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세계 철학 필독서 50

자기 확신을 갖고 싶은 사람을 위하여
글 입력 2022.12.21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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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부터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철없는 생각이 들었다. 신체적 건강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도 포함하여, 부정적인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으로 기죽지 않고 무난한 사람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모든 것에 몰입할 수 있도록,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며 매몰되지 않는 삶을 말이다. 그때부터 나는 가끔 흔들려도 탄성처럼 본래로 돌아오는 이상적인 삶을 꿈꿨다. 하지만 실현을 위한 물질적인 풍족함이나 보장된 미래가 있던가 등처럼, 내면 깊숙이 내재한 거친 질문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그러나 무조건 투자하고 인내하는 것도 정답이 아닌 지금, 나는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했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공식을 세웠다. 나의 속도로, 조급하지 않게, 생산성 있게, 그리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찾기. 하지만 외부 변화까지 예측할 수 없기에, 변수로 인해 나의 환경이 종종 망가질 때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또 질문이 생겼다. 이럴 때마다 받는 부정적인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 아직 그에 대한 해결점은 찾지 못했다. 이는 커리어 적인 문제가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에 관한 문제였다. 다시금 그때처럼 환기할 단단한 것이 필요했다.

 

나는 직감적으로 먼저 나에게 자극을 주고 동기부여를 주는 요소로 사람을 떠올렸다. 하지만 내가 현실에서 만났던 단단한 사람은 불통왕이라 ‘Doing’만을 강요하니 진전이 없었다. 분명 본받을 점은 있었지만, 대화 지속이 불가능하니 패스하고, 이들의 본받을 점을 비대면을 볼 수 있는 경로가 어디 있을까? 라는 생각의 끝에 다다른 것은 책이었다. 나는 지금의 갈증도 무엇인지 모르는 입장에서 그 중, ‘철학’을 선택했다.

 

내게 ‘철학’ 하면 고집불통 학자가 떠올랐다. 날카롭고 적확한 논쟁을 통해 그 주제가 무엇이 됐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는 사람, 내게 철학자는 그렇다. 앞서 말한 ‘불통왕’과 같은 결로 자신만의 단단한 신념이 있으나 그만큼 어려운 사람, 그리고 추상적인 개념을 문장으로 써내고 말로 구사하는 그들을 어떻게 접할지 고민하던 찰나, 50인의 철학을 인물 별로 편안히 구성해둔 책을 발견하게 됐다. 바로 <세계 철학 필독서 50>이란 책이었다.

 

 

 

왜 철학을?


 

다소 누구나 할법한 고민에서 어떻게 철학까지 도착했을까? 비약적으로 느끼는 사람이 있을테다. 나의 직감적인 분야 선택에 나 자신도 적잖이 당황했지만, 철학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철학을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철학에 대해 제대로 아는 바가 없다. 고등학교 때 독후감을 위해 멋도 모르고 단테의 신곡을 읽어본 적 외에는 드물게 들여봤을 뿐, 그때 읽었던 신곡마저도 글자를 읽는 수준에 그쳤다.

 

그런 내가 철학을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감추지 못한 채 일단 책을 펼쳤다. 하지만 나의 직감이 맞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작가는 들어가는 글에 정확히 해답을 주었다. 철학의 필요성을 먼저 독자에게 설파하니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인덱스 포스티지를 붙였다. 작가는 마치 너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처럼, ‘철학, 세상을 새롭게 보게 하는 힘’이란 머리말을 통해 나는 나의 선택을 확신했다.

 

 

철학은 우리에게 다른 모든 지식을 바라보는 기본 틀을 제시한다.

아울러 보다 새롭고 자유로운 방식로 생각하고, 존재하고 ,행위하고, 인식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세계 철학 필독서 50> 중 14쪽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생각하는 존재’인 것이다. 의식은 우리의 본질이고, 우리가 가장 많이 의식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하는 행동, 다음에 할 일, 우리가 아는 것 등등. 데카르트의 표현대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인 것이다.

 

<세계 철학 필독서 50> 중 15쪽, 생각하는 방법


 

아리스토텔레스는 “선에 따르는 행동이 행복을 좌우한다”고 했으며, 러셀 역시 그의 저서 <행복의 정복>에서 성공보다는 노력이 행복의 필 수 요건이라며 우리의 관심을 밖으로 돌려 삶 속으로 뛰어들 때에야 비로소 기쁨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 철학 필독서 50> 중 16쪽. 존재하는 방법


 

“네 의지의 준칙이 항상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동하라.” 그 유명한 임마누엘 칸트의 정언 명령이다. 개인의 행위 판단에 대한 기준이 사회의 모든 사람이 똑같이 행동하더라도 즐거울 것인지 여부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세계 철학 필독서 50> 중 17쪽, 행위하는 방법


 

이때 누가 옳든 간에, 세계를 정확히 이해하는 우리의 능력을 평가하려면 언어를 빼놓고는 논할 수 없다.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말은 종종 정교한 의미를 전달하고, 같은 말이라도 수없이 다른의미를 전달한다. 언어는 우리 세계의 한계를 드러내는 형식 논리가 아니라 그 규칙이 느슨하고 우리의 삶에 따라 진화해가는 사회적 놀이다.

