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12살 소년의 성장통,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이들에게 전하는 위로 [영화]

“삶은 말로 쓰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쓰는 거야.” 소년 앞에 나타난 거대한 나무 괴물이 이야기하는 인생 교훈. 영화 <몬스터 콜>.
글 입력 2022.11.1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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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영화 <몬스터 콜>의

내용 및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꿈은 현실의 삶과 맞닿아 있다. 현실에서 겪은 끔찍한 일이 악몽으로 재현되거나, 내 미래에 일어날 것만 같은 일이 눈앞에 펼쳐지는 예지몽을 꾸기도 한다. 때로는 꿈에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 현실을 이겨낼 힘을 주기도 하고, 현실에서 좌절되거나 억압된 욕망이 꿈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영화 <몬스터 콜>의 주인공인 12살 남자아이 코너도 매일 꿈을 꾼다. 항상 반복되는 악몽이 그를 괴롭힌다. 하늘이 무너질 듯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종이 치는 큰 교회 앞에는 코너의 엄마가 서 있다. 땅이 흔들리며 교회가 무너지고, 코너는 갈라진 틈 사이로 떨어지려는 엄마의 손을 붙잡고 있다. 그 손을 놓칠 위기에 처한 순간, 코너는 항상 꿈에서 깬다.


코너에게는 악몽 같은 꿈보단 삶이 더 버거운 것처럼 보인다. 위중한 병세로 인해 아파하는 엄마, 학교에서 자신을 왕따시키는 아이들, 매일 밤마다 반복되는 끔찍한 악몽. 코너의 유일한 낙은 혼자 책상에 앉아 스케치북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다. 어느 날, 그런 코너에게 나무 괴물이 찾아온다. 코너의 방 창문 멀리에서 보이는 거대한 나무의 뿌리가 뽑히고 빛을 내뿜으며 괴물로 변해 코너에게 말을 걸어온다. 


여느 영화라면 히어로가 찾아올 타이밍이다. 작고 어린 주인공을 도와 그를 괴롭히는 적들을 없애 줄 초인적 능력을 가진 영웅이 찾아와야 마땅하다. 그러나 몬스터 콜에서는 코너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거대한 나무 괴물이 다가와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뜬금없는 말을 건넨다. 괴물은 어떤 존재일까. 그리고 왜 코너에게 찾아왔을까. 그 궁금증과 함께 영화는 시작한다. 

 

 

 

동화의 법칙 속에 갇힌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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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참 착한 애야. 착한 애는 고자질 안 해.” 코너를 왕따시키는 소년이 코너에게 항상 건네는 말이다. 코너는 누가 봐도 ‘착한 아이’다. 화가 난다며 물건을 집어던지지 않고, 학교를 빠지고 다른 길로 새지 않고, 부모님에게 절대 대들지 않는 착한 아이다. 주변 환경으로 인해 사회가 규정하는 착한 아이로 자라게 된 소년이다. 


코너와 함께 사는 엄마는 아파서 종일 누워있는 것밖에 하지 못한다. 코너는 혼자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빨래를 하고, 아침을 차려 먹고 등굣길에 나선다.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해도 반응하거나 반항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코너를 혼내는 할머니는 성정이 엄하고 완고해 그에게는 달갑지 않은 존재다. 온통 견디기 힘든 일 투성이지만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소년은 분노하거나 울지 않는다. 코너의 표정에는 고통과 불안이 가득하지만 그 감정을 억누르며 그저 하루하루를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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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코너에게 나타난 나무 괴물은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는 뻔한 이야기 말고 뜻밖의 얘기를 한다.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마. 내 얘기가 다 끝나면 네가 네 번째 얘기를 해야 돼. 네가 감추고 있는 은밀한 얘기”. 괴물은 코너가 가장 힘들어하는 순간마다 나타나 이야기를 하나씩 전하기 시작한다. 


아픈 엄마와 자신을 갈라놓고 자신과 함께 살려는 할머니가 집에 찾아왔을 때. 미국에 사는 아빠가 찾아와 세 식구 살기도 좁다고 말하며 코너를 데려가지 않고 떠났을 때. 그리고 자신을 끔찍하게 괴롭히던 아이가 더 이상 코너를 신경 쓰지 않겠다며 존재 자체를 무시하는 말을 할 때. 나무 괴물이 나타나 동화책을 읽어주듯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 동화치고는 조금 이상하다. 첫 번째는 사랑하던 여인을 죽이고 왕비에게 죄를 덮어쓰게 한 왕자가 종국에는 사랑받는 왕이 되어 나라를 잘 다스렸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는 마을 사람들의 신임을 받았지만 정작 본인은 진실된 믿음이 없어 두 딸을 병으로 잃게 된 한 목사의 이야기였고, 세 번째는 투명 인간처럼 항상 무시당하던 이가 괴물을 불러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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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의 공식이 통하지 않는 이야기들이었다. 다른 동화들이 담고 있는 권선징악의 메시지와 해피 엔딩과는 거리가 멀었다. 등장인물 중 그 누구도 온전히 착하거나 나쁘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착하기만 한 사람이나 나쁘기만 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고 그 사이 애매한 중간에 서 있는 평범한 사람들만 존재하는 듯했다. 


첫 번째 이야기를 듣고 ‘그럼 누가 착한 사람이야?’, ‘나쁜 사람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는 거잖아’라고 생각하던 코너. 모든 이야기에는 항상 착한 사람이 존재해야 한다고 믿었던 코너는 혼란스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과 환경 속에 갇혀 있었던 그는 세 가지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난 후 변하기 시작한다.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를 밀치고 그와 똑같이 주먹질을 하는 등 억눌렀던 감정과 분노를 표출하게 된 것이다.

