인 선율을 통해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이라는 ‘고된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삶의 쓸쓸함은 숨겨지지 않음을 복합적으로 표현한다.

 

외에도 3번 트랙 ‘미끄럼틀’은 왈츠 리듬의 밝고 소박한 피아노와 ‘머리부터 삼키는 수렁’이라는 섬뜩한 가사가 부딪히며 스파크가 튀는 곡이고, 4번 트랙 ‘잠’과 5번 트랙 ‘미움받는 꿈’은 잠에서 꿈으로, 이어지는 곡이다. 뚱땅거리는 피아노 멜로디에서 비롯된 동화스러움과 온갖 어둠을 긁어모아 쓴 것 같은 노랫말이 뒤엉키며,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기묘한 표정의 얼굴을 빚어낸다.


 

나는 내일 돌아가려 합니다

모든 것이 시작되고 끝나는 곳으로

나는 내일 아마도 돌아갈 겁니다

모든 것이 빛나다 사라지는 그곳으로


GOOD BYE!

 

- 안예은, ‘Cistus albidus’

 


7번 트랙부터 10번 트랙을 통해서는 화자의 음울함이 길어진다. 왕국의 몰락 그 끝, 최후의 술자리를 노래한 것 같은 ‘잔’에서는 시간적 배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보컬 특징이 드러나고, 정제되지 않은 느낌의 기타 연주로 환기되는 ‘가볍게’는 새처럼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마음이 쓸쓸하게 표현된 곡이다.

 

‘멍게’와 Cistus albidus는 이야기를 알고 들으면 더 재밌는 곡들이다. 정착할 곳을 찾으면 더 이상 쓸모없는 기관인 뇌를 먹어치운다는 멍게의 습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멍게’는 우울과 몽환이 짙다. 또 마지막 트랙인 Cistus albidus에서는 ‘나는 내일 죽겠지’라는 꽃말을 가진 꽃을 소재로 앞선 곡들에서 넌지시 암시해온 죽음을 선명하게 비춘다.

 

안예은의 음악을 알게 된 건 대표곡 외에는 그의 음악 대부분을 모르고 간 공연에서였다. 이런 데서 고백하기엔 조금 부끄럽지만, 그 공연에서 정규 2집에 수록된 곡 ‘편지’를 듣고 운 기억이 있다.

 

당시 강렬한 콘셉트의 곡들을 주로 알고 있었다 보니, 이 곡의 풋풋함이나 흔한 ‘사랑해’라는 가사가 간지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마디 하나하나 또렷하게 전달되는 편지에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슷한 이유로 1집의 ‘경우의 수’와 ‘어쩌다보니’, 3집의 ‘배’와 같이 현실적인 내용의 곡들을 몰래 조금 더 애정했다.

 

그러니까, 언뜻 보면 안예은의 뾰족한 음악적 색채는 대중적인 사랑을 받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 같고, 명랑함에 가까운 보컬은 슬픈 감정을 중화하거나 전달을 방해할 것 같지만 실은 그 반대라는 것이다. 「K팝스타 시즌5」 출연 당시 유희열이 ‘경우의 수’를 듣고 최근 들은 발라드 중 가장 슬픈 노래였다고 평했듯, 되려 대비는 극명해져 그의 사랑노래는 웬만한 발라드보다도 더 아픈 이야기가 된다. 또 단어 하나와 시대적 고증 한 줄도 허투루 다루지 않음이 느껴지는 성실하고도 촘촘한 스토리텔링은 한 곡의 음악과 나아가 앨범 하나를 통으로 듣도록 하는 최대 강점이 된다.

 

특히나 3분이 채 안 되는 곡이 유행하는 요즘 세상에서, 끝까지 다 듣고 싶어지는 음악이란 음악으로서는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이라고 말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안예은의 진솔한 속내가 기록된 이번 정규 4집 「쉽게 쓴 이야기」 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러나 역시나 많은 리스너들에게 듣는 즐거움을 전하는 앨범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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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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