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밀은 저 깊은 곳에,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 [영화]

비밀이 묻힌 곳, 아주 깊고 깊은 습지
글 입력 2023.02.1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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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어머니께서 인상 깊게 읽으셨던 책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를 보고자 OTT를 뒤적거렸다. 원작 소설은 무려 미국에서 180주간이나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다. 상영 당시에도 제한된 시간대에 제한된 영화관에서만 상영되어 영화를 보지 못한 것에 대해 어머니께서는 무척이나 아쉬워하셨다.

 

다행스럽게도 OTT 플랫폼에 이 영화가 등재되어 집에서 부담 없이 보고 싶던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미스터리 영화인 줄로만 알았고 그 후로는 로맨스 영화로 착각했던 이 영화는 대단한 영상미와 정적으로 표현되는 수많은 감정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주말 2시간을 단숨에 사로잡았던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영화는 체이스 앤드루스라는 청년이 습지에서 시체로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이 청년을 죽인 살인 용의자로 습지에 살고 있던 카야 클라크가 지목되고 그녀를 재판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습지가 나의 세상이던, 그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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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 공식 스틸컷)

 

 

주인공, 일명 '카야'를 소개하기 앞서 그의 가정 환경을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카야의 아버지는 지독한 가정폭력범으로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면 가차 없이 손부터 나가는 아주 폭력적인 사람이었다. 아버지를 제외한 어머니, 오빠, 언니들과는 무척 단란하고 화목했던 카야의 집에서 서서히 균열이 일어났다.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참을 수가 없었던 카야의 어머니를 시작으로 큰 오빠와 언니들까지 순서대로 습지에서 도망쳤다. 마지막으로 작은 오빠 조디가 집을 나서며 너무 괴롭거나 힘이 들 때엔 아무도 못 찾는 가재가 노래하는 곳으로 숨으라는 말을 카야에게 전하며 그렇게 깊은 습지에는 아버지와 카야만 남게 되었다.

 

며칠간은 카야의 아버지는 카야에게 친절했다. 외부로부터는 격리시켰지만 자연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편지를 받은 후 아버지조차 습지를 떠나게 되었고 카야는 어린 나이에 완벽하게 혼자가 되었다. 도시 사람들은 카야를 '습지 소녀'라고 부르며 사회에서 배척 시켰고 봐서는 안 되는 사람을 본 것처럼 스스로의 잣대를 들이밀며 카야를 대했다. 카야를 그 나이대의 소녀로 바라봐 주고 적당한 동정과 위로를 건네주었던 어쩌면 유일했던 존재들은 이 넓은 세상에서 흑인 마벨 부부와 테이트뿐이었을 것이다. 테이트는 카야에게 글을 읽고 쓰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카야에게 사랑이라는 새로운 감정을 전해주었으며 사랑스러운 연인이자 동료가 되었다. 마벨 부부는 오랜 시간 카야를 곁에서 지켜오며 옷가지와 신발을 전해주었고 다친 그녀를 걱정했으며 오랜 시간 습지를 비울 땐 자신들에게 연락을 주라며 울먹이던 가족이었다.


카야에게 습지는 커다란 생명이었다. 가족들이 하나둘 습지를 떠나 목적지가 도시인지 다른 어느 미지의 공간인지 모를 곳으로 떠날 때 카야는 얼마든지 그들을 붙잡고 같이 가자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는 아버지마저 떠난 그 황량한 습지에서 스스로 독립하여 도시로 떠나왔을 수도 있을 것이고 멸시와 배척을 무릅쓰고 학교를 다녔을 수도 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얼마든지 습지에서 벗어날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카야는 습지를 벗어나지 않았다. 습지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배웠으며 습지의 모든 생명체와 소통하는 걸 사랑했다. 요트를 타고 강을 가로질러 철새들을 만나 그들의 깃털을 구경하는 것, 나무에 붙은 버섯과 각종 이끼, 쇠똥구리나 사마귀와 같은 작은 곤충들의 번식과 존재의 이유를 파악하는 걸 사랑했다. 그녀에게 습지란 주거 그 이상의 가르침을 주었을 것이다.


살인 용의자로 몰리며 잠시 동안 감금되었던 감옥에서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의 습지를 생각했다. 자신이 돌아갈 곳은 습지라는 것을 계속해서 떠올렸다. 습지의 생명체들을 다시금 지켜보아야 했고 이를 기록하고 싶어 했으며 이와 같은 마음으로 재판의 시간을 견뎌냈다. 어릴 적 괴롭고 두려우면 가재가 노래하는 곳으로 가서 숨으라던 오빠 조디의 말, 카야에겐 그녀의 습지가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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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 공식 스틸컷)

 

 


인간은 다양하다. 사는 방식도 다양할 뿐이다.