 

<세계 철학 필독서 50> 중 20쪽, 인식하는 방법

 

 

 

철학을 선택한 이유는? 


 

사실 이 책을 읽고도 나는 철학을 설명하고 내 삶에 적용할 만큼의 능력이 되지 못한다. 어떻게 단기간 만에 이런 막대한 순수학문을 이해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나는 경상 계열을 전공하고 물질만능주의 삶을 살았던 만큼, 순수학문은 이질적이라 천천히 곱씹으며 되새김질해야 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심리적인 고민을 철학으로 풀어낸 철학 에세이를 읽으며 조금씩 친해지는 시간이 있었다. 책을 덮을 때마다 평온이 찾아왔다만 오래가질 못했다. 그래서 정립된 지식의 필요성을 느꼈다. 쉽게 부서지는 나의 정신을 붙잡고 싶기 때문이었다.

 

건강한 정신에서 공과 사를 대하는 나를 경험한 이후로, 이를 유지하기 위해 매우 신경 썼다. 하지만 심각한 업무적인 스트레스와 외부 상황으로 한번 와르르 무너지자, 나의 쓸모를 더욱 증명하기 위해 혹은 도움이 되기 위해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어떻게든 메꾸려 했으나 이것은 내가 원하는 방향과 다르게 흘러갔다. 그 마음도 방식도 잘못됐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곤 이런 일을 유연하게 대처했던 지난 시간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어려웠고 늪에 빠진 것 같았다. 빠져나오고 싶어도 더 깊게 빨려 들어가는 나를 구제하기 위함이었다. 즉, 나는 불안을 그저 시간으로 때워 해소하는 게 아니라 내가 느낀 이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느끼고 알아가고 싶었던 거다.

 

 

하이데거는 인간의 어떤 영원한 본질이나 영혼의 발현으로 보는 온갖 종류의 신학적 개념에서 벗어나 인간의 삶이라는 무대에서 스스로를 표현하는 존재로 설명했다. 현존재의 본성은 지속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 위치를 탐색하면서도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자기 정체성을 확신하는 것이다. 이런 본성 중 하나는 스스로를 세계에 보여주거나 드러내는것이며, 인간이라면 이 경우 말과 행위를 이용한다. 삶이란 결국 자신이 처한 환경 내에서 모든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이다.

 

222쪽,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하이데거에 따르면 불안의 감정은 인간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자기 입에 있지 않음(편히 쉴 수 없음)’의 자연스런 결과다. 그러나 불안은 본래적인 삶의 필연적 요소기도 하다. 본래성의 본질을 우리가 이런 고립감을 없애거나 줄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실을 받아들여 개의치 않고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226쪽,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철학이 삶에 필요한 이유는?


 

생각하고 존재하고 행위하고 인식하기 위함이라고, 들어가는 말부터 필요한 이유를 찾았다. 내가 찾던 문장을 시작부터 찾게 되어 기뻤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 없었고 나는 내가 찾았다고 느끼는 이 깨달음이 실제로 맞는지 촘촘히 글자를 읽고, 문장을 이해하고, 어떤 것을 말하는지 내 경험에 빗대어 상상해보기 시작했다. 당시는 이해하지 못했던 상사의 말이나, 부모님의 잔소리가, 혹은 친밀한 이와 나눴던 깊숙한 대화가 더 많은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당장 ‘삶’이라는 단어에도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철학은 언어에 대한 사유였고, 그것은 이해를 담는 그릇의 성장을 말하며, 폭넓은 대화를 통해 비로소 상대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혼자 살 수 없다는 보편적인 말이 있다. 실제로 그렇다. 태어나 가족과 친구, 학교, 회사, 내가 이룬 가정, 그리고 그 이상의 커뮤니티가 많은 만큼 고독과 고립을 자처할 수 있지만 세상과 단절하고 살기에는 문명을 누리는 한 존재하기 어렵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를 마주하고 나와 다른 생각과 부딪치며 예상치도 못한 일을 목도하는 연속적인 시간 위에 놓여있다. 나의 의지가 됐든 아니든, 어떻게든 흘러간다는 말이다.

