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날 먹어줘 - 본즈 앤 올 [영화]

글 입력 2022.12.19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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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먹어줘."

 

 

뼈까지 남김없이 모두를.


동족 포식이라는 파격적인 줄거리는 핏빛 로맨스라는 타이틀과 달리 인간의 고독한 성장과 말로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듯했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이터(Eater) 설리(마크 라이런스)와의 난투극 끝에 죽음을 예감한 리는 매런에게 자신을 먹을 것을 제안했다.


이전 작품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티모시 샬라메가 연기하는 아름다운 소년 '리'는 매런(테일러 러셀)을 만나 삶의 변곡점을 맞이하게 되는 인물이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신작 '본즈 앤 올(Bones and all)'은 원작인 소설을 바탕으로 각색되었으며, 1980년대 미국 중서부의 황량함을 재현해낸 아름다운 로케이션 덕분에 눈이 즐거운 영화였다.


이해받을 수 없는 기행들로 평범하지 않지만 평범한 일상을 꿈꾸는 매런과 리의 행복한 새 출발이 시작되는 줄 알았다. '날 먹어달라'라는 리의 말에 지독함을 느끼는 한 편, 뒤늦게서야 영화 제목의 뜻을 깨닫고 울컥하는 마음이 치밀었다.


특히 매런이 리의 상처에 깊숙이 입술을 묻고 파헤치는 장면은 잔인하고 야속하면서도 마치 사랑하는 연인을 애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된 근육들이 맥없이 느슨해졌다. 평온하게 올라가는 엔딩크레딧과 함께 쓸쓸함과 사랑에 충만한 기분이 되어 오래도록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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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을 찾기 위해 알을 깨고 나오다


 

영화의 시작은 매런의 가출이었다. 드디어 아빠가 자신을 버렸다는 것.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 그는 고해성사하듯 지난날을 녹음한 테이프만을 남기고 떠나버렸다. 리를 만나기까지 매런은 본래 살던 세상을 깨부수고 나와야만 했다.


매런의 본능이 처음 깨어난 것은 자아정체성이 만들어지기도 전이다. 매런은 베이비시터를 먹어치웠다. 그런 엄청난 일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일처럼 살 수 있는 것은 보호자 덕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범죄는 보호자 선에서 일단락된다. 그렇게 매런의 본능과 습성이 어떤 것이든 간에 철저하게 보호받으며 통제된다. 자신이 겪고 있는 카니발리즘(인육)에 대해 억압받아왔던 매런이 가족 모두가 곁을 떠나고 홀로 남아서야 본능에 대한 해소를 원하게 된 것이다.


자신을 두고 떠나버린 아빠는 더 이상 매런의 본능을 억누르며 함께 살아갈 수 없음을 이야기했다. 그리하여 매런은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엄마를 찾아가기로 한다. 자신을 낳자마자 떠나버린 엄마에게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매런의 기이한 습성과 행동들 때문이 아닌 또 다른 이유.


영화에서 갈 곳이 없는 매런이 벤치에 누워 읽었던 소설책은 다름 아닌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었다. 호빗의 고향 샤이어를 떠나 펼쳐지는 이야기로부터 매런은 자신만의 여정을 찾아 시작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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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런 앞에 처음 등장한 것은 설리번이라는 낯선 인물이었다. 설리번은 여느 히어로 영화에서처럼 자신과 같은 매런을 알아보고 한눈에 찾아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밤, 매런의 짙어진 체내를 아주 멀리서 감지하곤 문득 찾아와 자신과 함께 갈 것을 제안한다. 그는 스스로를 '설리'라고 부르며 집 주인 행세를 했지만,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매런은 죽기 직전의 집주인을 발견하고 만다.


영화 내에서 후각은 특정 반경 내에 들어오는 이터를 구분해 내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설리는 매런에게 후각을 이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영화에서는 그들이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감각하는지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원작 소설에서 매런은 상대방을 냄새로 감각하여 느끼는 인물이었다. 그녀가 지니고 있는 본능이 더 확연히 다가올 것이다.

 

 

칠리 파우더, 썩은 달걀, 보풀. 내가 루크의 목에 입술을 대자 그 애는 설렌듯한 얼굴로 몸이 굳었다. 그러고는 뒤로 모아 묶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말을 쓰다듬듯이. 이내 루크의 숨결이 내 얼굴에 닿았고, 나는 칠리 냄새를 맡았다. 그길로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본즈 앤 올' p26

 


인정하기 싫지만 설리는 매런의 본능을 일깨워준 인물이다. 그녀가 앞으로 마주하게 될 여정에서 아주 작은 부분이었지만 설리에게는 커다란 의미로 다가오게 된다. 처음 만난 매런에게 극도의 호감을 넘어선 집착을 느낀다. 그가 긴 시간 동안 사랑받지 못했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을 이해하는 누군가를 평생 기다려왔다는 것, 그가 결핍에 의한 광기 어린 인물로 진화했음을 알 수 있었다. 


