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퍽퍽한 출퇴근 길에도 운이 좋은 날이 온다

노을사냥꾼의 지하철
글 입력 2023.02.1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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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었다.


평소 퇴근 시간보다 3분 일찍 나와서 오후 6시 7분 교대 방면 2호선 열차를 탔다. 생각보다 지하철이 널널했다. 강남을 지나 교대, 서초, 방배를 지날 때마다 사람들이 다시 가득 탔다. 사당역에 도착하자 “내릴게요”를 외치며 모르는 사람들을 밀며 지나쳤다.


사당역 2호선-4호선 환승 구간 중간을 막는다는 사실을 처음 출근하면서 배웠다. 수많은 사람이 긴 복도를 저 끝까지 함께 걷는다. 빨리 가고 싶은 사람들은 사이드에서 속도를 낸다. 나는 중간에 섞여서 어중간하게 걷는다.


그래도 4호선은 2호선보다 널널하다. 계단 아래로 내려가면 운 좋으면 사당에서 출발하는 빈 열차를 탈 수 있다. 나는 서울 방면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반대편 오이도행보다 사람이 적다. 줄의 네 번째로 서 있었는데 끝자리 앉기를 성공했다. 운이 좋은 날이다.


4호선에는 특별한 구간이 있다. 바로 동작역에서 이촌역으로 갈 때 한강을 지난다. 지하로 내려가서 탄 열차가 지상으로 올라와 햇빛을 담고 빠르게 건물과 차 사이를 지난다. 핸드폰만 바라보다 유일하게 고개를 드는 구간이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지만 잠깐이라서 더 소중할지도 모른다.


서울에는 한강을 지나는 구간이 꽤 많다.


1호선의 노량진-용산 구간

2호선의 합정-당산 구간

4호선의 이촌-동작 구간


보통 아침에는 오늘 미세먼지가 어떤지 저 멀리 롯데타워까지 보거나 63빌딩을 구경한다. 저녁에는 해가 얼마나 졌는지 바라본다. 밖이 어두워 강이 보이지 않고 창문이 거울처럼 열차 안 사람만 비추면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해가 뜰 때 퇴근과 해가 질 때 퇴근의 마음이 다르니까요.

 


노을.jpg
그 날의 노을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다. 동작대교를 지날 때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은 붉은 노을로 뒤덮였다. 퇴근하면서 처음 보는 하늘이었다. 내렸던 고개를 들고 강을 지나는 내내 창밖을 쳐다봤다.


나와 같은 장면을 바라보는 사람이 열차 안에 또 있었다. 그는 내가 쳐다보던 창문에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었다. 그의 사진첩에도, 나의 사진첩에도 같은 풍경의 다른 사진이 있다. 어쩌면 그도 나처럼 사소한 일상을 수집할 수도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사진을 보내는 낭만은 없지만 그는 그럴 수 있다.


분명 사람이 가득 찬 지하철 때문에 지쳤는데, 같은 하늘을 바라본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있어서 좋았다. 모르는 사람에 지쳤다가 모르는 사람에 위로받는 이상한 사람이다.


지루한 퇴근길이 잠시 행복했다. 행복하기 위해 애쓰는 건지 진짜 행복한 건지 헷갈리지만 뭐 어때. 퍼석퍼석한 일상에도 여전히 작은 부드러운 구석은 필요해요.

 

 

 

아트인사이트_컬쳐리스트.jpg

 

 

[강현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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