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웹서핑 말고 국어사전 서핑 [도서]

도서 <엣센스 국어사전 제5판>
글 입력 2023.01.14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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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편한 우리 세대에게 국어사전은 익숙한 물건이 아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수업 시간에나 몇 번 썼던 것 같다. 그마저도 정말 단어의 뜻을 알아보기 위해 쓴 것이 아니라, 사전의 사용법을 익히기 위한 형식적인 수업에서 몇 번 페이지를 넘겨본 것뿐이다.


그러나 몇 년 전에 중고 거래로 국어사전을 마련한 뒤로는 머리맡에 두고 가끔 펼쳐보곤 한다. 자주 읽지도 않고, 한 번에 많이 읽지도 않지만, 야금야금 갉아먹겠다는 생각으로 조금씩 읽어나가는 중이다.

 

 

 

독서 중입니다. 국어사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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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인터넷 검색을 하면 되지, 뭐 하러 국어사전을 읽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한 번도 마주치지 않는 단어는 영원히 모르는 채로 남고 만다. 일상적인 활용도와 관련 없이 다양한 단어를 만나고 싶다면, 국어사전을 읽는 것이 정말 유용하다. 최근에는 ‘희붐하다(새벽의 밝은 빛이 조금 희다)’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대체 언제 이 단어를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마는 알고 있으면 언젠가 쓸 날이 오리라 믿는다.


원래 쓰던 단어도 사전에서 만나면 새롭다. ‘철이 없다’는 말의 ‘철’이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 찾아본 적도 있는데, 이는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힘’을 의미한다. 이제까지는 스무 살쯤 먹으면 철이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저 정의를 알고 난 뒤로는 죽기 전에나 철이 들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재밌는 단어를 찾는 것이나 생각을 확장하는 것에 큰 관심이 없다면 너무 쓸모없는 독서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국어사전에서는 예상외의 정보들을 정말 많이 얻을 수 있다. 국어사전이지만, 이런저런 단어를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백과사전 같기도 하다. 이 사전에는 전원 교향곡부터 부메랑 효과, 델린저 현상, 단학흉배에 대한 내용까지 들어 있다.

 

물론 두세 줄짜리 뜻이 적힌 게 다인지라 자세하게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가벼운 교양 상식 정도의 정보를 알려주거나 새로운 관심사를 키워나갈 실마리를 제공하는 역할은 충분히, 아니 훌륭하게 수행한다. 또 해당 낱말을 포함하는 속담도 여럿 적혀 있어 이상한 속담을 알아나가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서핑합니다. 국어사전에서



처음에는 일반적인 책을 읽듯이 첫 장부터 읽었는데, 그렇게 해서는 영 재미가 붙지 않을 것 같아서 새로운 방법을 시도했다. 인터넷에서 흥미로운 것이 보이면 그걸 클릭하고 새로운 창으로 넘어가는 웹서핑처럼, ‘국어사전 서핑’을 하기로 했다.

 

이렇게만 말하면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으나 실제로 해보면 꽤 재밌다. 사전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나 더 알아보고 싶은 단어가 나오면 바로 그 단어의 정의가 있는 페이지로 옮겨가기만 하면 된다. 예를 들어 ‘서핑’이라는 단어로 국어사전 서핑을 시작해보자.

 

 

서핑 (surfing)

1 파도타기.  2 <속> 텔레비전 채널을 마구 돌리며 여기저기 조금씩 시청한다는 뜻.  3 <속> 인터넷에서 이곳저곳 사이트를 접속해 들여다보는 행위. 웹서핑.

 

 

‘서핑’의 정의에서는 첫 번째 뜻이 눈에 밟혔다. ‘타다’라는 동사가 교통수단 같은 것에 오른다는 뜻인 건 당연히 알지만, 파도처럼 형체가 부정확한 존재와도 자연스럽게 짝지어 쓰인다는 게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타다’라는 낱말의 정확한 정의를 알아보기 위해 페이지를 넘겼다.


‘타다’는 그 뜻이 아홉 개나 있다. 그중 우리에게 필요한 뜻은 ‘타다2’다. ‘타다2’라는 단어는 탈것이나 짐승은 물론이고, 바위, 틈, 썰매, 그네, 매스컴, 그리고 파도 등을 탈 때 사용할 수 있다. 그중 세 번째 뜻으로 ‘얼음 위를 걷거나 미끄러져 닫다(ex. 썰매를 타다)’가 적혀 있는데 ‘닫다’라는 단어는 정말 생소했다. 그래서 다시 페이지를 날았다.


알아보니 ‘닫다’는 ‘빨리 가다. 달리다’라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잘 모르겠지만, 활용형이 ‘달으니’, ‘달아’라는 걸 보면 흔히 쓰는 단어인 ‘달아나다’와도 관련이 있을 것 같다. 그럼 이제 또 ‘달아나다’를 찾으러… 예시는 여기까지만 들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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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읽는 방법이 국어사전 서핑이다. 어디서 어디로 이동했는지는 화살표와 간단한 메모로 기록한다. 가끔 옛날에 남긴 메모를 다시 따라가다 보면 내 생각의 흐름이 보여서 웃기기도 하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는 게 아니라 페이지를 이리저리 오가며 읽기 때문에 어디를 읽었고, 어디를 안 읽었는지 알기 어렵다. 하지만 국어사전을 다 읽는 것이 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상관없다. 그냥 꾸준히, 새로운 단어와 거기서 얻는 새로운 생각을 접하고자 하는 것이다. 설령 다 읽었다고 해도 분량이 워낙 많아 기억이 안 날 테니, 그냥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을 수 있으면 된다.


처음 국어사전을 읽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한 에세이를 읽고 나서였다. 업무 중에도 국어사전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는다고. 창의적인 업무나 그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나 에세이를 찾아보면, 국어사전을 종종 읽는다는 사람들이 꽤 많다. 나도 아주 약간 읽어봤을 뿐이지만,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래서 그 습관을 들이려고 계속 노력 중이다.


많은 이들의 새해 다짐 속에 독서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문학이나 자기 계발, 재테크 도서 등 다양한 분야를 염두에 두고 그 목표를 정했겠지만, 국어사전을 그사이에 슬쩍 끼워주면 참신한 한 해를 보내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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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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