설리는 영화 내내 불편함을 유발하는 인물이었다. 매런 보다 나이도 훨씬 많았고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사회성은 그의 3인칭 화법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왜 스스로를 설리라고 부르는 것일까. 우습게도 귀여운 척을 한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식성을 이야기하는 대화 속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내내 통제 속에 살아온 매런은 (인간을) 먹지 않으면 되지 않냐고 묻지만 설리는 '내 안에서 그것을 원한다'라는 대답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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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성: 카니발리즘(Cannibalism) 


 

사실 영화에서 가장 파격적인 것은 그들의 '식성'일뿐이었다.


카니발리즘(Cannibalism)은 주로 끔찍한 살인마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의 소재가 되곤 했는데 우리에게는 영화 '한니발'의 정신과 의사 한니발 렉터의 기이한 행위로 익숙하다. 살인마가 희생자의 목숨을 착취하여 인육을 먹는 경우에는 살인이 주가 될 수 있겠으나 '본즈 앤 올'의 경우는 달랐다.


주인공 매런을 비롯한 이터의 경우에는 선택이 아닌 본능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배고픔을 느끼고 밥을 먹는 당연한 행위처럼 이들은 살점을 뜯고 파헤쳤다. 매런의 첫 희생자는 그녀의 베이비시터였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끔찍하게 여겼을 진실 앞에 리는 반가워하며 자신 역시 베이비시터가 시발점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매런과 리의 로드무비라고 할 법한 여행 속에서 이들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죽이고 먹었다. 특히 가족이 없고 지금 당장 사라져도 아무도 찾지 않을 사람을 고르는 치밀한 행위는 이들의 식성과 관계없이 영악하게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이는 이해받지 못하는 세상에 내던져진 소녀, 소년의 갈급한 생존 같기도 하다.


어쩌면 세상은 생존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특히 동족인 인간을 먹잇감으로 삼는 일은 수 배로 어렵다. 영화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으나 보는 내내 의문이 들었던 것은 동족 포식으로 인해 발생할 여러 질병과 건강상의 문제들이었다. 그리하여 내게는 다소 영화적 허용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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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세계에서 괴물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 


 

매런이 끝내 엄마를 찾게 되었을 때, 마주한 그녀는 내내 상상해 온 모습이 아니었다. 두 손을 잘라내고 스스로를 병동에 가둬 피폐해진 얼굴로 매런을 알아보았다. 매런은 엄마의 식성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같은 이터였음을 알게 된 사실보다 자신을 부정하는 모습에 더 큰 절망에 빠지게 된다.


사랑의 세계에서 괴물은 존재해서는 안 돼. 그 말은 매런을 통째로 부정하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감정을 외면할 수 없다. 사랑의 세계라고 분리하여 말했지만 매런과 리는 서로를 이해하며 사랑하는 유일한 연인이었다. 혼란에 빠진 매런이 리를 떠나고 다시 찾게 되었을 때, 리의 가족사를 알게 된 매런은 그의 눈물에 경멸 대신 사랑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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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사랑한다는 생각뿐이야."

 

 

매런의 대답은 리에게 확신을 주었을 것이다.

 

자신을 이해한다는 대답보다 그저 사랑을 확인 시켜주는 것은 리에게 구원이었다. 언젠가 길에서 만났던 또 다른 이터 '제이크'는 리의 고독한 삶에서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은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랑'이라는 감정이 이들에게는 구원 서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독한 외로움과 결핍이 느껴졌다.


영화는 로맨스로 치우쳐 바라보기엔 인간이 원하는 사랑 그 자체의 순수한 감정을 말하고 있다.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사람들이 갈구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남들과 다르다고 여겨온 매런이 집을 나서게 되며 리와 함께했던 짧은 여정 속에서 그들은 서로의 외로움을 끌어안고 사랑했다.


영화 '본즈 앤 올'은 그들의 식성을 이해하는 영화는 절대 아니다. 다만 그들이 겪었던 고독을 차치하고도 끝내 사랑을 원하는 인간의 쓸쓸함을 이야기한다. 날 먹어달라는 끔찍한 워딩 속에서 사랑을 읽는다. 리를 잃고 다시 혼자 헤쳐나가야 할 매런이 걱정되었으나 여정은 계속되어야 했다.

 

괴물의 세계에도 사랑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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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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