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녀는 사랑이다. [영화]

엠마, 감각하여 사랑하다.
글 입력 2022.11.13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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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영화의 주인공들은 변화한다.

 

<펀치 드렁크 러브> 주인공은 겁쟁이에서 히어로가 되고, <위플래쉬>의 드러머는 어느새 광기 가득한 드럼을 친다. <결혼이야기>의 두 부부는 서로를 증오하는 듯 했으나, 이별 끝에 좋은 친구가 된다. 루카 구아다이노의 <아이 엠 러브> 주인공 ‘엠마’는 겨울에서 여름으로, 계절이 바뀌듯 변화한다.

 

만물이 숨을 죽인 겨울에서, 생기 넘치는 여름처럼 변화하는 엠마. <아이 엠 러브>의 변화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엠마에게 ‘살아있음’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에 영화는 ‘감각’을 이용한다. 대개 영화가 ‘감각’을 강조하는 이유는, 관객에게 영화 속 감각을 체험하게 하기 위함이다.

 

대표적 예로는 <존 말코비치 되기>가 있다. 그러나 <아이 엠 러브>의 감각은 오로지 엠마가 ‘살아있기’ 위하여 작동한다. 감각을 통해 변화하는 엠마. 냄새를 맡고, 피부로 만지고, 맛을 느낌으로써 ‘살아있는’ 엠마. 영화 속 엠마, 아니 키티쉬는 ‘감각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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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작부에 레키 가문 수장의 생일 연회가 열린다. 한겨울이다. 빛이 들지 않는 레키 가문의 저택. 엠마는 가문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다. 가문 사람들은 후계에 대한 견제, 불편함을 드러낸다. 영화는 그들의 얼굴을 번갈아 보여주는데, 이러한 진행은 긴장감을 전달하며, 다소 단조롭게 느껴진다.
 
레키 가문과 관련하여 엠마의 감각이 발휘되는 장면은 없다. 오로지 경직된 몸과 화려한 옷차림 뿐이다. 이러한 엠마의 세계에 안토니오가 균열을 만들어 낸다. 엠마의 감각의 근원은 안토니오에 대한 사랑이다. 안토니오에 대한 사랑은 그의 ‘음식’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음식을 먹기’ 위해 바쁘게 움직인다.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를 맡고, 입 안에 넣었을 때 감각과 맛을 느낀다. 음식이 씹히는 소리도 들린다. 음식은 우리의 오감을 작동시킨다. 엠마는 고향 러시아의 모든 것을 버리고, 레키 가문에 들어와 밀라노에서 살고 있다. 이런 엠마가 안토니오에게 처음으로 받은 음식, 러시아 샐러드는 레키 가문에서 숨 죽이고 살던 엠마를 동하게 만든다.


엠마가 안토니오의 새우요리를 먹는 순간, 소리가 들린다. 칼과 접시가 부딪히는 소리. 새우가 칼에 잘리는 소리. 새우가 입 안에서 씹히는 소리, 안토니오가 주방 어딘가에서 기름을 튀기는 소리, 음식을 칼로 써는 소리, 소리, 소리. 그리고 보인다. 붉은 새우와 둘러진 소스, 곁들여진 녹색 샐러드.

 

엠마는 영화 앞전에서 볼 수 없었던 얼굴을 하고 있다. 함께 들리는 클래식 음악은 엠마의 벅찬 감정을 들려주는 듯 하다. 음식이 엠마의 오감을 작동시킨다. 이로써 엠마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음식 뿐 아니다. 엠마가 두른 레키 가문의 산물인 옷과 악세사리를 벗겨버리는 안토니오. 안토니오는 숲속에 작은 가게를 차리려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엠마는 그런 그를 사랑한다. 그는 레키의 단 한 점도 닮지 않았으며, 한없이 자유롭다. 엠마는 음식을 감각하듯, 그에 대한 사랑 또한 감각하여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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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엠마를 안토니오의 공간으로 데려간다. 산례모의 숲이다. 숲에는 안토니오가 가게를 차리려는 작은 집이 있다. 그곳의 모든 벽면은 창문이 크게 뚫려 있어, 강한 빛과 바람이 들어온다. 엠마는 그곳에서 바람 소리, 나무 소리, 서로를 만지는 소리, 벌레 소리를 듣는다.
 
이러한 산례모는 엠마가 지내온 밀라노와 대비된다. 밀라노. 회색빛의 높고, 각진 건물들이 즐비해 있다. 이는 도식적이고 단조롭게 느껴진다. 레키 가문의 저택도 마찬가지다. 엠마가 밀라노 건물 안에 있을 때, 앞서 말한 산례모와 대비되는 소리가 들린다.
 
모든 소리가 울린다. 밀라노의 건물은 막혀있고, 닫혀 있다. 산례모의 모든 소리가 통풍 된다면, 밀라노에서 모든 소리는 갇혀서 울린다. 이러한 레키의 공간과 대비되는 안토니오의 숲은 엠마에게 해방감을 주고, 그곳을 벗어나게끔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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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에게 안토니오만이 자극을 준 것은 아니다. 사랑을 찾은 딸 ‘베타’가 전한 용기. 그리고 가문의 후계자가 된 큰 아들 ‘에도’. 에도의 죽음은 많은 관객에게 의문을 품게 했다. 후계자인 에도는 가문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고, 동시에 가장 많이 ‘엄마’를 찾는다.
 
에도는 엠마와 가문을 연결하는 유일한 존재이다. 그의 죽음은 엠마가 엄마로서의 역할, 가문, 이전까지의 사랑을 완전히 끊어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엠마는 새로운 사랑으로 향할 수 있게 된다. 엠마가 본래의 삶과 영원한 안녕을 할 때, 그녀는 문 앞에서 사라지듯 떠난다.
 
문을 열고 나가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그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진다. I am love. 엠마는 사랑 그 자체이다. 그녀가 사라진 순간, 레키에서의 사랑도 사라진다. 엠마는 새로운 사랑으로 향한다.
 
영화가 끝난 후, 엠마를 따라가며 영화를 보던 우리 안에 어느새 그의 감각이 남아있다. 레키, 안토니오, 그리고 관객에게 감각과 사랑을 전한 엠마.
 
그녀는 사랑이다 (I am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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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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