 

나이를 먹고 어떤 경험을 쌓느냐에 따라 나의 삶은 조금씩 변화한다. 아무리 대쪽 같은 사람이라도 바뀌기 마련이다. 불명확한 미래로부터 나는 확신을 두고, 남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떠넘기지 않고 내가 책임지는 과정이 나에겐 행복으로 다가왔으면 좋겠고, 건강하고 올바른 대화를 통해 각자 추구하는 삶을 이루길 바란다. 나는 이것을 단기간에 만들려는 요행을 바랐으나, 실패했고 그래서 천천히 총체적으로 쌓아가고자 하는데 좌절해도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갖고 싶은 거다.

 

 

사물의 본질이란 그것이 조직화된 방식을 의미하는데, 인간은 스스로 정신과 행동을 조직화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계에서 유일무이한 존재가 된다. 한 사람은 결국 그가 지금껏 내려온 모든 결정과 갈고 닦아온 미덕의 총체인 셈이다. 그러므로 최고의 덕에 따라 인생을 만들어가는 사람이라면 위대해질 수 있다.

 

47쪽,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한 마리의 제비가 날아온다고 봄이 오는 것이 아니고, 하루아침에 여름이 되는 것도 아니듯이, 인간이 축복받고 행복해지는 것도 하루나 짧은 시일이에 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시간 그 자체가 우리 자신과 세상의 본성이 드러내는 ‘발견의 좋은 조력자’라고 설명한다.

 

49쪽,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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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철학 필독서50


 

이 글은 ‘나’를 본질적으로 알아가기 위한 첫걸음이자 준비 단계로 막연한 미래에 불안을 떨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 작은 위로로 다가가길 바라며, 낯선 분야인 ‘철학’을 동경하고 남의 일로 여길 것이 아니라 한 번쯤은 접해보고 그 필요성을 곰곰이 느껴보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세계 철학 필독서 50>을 선택하고 읽게 됐고, 다소 비슷한 질문을 내게 화두로 던져 글로써 답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책은 무조건적인 이론을 담지 않았다. 작가가 철학자의 주장을 설명하고 자기 생각과 더불어 쉬운 말로 우리에게 전달하는 식이다. 작가가 소개하는 이론을 통해 내가 쓰고 있던 단어가 철학적으로 어떠한 의미로 해석되고 얼마나 더 넓은 의미를 가졌는지 깨닫고, 오랫동안 고민인 질문에 깔끔한 해답을 준다. 책 한 권으로 모든 내용을 맹신할 필요는 없지만 재고할 계기는 준다.

 

고백하자면, 나는 아직도 책을 다 읽지 못했다. 1/2정도 읽었나? 하루마다 10쪽도 되지 않는 글을 여러 번 읽어보고 있다. 읽고 나서도 다시금 펼쳐보면 어려워 또 읽어본다. 글자 하나를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서, 또 다른 표현으로 내 생각을 재고하기 위해 어렵게 읽고 있을 뿐이다. 마치 말을 번복하는 팀장님처럼, 어제 생각, 오늘 생각은 나날이 다르니까. 매번 달라지는 생각의 끝을 붙잡기 위해서다. 주변에서도 간간이 깔끔한 사람을 목격할 테다. 그러니까, 밀도 높고, 잡음이 없고, 한마디로 정신력 최고인 사람. 기복에 잡아먹히지 않고 정확하게 행동하고 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며, 결론은 그를 통해 내가 행복하고 싶기 때문이다.

 

모두가 잠 못 이루는 새벽 밤에 고민을 늘려만 가는 지점이 온다면, 멈추고 생각해보자. 나에겐 그 과정 중 하나가 철학책을 읽어보는 것이었고 그중 여러 철학을 쉽고 정확하게 접하고자 <세계 철학 필독서 50>을 택했다.

 

 

러셀의 행복 처방전에는 다양한 항목이 포함되지만 그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노력과 체념 사이의 ‘중용(golden mean)’이다. 모든 일에서 완벽을 추구하다 보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은 단념해야 실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다. 청소가 덜 되었거나 저녁 준비가 늦는 것까지 일일이 감정적으로 굴다 보면 피곤한 건 오히려 자신이다. 러셀은 (다소 뻔하지만) 행복이 ‘부분적으로는 외부 환경에, 부분적으로는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결론짓는다.

 

430쪽,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


 

<논리-철학 논고>의 핵심 문장은 “내 언어의 한계는 곧 내 세계의 한계다”. 언어로는 단지 사실을 표혆려 노력해야 할 뿐 그 외의 추상적인 개념이나 가치, 철학 등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그 유명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는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525쪽,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

 

 

[이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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