 

카야의 변호사는 마지막 변호로서 카야를 '습지 소녀'라는 편견과 오해로 바라보지 않고 그저 오랜 시간 홀로 습지에서 살아왔던 소녀로 바라보아 달라고 부탁한다. 사실이 아닌 뜬 소문들로 판단하지 말고 지금 그녀의 상황 그 자체, 팩트만을 가지고 판단해 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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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 공식 스틸컷)

 

 

테이트는 강변을 떠나 도시의 대학으로 가고자 하였고 시간이 지나 다시 강변으로 돌아와 습지를 연구했다. 테이트의 아버지는 오랜 시간 강변에서 새우잡이를 하며 돈을 벌었고 마벨 부부 또한 오랜 시간 강변에서 기름, 식자재 등을 팔며 생계를 이어나갔다. 카야는 습지의 생명체들을 그림으로 그리며 자연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나 또한 카야가 왜 습지를 벗어나지 않는 건지, 가족들이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도망칠 때에 왜 같이 가지 않았던 것인지, 테이트가 그림을 출판사에 판매하고 도시에서 살라고 말을 했을 때 왜 나아가지 않았던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카야라는 인물은 왜 자신의 가능성과 미래 가치를 생각하지 않고 좁고 좁은 습지에 스스로를 격리시키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의아해했다. 그러나 영화를 후반부까지 달리면서 나의 이러한 생각도 카야라는 인물을 바라보는 오해와 편견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체로 인물을 바라보는 것은 참 중요하다. 카야는 원대한 꿈이나 성대한 야망이 없던 것이 아니다. 그저 습지를 떠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게 그녀의 꿈이자 야망이었고 지키고 싶던 무언가였던 거다.


이처럼 인간은 참으로 다양하다. 인간이 다양하기 때문에 각자 사는 방식도 다양하다. 우린 이걸 우리의 잣대로 평가하고 있지는 않은지 조심스레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나와 다르다고 틀리 건 아니니까.

 

 


사랑과 억압은 한 끗 차이, 진실과 거짓도 한 끗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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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 공식 스틸컷)

 

 

아, 영화는 체이스라는 청년이 시체로 발견되면서 시작한다고 했는데 체이스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어 궁금해할 수도 있겠다. 체이스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이방인'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도시에서 불쑥 들어온 체이스는 습지에 사는 카야에게 호기심으로 접근했고 서로를 사랑이라 여겼지만 결국엔 체이스는 도시에 약혼자를 따로 두고 있었다. 배신감에 가득 찬 카야는 체이스에게 두 번 다시 자신의 습지로 찾아오지 말라고 말하지만 체이스는 강압과 폭력으로 그녀를 대했고 그녀는 사랑하는 자신의 집에도, 습지에도 마음 편히 있을 수가 없었다. 체이스를 피해 풀이 무성한 습지 가운데에 숨어 요트에서 쪽잠을 잘 때 카야는 어릴 적 자신과 가족 그리고 습지를 떠난 어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고 말한다. 이런 불안한 마음으로는 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체이스를 죽인 건 카야냐고? 글쎄다. 어떻게 작고 마른 카야가 드세고 힘센 건장한 청년인 체이스를 제압해 죽일 수 있었겠는가. 또 사건 당일 카야의 알리바이는 어떻게 하고 말이다. 버스에 변장을 하고 타서 그 누구도 카야가 카야인 줄 몰랐을 것이라고? 버스 정류장과 가장 가까운 호텔을 예약한 건 다 체이스를 죽이기 위한 계획 중 일부였다고? 그럼 그 늦은 밤에 체이스를 습지까지 불러내어 그 높은 탑에서 그를 밀어 죽였다고? 말이 되는가. 하지만 체이스의 목에 항상 걸려 있던 카야가 만들어준 조개 펜던트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카야가 진범인지 아닌지는 영화를 통해 확인해 보면 좋을 것 같다. 그저 살인 사건 하나에 초점을 맞추고 바라보기엔 카야가 살았던 습지는 너무 아름다웠고 모든 생명체는 경이로움을 보여주었으니까 말이다. 그저 한 마디를 하자면 진실과 거짓은 한 끗 차이라는 것이다. 진실은 저 멀리 가재가 노래하는 깊은 곳으로 물길을 따라 흘러가고 자연은 카야를 포용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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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 공식 스틸컷)

 

 

 

마치며


 

원작 소설의 작가인 델리아 오언스는 일흔 가까운 나이에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라는 소설을 발표하며 작가의 어머니를 떠올렸다고 한다. 작가의 어머니는 어린 딸이 숲속에 들어가 놀 때 '가재가 노래하는 곳까지 멀리 가거라'라고 말했다. 시간이 흘러 머리가 백발이 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당연히 가재는 노래하지 않는다. 어머니가 그 말을 통해 뜻했던 것은 우리가 자연을 충분히 경험했으면 하는 것이다. 당신이 혼자 야생으로 상당히 멀리 들어가 당신과 자연,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순간을 맞이한다면 당신은 가재가 노래하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영화를 본 후에는 원작 소설을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보다 상세한 체이스 살인 사건의 전말과 아름다운 자연과 생명에 대한 표현이 가득할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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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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