 

 

 

공존하는 두 가지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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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찾아온 변화에 혼란을 느끼던 중, 코너는 엄마의 증세가 악화됐고 새 치료제가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엄마와 곧 이별해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한 채, 코너는 벼랑 끝에 몰린 듯 힘들어한다. 코너의 아픔이 극에 달한 순간, 나무 괴물이 나타남과 동시에 코너가 매일 꾸던 악몽의 장면이 재현된다. 악몽이 바로 네 번째 이야기였던 것이다. 괴물은 늦기 전에 악몽의 내용과 네 마음속 깊이 감춰져 있던 진실이 무엇인지 말하라며 코너를 몰아붙인다.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 그래서 엄마를 놨어. 그냥 죽게.” 사실 코너가 감추고 억누르려던 감정이자 악몽의 진실은 그가 엄마의 손을 놓친 게 아니라 직접 놓았다는 것이었다. 투병 중인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고 보살피는 고통을 감당하기에 12살 소년은 너무 어렸던 것이다. 차라리 엄마가 세상을 떠나서 죽을 것 같은 고통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코너의 마음이 꿈에 투영된 것이었다.


코너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죄책감에 휩싸여 본인도 엄마가 떨어진 낭떠러지를 향해 몸을 던지려고 한다. 그때, 나무 인간이 코너를 붙잡아 올린다. 벌을 받아 마땅하다며 자책하는 코너에게 ‘넌 네 고통이 끝나길 바란 것뿐이야’라고 말하며 그를 껴안아준다. 그런 생각을 한 게 절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면서, 죽음의 구덩이 속에서 코너를 건져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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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나타난 이유는 바로 감춘 진실을 뱉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나무 괴물은 코너 마음 깊숙이 존재하던 진심이자, 코너 자신이었던 것이다. 괴물은 착해야만 하는 어린아이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존재였다. 진심이라 하더라도 밖으로 드러내고 뱉어서는 안되는 억압의 방어 기제이자 죄책감이었다. 괴물은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코너를 죄책감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코너에게 용기를 북돋아준 괴물은 그가 엄마에게도 진심을 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엄마와 자신의 고통이 얼른 끝나길 바라는 게 코너의 진심이었고, 그 진심보다 더 깊숙이 있던 마음은 엄마가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 말을 전하고 엄마의 손을 잡은 채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하는 코너. 악몽에서는 엄마의 손을 놓았지만, 현실에서는 끝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손을 놓음으로써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코너는 상처를 마주하고 고통과 죄책감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엄마를 보내줄 수 있게 되었다. 

 

 

 

마음 깊이 자리한 진심을 꺼내 보일 때 비로소 치유되는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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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고통스러운 진실보다 거짓 위로가 필요할 때도 있어. 삶은 말로 쓰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쓰는 거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오직 네가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거지.”


괴물이 말했듯, 인간 존재와 인간의 삶은 참 복잡하다. 괴물이 들려준 세 이야기 속 인물들처럼 항상 좋은 사람이거나, 항상 나쁜 사람은 없고 대부분의 사람은 그 중간에 존재하기 마련이다. 선과 악은 공존할 수 있고, 진실을 말할 때도 거짓을 말할 때도 있다. 행운이 있으면 행복이 찾아오고, 고통이 있으면 분노에 잠식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항상 착한 사람일 필요도 없고, 나쁜 감정을 억누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작중 코너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어릴 적이자 현재 모습일지도 모른다. 누구보다 작고 여린 존재지만 착하고 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 강한 척해야 했고, 누구보다 고통스럽고 불안한 상태지만 상처를 다루는 방법을 몰라 진심을 숨기고 감춰야 했다. 사람은 누구나 이렇게 성장한다. 상처를 마주하고 견뎌내는 자신만의 방법을 서서히 터득하게 되고, 내면을 살피면서 내 안의 소리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우리 모두가 성장통의 과정을 겪어왔고, 지금도 계속해서 겪고 있는 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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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괴물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괴물을 인정하지 않고 피하기만 하면 더욱 고통스러워지는 건 자신일 뿐이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상처를 인정하고 내뱉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거창한 방법이 아니어도 된다.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거나, 만약 그게 어렵다면 감정을 삼키지 않고 혼자 마음껏 목놓아 울어보는 건 어떨까. 아니면 나만 볼 수 있는 일기장 같은 장소에 솔직한 마음과 진심을 담아볼 수도 있다. 사소한 방법일지라도 상처와 대면할 통로는 많다.


Tear up this town

이 도시를 무너뜨려

Blinking in the sunlight as the walls come down

벽이 무너져 내리고, 햇빛에 눈을 깜빡이네

This fire will burn

이 불은 뜨겁게 타오를 거야

Digging for a truth that just can't be found

찾지 못한 진실을 향해 파고들어가면서

I want to tear it all up

난 이 모든 걸 무너뜨릴 거야


영화의 삽입곡 ‘Tear up this town’의 가사를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마음 깊은 곳의 상처를 부수고 싶을 땐 부숴야 한다. 울고 싶을 땐 울고, 무너지고 싶을 땐 무너져야 한다. 괴로운 이야기를 참고 삼키려 애쓰지 않고 마음 밖으로 뱉어낼 때 비로소 상처가 치유된다. <몬스터 콜>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아이들과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이다. 선과 악, 진실과 거짓, 희망과 상실 사이의 가운데 그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내면의 성장을 가져다주는 이야기이다.

 

 

[박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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